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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은 편집국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편집국 아버지' 또는 '편집국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기자들의 취재와 기사작성, 편집, 교열 등을 지휘·감독하며 각 부장들과 수시로 업무를 조정하는 등 뉴스의 취재 및 보도에 책임을 져야하는 무거운 자리다. 게다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사주 또는 경영진들과 끊임없이 신경전을 펼쳐야만 한다.

그런 편집국장석에 오르기까지는 수습기자로 출발해 십 수 년에서 20여년 가량 산전수전을 겪어야만 한다. 거기에다 선후배들로부터 신임이 두터워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일부 지역신문들은 아직도 사주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 임명제를 고수하기도 하지만, 노동조합이 구성된 대부분 신문사들은 편집국 내부 구성원들의 추천과 신임이 전제돼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이처럼 어렵게 오른 편집국장 자리도 길어야 고작 2년 정도. 더러 연임을 하기도 하지만 임기가 끝나면 대부분 뒷방 취급당하는 논설실로 자리를 옮기거나 자리가 없는 경우엔 사업국 또는 광고국 등으로 떠밀려 전혀 낯선 업무를 하기도 한다. 편집국장 자리가 마냥 편치만은 않다. 그러나 신문사 기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슴 설레며 꿈꾸는 자리가 바로 편집국장석이다. 그만큼 보람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편집국장이 경영진 또는 사주의 편에 서지 않고 편집국 구성원들 편에 서서 신문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그를 내쫓기 위해 책상을 없애고 법적소송까지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신문사가 있다. 지역일간지들 중 판매부수와 열독률이 가장 상위그룹인 신문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부산경남지역 유력 일간지인 <부산일보>가 최근 사측과 노동조합(노조)이 편집국장 징계문제를 놓고 다시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오랜 노사갈등 근원은 <부산일보> 주식을 100% 보유한 정수장학회에서 비롯됐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기사화 했다가 신문사 밖으로 내쫓긴 편집국장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출입금지 가처분이 발효된 13일부터 신문사 앞에서 천막 편집국(열린 편집국)을 설치해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출입금지 가처분이 발효된 13일부터 신문사 앞에서 천막 편집국(열린 편집국)을 설치해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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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재정권이 강탈한 정수장학회(정수재단) 사회 환원과 신문사 편집권 독립을 주장해 온 <부산일보> 구성원들의 뜻에 따라 이를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이정호 편집국장이 사측의 눈엣가시가 된 것. 사측은 편집국장 책상마저 없애며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지만 이정호 편집국장은 8개월간 출근투쟁을 벌이며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과 편집권 독립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국장은 지난해 11월 18일  '정수재단의 <부산일보> 주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기사를 내면서 사측과 갈등이 커졌다. 사측은 같은 달 30일 단체협약의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 국장에게 대기발령이란 징계조치를 내린데 이어 이 국장이 출근투쟁을 벌이자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법원에 제출했다.

급기야 11월 30일자 <부산일보>가 발행되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데 대한 사측의 강경입장은 노골화됐지만, 이에 맞선 노조 입장 또한 단호했다. 노조는 "정수재단이 장악하고 있는 <부산일보> 경영진의 폭력적인 노조탄압과 편집권 개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정수재단 사회 환원이 전제되지 않는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은 요원하다"는 입장을 대내외에 거듭 밝혔다.

결국 법적소송으로 옮겨 붙었다. 부산지법은 지난 2월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규정한 징계위원회 구성 요건에 어긋난다'며 '편집국장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려 노조측에 힘을 실어주는 듯했지만 그건 서막에 불과했다. 사측은 다시 4월 사규에 의한 포상징계위원회를 열어 이 국장을 대기발령한 뒤, 법원에 직무수행 및 출입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런 뒤 이 국장의 책상과 전화기 등을 치웠다.

이에 맞서 이 국장은 매일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간 독자와 선후배들 보는 앞에서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겠는가. 하지만 편집권 독립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에 구성원들은 그를 지지하며 일관된 투쟁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신문사측이 이 국장을 상대로 낸 '직무수행 및 출입 금지 가처분 신청'을 끝내 법원이 받아들임으로써 8개월간 벌여왔던 출근투쟁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부산지법 민사14부(재판장 구남수)는 11일 "이 국장은 편집국장의 직무를 수행하거나 <부산일보>사 건물 전체에 출입도 해서는 안 되며, 위반행위를 할 때마다 100만원씩을 회사에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국장은 노조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사규에 의한 포상징계위원회를 열어 사측이 그를 징계한 것은 정당하다"며 법원은 결국 사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박근혜 의원 정수장학회 털고 가지 않으면 편집권 독립 없다"

신문사 주식의 100%를 소유한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요구를 기사로 내보냈다는 이유로 편집국장을 신문사 밖으로 내쫓는데 혈안이 된 사측의 강경태도는  대선일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노골화되는 느낌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정수장학회는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한 5·16 쿠데타 후 부산지역 기업인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헌납 받은 장물과 다름없다.

그런 곳에서 박근혜 의원이 10여년간 이사장직을 맡아 왔으며, 지금은 측근이었던 최필립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 <부산일보> 구성원들은 재단의 일방적인 신문사 사장 선임으로 인해 편집권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부산일보> 주식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줄기차게 촉구해 온 것이다.

그러나 신문사측은 법적소송도 불사하며 노조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편집국장까지도. 하지만 노조는 박근혜 의원이 정수장학회를 털고 가지 않으면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은 없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12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법원의) 결정은 지난 2월 포상징계위원회의 위원 구성이 단협 징계위와 같이 변경된 것으로 봐야 한다던 이전 재판부 결정과 상반된다"며 재판부의 일관성 없는 결정을 비판했다.

노조는 "다수 조합원에 의해 추대된 편집국장이라도 경영진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포상징계위를 열어 중징계하고 직무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노조가 새로운 다짐으로 투쟁에 나서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고 투쟁결의를 다졌다. 노조는 또한 "사측이 후임 편집국장 추천을 요청하더라도 본안소송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응하지 않을 뿐더러 편집국장 대행 임명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측 강경대응, '박근혜 대선가도' 발목...왜 모를까?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노조 추천이 없으면 후임 편집국장 임명이 불가능하다. 편집국장은 단협상 노조의 3인 추천으로 그 중 사장이 임명하도록 돼있기  때문. 사측은 '편집국장 대행'이란 카드를 들고 나설 가능성이 높지만 편집국 독립을 위한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요구가 편집국장 교체로 말끔하게 정리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전국언론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이 가세해 오히려 불길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측의 강경대응이 되레 '박근혜 대선가도'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들이다.  

당장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이 문제에 적극 가세하고 나섰다.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과 정수재단 사회 환원을 위한 부산시민연대'와 <부산일보> 노조 등 언론 공공성 지키기 부산연대는 12일 저녁 <부산일보>사 앞에서 이 국장의 원직 복직과 정수재단 주식의 사회 환원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불씨를 계속 지펴나가기로 했다.  

'정수재단 환수, 공정방송 염원 부산언론문화제'가 함께 열린 이날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겨울 두꺼운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생생한데 8개월 넘게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다른 언론사들은 파업을 끝냈지만 우리는 가장 먼저 깃발을 들고 나왔음에도 가장 나중까지 사수해야 할 입장"이라며 투쟁의지를 북돋웠다.

이어 이강택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부산일보>는 4·19 때 김주열 열사의 사진을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냈던 신문"이라며 "<부산일보>가 바로 서야 우리 언론이 바로 선다"며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을 반드시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부산참여시민연대 "편집국장 복직시키고 <부산일보> 지역사회 환원해야"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13일 <부산일보> 이정호 편집국장 징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13일 <부산일보> 이정호 편집국장 징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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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는 13일 성명을 내고 신문사 노조측에 힘을 보탰다. 성명은 "이번 결정은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로 하여금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과 정수재단 사회 환원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북돋우고 있다"며 법원의 이중적인 잣대에 문제를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성명은 "지난해 11월 18일 정수재단의 <부산일보> 주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서 대기발령 징계를 내린 사건에 대해 부산지방법원은 이 징계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런데 회사는 다시 포상징계위원회를 개최해 대기발령을 내리고, 법원에 직무수행 및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냈을 뿐만 아니라 이정호 국장의 책상과 전화기를 치우는 조폭적 행동까지 벌이는 치졸함을 보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사건을 다루고 판단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명은 이어 "우리는 이 결정이 명백히 사회적 역행이고,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기득권 보호에 불과한 것"이라며 "이 문제는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수재단과 명백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결과"라고 밝힌 뒤 "<부산일보> 사측은 법원의 결정과 무관하게 이정호 편집국장을 즉시 복직시키고 정수재단은 <부산일보>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언론노조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를 소유할 자격이 없다"

 전국언론노조가 정수장학회와 박근혜 의원을 겨냥해 낸 성명.
 전국언론노조가 정수장학회와 박근혜 의원을 겨냥해 낸 성명.
ⓒ 전국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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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조도 12일 '박근혜의 개가 되어 꼬리치는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를 소유할 자격이 없다'란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번 법원의 판결은 정당한 징계 절차를 번복하는 사측의 일방적 징계임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요구한 직무정지요청은 타당하다는,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이라며 " 법원이 유력 대권 주자의 심기까지 살피는 판결을 내렸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법원의 불편한 판결보다 더 주목할 점은, 여전히 박근혜 의원에게는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한 정수장학회가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것"이라며 "본격적인 대선가도가 시작된 이 시점에서, 그동안 언론계, 학계, 시민사회 단체를 비롯하여, 심지어 박 의원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자들까지 앞장서서 '정수장학회를 털고 가라'고 수많은 비판과 요구, 조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정수장학회를 향한 쇠고집은 결코 꺾일 줄을 모른다"고 개탄했다.

성명은 말미에서 "박근혜 의원은 더 늦기 전에 위선과 오만의 탈을 벗어던지고 독재의 더러운 상징인 정수장학회를 즉각 사회에 환원하라. 그리고 독립정론 <부산일보>를 소유할 어떠한 자격도 없는 정수장학회는 즉각 <부산일보>에 대한 모든 권한을 사회에 환원하고 <부산일보>에서 손을 떼라"고 주장했다. 쇠고집에 끝까지 맞설 것이란 의지가 가득 묻어난다.

민주당 "박근혜, 더 이상 <부산일보> 망가뜨리지 말라"

 <부산일보>는 13일 2면에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 끝까지'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인터넷신문 캡쳐)
 <부산일보>는 13일 2면에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 끝까지'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인터넷신문 캡쳐)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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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정·신경민·최민희·최재천 의원 등 국회 문광위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도 12일 공동성명을 내고 "더 이상 <부산일보>를 망가뜨리지 말라"며 "법원의 판결을 기회로 사측이 대주주인 정수장학회와 그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박근혜 의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편집국을 구성하겠다고 나섰다. 편집 간섭과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부산일보>에 지지와 연대의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도 13일 '<부산일보> 편집국장을 즉각 업무에 복귀시켜라'란 논평을 통해 "법원이 이정호 편집국장 직무정지 및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하지만 '언론인의 양심'을 짓밟은 <부산일보> 경영진의 처사는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심증을 지울 수 없다"며 "박근혜 의원과 직간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정수재단 기사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편집국장을 길거리로 내몬 <부산일보> 경영진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겨냥했다. 민주당은 성명에서 "이정호 편집국장 문제에 대해서 박근혜 의원이 직접 입장을 밝힐 것"을 거듭 요구했다.

한편 <부산일보> 특별취재팀은 13일 '정수재단 사회환원 투쟁 끝까지'란 제목의 2면 기사를 통해 이정호 국장의 최근 심경이 담긴 발언을 무게 있게 실어 주목을 끌었다.

 "법적 소송이 끝날 때까지 회사 앞에서 옥외 출근을 하게 되겠지만 마음은 항상 편집국 안에 있다.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을 위해 싸운 지난 1년간 편집국, 노조 조합원들의 편집권 독립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밖에서 힘차게 싸우겠다."

이정호 편집국장은 출입금지 가처분이 발효된 13일부터 <부산일보> 앞에서 천막 편집국(열린 편집국)을 설치해 1인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알려왔습니다
7월 15일자에 게재된 '박근혜, 정수장학회 털고 가야 <부산일보> 바로 선다' 기사와 관련 부산일보측에서는 "이정호 국장은 신문법 위반(발행인 고의 누락), 인사사령 관련 기사 게재 고의 거부,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주문 게재 거부로 인한 간접강제 제소, 기사불만으로 인한 구독 중지 부수 급증, 노조 기자회견 기사 게재 관련 항명사건, 본부 지령 관련 사고, 편집국원 지휘 감독 소홀 등의 사유로 징계를 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부산일보#정수장학회#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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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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