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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끊게 되면 지국에 전화를 해서 이 사태가 해결되어야만 다시 재능교육을 선택할 수 있다고 밝혀 달라.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유명자 전국학습지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은 강연 도중 눈물을 흘렸다. 강당을 가득 메운 대부분 남성 노동자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머뭇머뭇 하며 박수를 쳤다. 컵에 물을 받아 갖다 주기도 했다. 겨우 말을 이어갔지만 계속 눈물을 보이자 또 박수를 쳤다.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은 13일 오후 창원노동회관 강당에서 "재능교육 1600일 투쟁, 눈물과 희망"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은 13일 오후 창원노동회관 강당에서 "재능교육 1600일 투쟁, 눈물과 희망"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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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창원노동회관 강당.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마창지역금속이 조합원 교육으로 유 지부장을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 강연 제목은 "재능교육 1600일 투쟁, 눈물과 희망"이었다.

유 지부장은 "투쟁이 오래 됐다. 여기저기서 왜 아직도 이기지 못하고 오래 투쟁하느냐고, 궁금해서라도 부르는 것 같다"면서 "서울에는 천막이나 노숙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부터 했다.

재능교육 해고자들의 투쟁은 이날까지 정확히 1667일째다. 재능교육노조는 처음에는 잘 나갔다. 건설․화물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특수고용 노동자'다. 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조합 보장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1999년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교부받았고, 사측과 단체협약도 맺었다. 이른바 '33일 총파업'을 하고 얻은 성과였던 것이다.

"1999년 11월, 노조 결성부터가 아니라 파업부터 했다. 처음 파업에 나갔을 때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정규직화 쟁취하자'고 했다. 우리가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런 것을 알았다면 감히 쉽게 파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학습지자본에는 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이 섞여 있는데, 행정․사무직들로 구성된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나갔을 때 우리도 힘을 실어 달라는 의미에서 같이 했던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여성이고 주부가 많았다. 파업에 나가면서 스스로 깨우쳤다. 정규직 꽁무니 다니면서 학습지교사의 처지도 바꾸어 달라고 대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자는 것이었다."

학습지교사들은 그해 12월 본사 강당에서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그는 "처음에는 노동조합법, 근로기준법도 몰랐다. 대부분 그냥 싸우면 이길 것이라 봤다. 파업은 눌려있던 사람들의 해방구였다. 파업에서 이기거나 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학습지자본에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것이 통쾌했다"고 말했다.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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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파업에 들어간 지 17일만에 노동부는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내주었다. 그 때부터 회사가 흔들렸다는 것. 그 뒤 잠정합의안이 나오고, 그해 12월 31일 '33일 총파업'이 끝났다. 그는 "2000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전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보신각종을 우리 머리로 칠 것이라 각오를 했다"고 말했다.

유 지부장은 "처음에는 수도권 중심으로, 파업대오가 1800여 명에서 시작했는데, 끝나고 보니 전국적으로 조직되었고, 조합원 숫자가 3000명이 넘었다"면서 "수도권만 투쟁이 벌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 한 달 동안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조직했다. 교사들은 울분이 많았기에 공감대 형성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특수고용 노동자 가운데 최초로 '노조 필증'을 받았다. 그 뒤 곧바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과거 향수 속에 살면 안 되는데, 비정규직 투쟁 역사 속에 재능교육 투쟁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학습지 교사의 '처지'도 설명했다.

"1990년까지만 해도 학습지교사는 정규직이었다. 그 뒤 회사는 '되는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대학 나온 고학력 여성들이 많았고, 일시에 학습지노동자들이 늘어났는데, 그때부터 개인사업자인 '위탁계약자'로 만들기 시작했다. 고용비용 절감이 이유였다. 교사들이 마시는 커피까지 팀별로 돈을 거둬 사고, 사무용품이며 교재 홍보물도 그렇다."

"학습지 시장이 급성장한 게 1997년 IMF 무렵부터다. 사회적으로는 경제가 어려운데 학습지는 굉장히 부흥했던 것이다. 가장이 해고․명예퇴직을 당했지만, 아이들은 교육을 시켜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고액 개인과외를 시킬 수 없었고, 학원도 성행하지 않았다. 그런 속에 선생님이 아이들과 '일대일'로 봐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오고, 이전에는 참고서 위주였는데 시스템에서 짜여진 교재를 갖고 하기에 서민들한테는 굉장한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특수고용은 제조업까지 확대 ... 우리 싸움 이기고 싶다"

그는 "자본 입장에서 보면 특수고용이 최상의 고용 형태라고 한다. 요즘은 제조업에도 '특수고용'이 확대되고 있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반드시 우리 싸움이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 지부장은 "사측은 단협 체결한 다음 날부터 깨기 시작했다. 단협 위반사항을 노동부에 제소하기를 여러 차례 했지만,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는 2003~2004년 사이 노조를 깨기 위한 시나리오를 현장에서 적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세 좋게 노조를 만들어서 한때 4000여명 가까이 갔던 조직으로, 힘을 발휘한 것은 2년이 되지 않았다"면서 "그 뒤부터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간부들을 '표적 계약해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계약해지 사유도 모호하다는 것. 그는 "학습지교사들은 관행적으로 해온 게 있다.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받으면 매달 말일에 모아서 회사 계좌로 입금한다. 그런데, 회원가정을 찾아다니다 보면 수업이 밤늦게 끝날 때가 있다. 그러면 다음날 입금하거나 갖고 있다가 말일에 처리한다. 그런데 회사는 노조 간부의 회원한테 전화를 해서, 회비를 주었는지 파악한 뒤 곧바로 입금이 되어 있지 않으면 공금횡령이라고 해서, 바로 계약해지해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회사도 5~6년 동안 노조 깨는데 올인하다시피 했다. 지국 책임자의 인사 고과 1위가 노조 조직률을 어느 정도 낮추었느냐는 것이었다. 회사는 회원을 늘리기 위한 영업이나 새 상품․시스템 개발보다 노조 가입을 막는데 더 신경을 썼다. 그렇다보니 회원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원 감소로 인한 손실을 전체 재능교육 교사들의 임금삭감으로 전가시켰다"면서 "2007년 5월 사측은 임단협 교섭 1년여 만에 안을 내놓았는데 '임금삭감'이었다. 당시 노조는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사측에서 '이번에 체결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협상하지 않겠다'고 해서 결국 임금삭감이 되는 단협에 도장을 찍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임금삭감'에 반대했다. 임금삭감을 체결하는 노조가 무슨 필요 있느냐고 했고, 분노했다. 그래서 당시 집행부가 물러났고, 현장에서 극렬하게 반대했던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노조를 맡았다.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인 2007년 12월 21일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천막을 치려고 했다. 그때 회사 노무팀장이 나와 '이 자식들아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정부가 된 것이다. 이후 현장 조합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소수 간부 중심으로 천막을 치거나 노숙투쟁을 했다."

유 지부장은 "지금 현장 조합원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재능교육 사측은 노조측에 대해 100여 건의 고소고발, 2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를 했고, 개인 집 살림살이 압류에다 노조 물품 경매처분까지 했다.

그는 "현장에서는 조합원으로 파악되는 순간, 탈퇴 압박이 가해졌다. 지국에서는 계약서를 앞에 놓고 탈퇴서를 적어야 계약하겠다고 했던 것"이라며 "농성하는 노조 간부와 함께한다면 연대책임을 묻겠다고 하면서 탈퇴를 강요했다. 사측은 현장 조합원 한 명도 없는 '유령 불법단체'라고 한다"고 말했다.

"투쟁하다 네 명이 하늘나라로 ... 매년 제사 지낸다"

해고자들의 투쟁은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동안 세상을 뜬 사람도 있다. 모두 네 명이다. 노조는 먼저 간 사람들을 위해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유 지부장은 "노조에서 제사를 세 번 지내왔고, 내년부터는 네 번 지내야 한다. 암으로 올해 1월 돌아가신 동지가 한 분 있다. 전 노조 위원장이 단식투쟁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면서 "우리들은 이 싸움에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지만,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 때문에 현장이 살맛나게 만들고 싶다. 끝까지 싸우고 싶다. 연대해준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재능교육 사측과 노조 지부가 협상을 했지만 타결짓지 못했다. 유 지부장은 "어렵게 해서 교섭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기존 입장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유예기간 6개월을 두고 재계약하자는 입장이었다. 회사는 어제(7월12일) 교섭 결렬을 통보했다. 회사가 어디까지 저급하게 나오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은 13일 오후 창원노동회관 강당에서 "재능교육 1600일 투쟁, 눈물과 희망"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은 13일 오후 창원노동회관 강당에서 "재능교육 1600일 투쟁, 눈물과 희망"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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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보도관련 반론보도문
<오마이뉴스>는 지난 7월 14일자 "싸운 지 1667일...노조에서 매년 제사 지낸다" 기사에서 유명자 전국학습지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의 창원 강연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강연에서 유 지부장은 사측이 '노조활동', '공금횡령' 등을 이유로 노조간부들을 계약해지하였고, 노조측에 100여건의 고소고발, 2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를 하였으며, 최근 어렵게 마련된 교섭도 회사에서 결렬 통보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재능교육은 노조 활동이나 공금횡령을 이유로 노조원 및 노조간부를 회사가 해지한 사례가 없으며, 불매운동을 한 교사에 한하여 계약해지 한 것이며, 노조를 상대로 한 법적조치는 주동자 1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취하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와 함께 재능교육은 '1600일이 넘는 농성을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해 현안문제를 해결하고자 수차례 교섭을 통해 2011년 4월 노동계도 인정했던 합의안보다 상향된 합의안을 제시하였으나 7월 11일 오전 조합이 일방적으로 전화로 결렬 통보를 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재능교육은 지국 책임자의 인사고과를 노조 조직률 감소와 연결시키는 부당노동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노무팀장이 노조원들에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을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위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태그:#재능교육, #학습지교사, #특수고용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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