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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갔다. 그리고 상영관 안에 불이 환하게 다시 들어올 때까지, 극장 안에 있던 단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내가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자, 관객들은 충격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멍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방금 본 장면들을 차마 믿기 힘들다는 듯했다. 바로 영화 <두 개의 문> 이야기다.

입 안의 상처를 아픈데도 자꾸 혀로 건드려보게 되는 것처럼, 마주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러 자꾸만 사람들이 모여든다. 상영관이 적은 독립영화임에도 개봉 8일 만에 벌써 1만 관객을 돌파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정치계 인사들의 영화관람 소식도 줄을 잇는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박원순 서울시장도 영화관을 찾았다. 지난 7월 3일에는 민주통합당 의원 10여 명이 단체관람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보러오게 하는 것일까?

3년 전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졌던 용산 참사, 결코 유쾌하지 않은 그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날의 일들을 당시 촬영된 실제 영상들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담백한 진실 그대로 말이다.

'차라리 픽션이었으면...' 그날의 현실은 영화보다 처참했다

영화 <두 개의 문> 포스터
 영화 <두 개의 문> 포스터
ⓒ 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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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9일, 용산 4지구 세입자 20여 명은 '강제 철거 중단', '주거생존권'을 요구하며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간다. 철거민들이 건물 안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불과 25시간 만에 진압이 시작됐다. 새벽을 틈 타 대다수 언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동원된 여러 대의 살수차가 망루와 건물 안으로 연신 세차게 물줄기를 뿜어대고, 농성자들은 골프공을 쏘거나 화염병을 창 밖으로 투척한다. 특수 컨테이너가 경찰 특공대원들을 싣고 기중기에 의해 들어올려져 옥상 위로 이동되고, 건물 안에서도 계단을 통해 올라온 경찰대원들이 문을 부수며 밀고 들어온다.

다수의 농성자를 검거하고 1차 진압이 완료되었을 즈음, 건물의 옥상에 있던 망루에서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한다. 그리고 언론의 발표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사건은 농성자 5명과 경찰대원 1명의 사망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로 끝이 난다.

영화에서 폭로하는 공권력의 실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의문점 역시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검찰의 조사 초기, 경찰의 안일했던 진압 지시에 대한 조사가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사결과 2000부 분량이 사라진 채로 재판이 진행된다. 여러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촬영되었던 경찰의 채증 영상 역시도 문제의 핵심인 '화재 발생 시점' 분량은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는 사고 며칠 뒤에 '연쇄살인범 검거 소식'을 이용해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을 하려다 탄로난다. 결국 농성자들만 기소되어 징역을 선고받는다.

MB정부 야만성 드러낸 사건... 철거민 호소를 공권력으로 짓밟아

영화 '두 개의 문'의 한 장면
 영화 '두 개의 문'의 한 장면
ⓒ 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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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갑작스레 결정되어 진행된 듯한 진압 과정을 보여주며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에 2대가 동원되기로 했던 특수 컨테이너는 크레인 부족으로 투입 직전에서야 1대만 동원하기로 변경된다. 1층으로 진입 도중 건물 위에서 쏟아지는 화염병을 막기 위한 경찰 대원들의 장비는 나무로 된 합판뿐인 열악한 상황이었다.

또한, 망루를 비롯한 건물 내부의 구조나 인화물의 존재여부에 관련된 정보조차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들에게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사고의 위험을 고려하지 못하고 사태 초기에 급하게 진행된 무리한 진압에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 나온 증언에 따르면, 농성 25시간 만에 '단 한 차례의 협상 시도조차 없이' 진압이 결정된 데에는 경찰 간부가 받은 '누군가로부터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고 한다. 짧은 전화 한 통으로 철저히 준비할 겨를 없이 진압을 시작하도록 명령이 내려졌고, 그 결과 벌어진 사고는 농성 측인 철거민들과 진압했던 경찰 대원들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을 깊은 상처로 남게 되었다. 결국 양 쪽 모두가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영화의 시작은 정권 초창기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막을 올린다. 이 대통령은 '떼를 쓰고 단체 행동을 하면 통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제'라며 '관용없는 공권력을 적용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GDP가 오르기 위해서는 법치주의가 적용되어 한다면서, 후보 시절 '경제대통령'이 되겠다던 그는 이 문제에서도 '경제논리'를 들먹인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인 그는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철거민의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저 '떼를 쓰기나 하는 욕심 많은 범법자'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촛불 집회에서 용산, 쌍용차까지... 기억해야 할 사건들

살릴 수도 있었다.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살릴 수도 있었다.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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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사태에서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묵살해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 촛불 집회 때도 그랬고, 영화 <두 개의 문>에서 보듯이 재개발 정책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철거민들의 목소리도 '무관용 원칙'과 '법치주의 확립'을 내세우며 잠재우려 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강정 해군기지 반대 여론에도 다르지 않았다. 반대 의견에는 색깔론을 들먹이거나 소란을 일으키는 무리들로 낙인 찍어 버렸다. 이런 여론 재판이 끝난 뒤에는 어김없이 공권력이 뒤따라 투입되었다. 물대포가 동원된 강경 진압에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이런 과정에도 국민의 반대가 수그러들지 않고, 자신에게로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면 슬그머니 시점을 바꾸더니 '유체이탈 화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어떤 경우에는 아랫사람의 탓으로 돌리면서 이른바 '꼬리 자르기'도 시도했다. 국민을 진심으로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그저 닥쳐온 위기를 일단 벗어나고 보자는 듯한 모습은 되려 국민을 분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12월에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가 치러진다. 당시 경찰청장 직에 있던 사람들도 지금은 그 자리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이 사건들을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서 그저 편하게 잊어버려도 되는걸까?

기억속에서 잊혀진다고 해서 그날의 아픔까지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잊혀진 역사는 되려 반복되기 마련이다. 야만적인 역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삽입된 '이 다큐멘터리는 용산참사의 역사적 진실을 위해 기억과 기록의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라던 자막처럼, 아픈 역사일지라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싸우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MB정권 하에서 벌어진 야만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객들은 오늘도 이 독립영화를 보러 먼 길을 걷는 수고를 감수하고 영화관을 찾는 것이 아닐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지껏 까맣게 불에 그을린 채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날의 용산을 잊지 않기 위해서.


태그:#두 개의 문, #용산 참사, #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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