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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있는 동안 '내가 있는 곳부터 잘 알자'라는 신념으로 유럽의 다른 나라를 여행하기보다는 프랑스 곳곳의 도시를 여행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직 크레페(Crêpe)의 지방 브르타뉴와 카망베르(Camembert) 치즈가 유명한 노르망디 지방을 가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아쉬웠던 곳이 노르망디에 위치한 몽생미셸(Mont Saint-Michel)이라는 곳이었다. 3년 전 처음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재일교포 아주머니, 승무원과 언어 때문에 대화가 어려워 도와드렸더니 금방 말을 섞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일하는 따님을 뵈러 가는 길이셨다. 어디 구경 가실 거냐는 내 질문에 '몽생미셸'이라고 대답하셨다.

섬 위에 있는 수도원인데 아주 멋있다며 가이드북에 있는 사진까지 보여주셨다. 이렇게 처음 몽생미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수차례, 거길 다녀온 친구들이 꼭 가보라며 권유해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기회가 닿지 않아 못 갔는데, 이렇게 프랑스를 떠나기 직전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친구가 몽생미셸에 여행 갈 건데,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대답은 "Oui!(응)"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생말로'... 한 폭의 수채화같은 풍경

생말로에서 브르타뉴 특유의 돌벽과 검정지붕의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생말로에서 브르타뉴 특유의 돌벽과 검정지붕의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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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구경할 생각으로 우리는 무려 새벽 6시에 출발했다. 그 전날 파리에 비가 와서 걱정했지만 날씨는 맑고, 비 온 덕분에 몽생미셸로 가는 길에 내 평생 본 무지개 중에 가장 큰 무지개까지 보았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파리의 경영대학에서 공부하는 '니콜라'이다. 러시아계 프랑스인인 니콜라는 러시아 고위간부들이 파리를 방문할 때 통역겸 가이드 일도 많이 해보아서 파리의 명소는 물론 맛있는 식당, 바를 낱낱이 알고 있다. 관심사도 다양해서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역사책 등을 사기도 한다. 오늘 여행에서도 운전수를 담당했을 뿐 아니라, 가이드역할까지 맡았다.

운전대를 잡는 동안에도 "왼쪽 봐! 여기는… 오른쪽 봐봐! 여기는…" 하면서 이야기 해주느라 정신이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라 이번에도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그 중 하나가 자기 친구에게 빌려온 브르타뉴 음악 시디이다. 흥겹긴 하지만 가사를 통 알아들을 수 없어서 물어보니 자기도 못 알아 듣는단다. 브르타뉴 지방에는 그 지방만의 언어인 브르통(Breton)이 있어서, 아무리 프랑스 사람인 니콜라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한다. 아일랜드어, 스코트랜드어와 같이 켈트어파인 브르통은 대부분의 사용자가 60대 이상이고, 현재 유네스코에서 정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언어' 중 하나이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오니 벌써 브르타뉴 지방에 다 와가나 보다. 돌 벽에 검정색 지붕을 한 브르타뉴 특색의 건물들이 하나둘 보인다. 몽생미셸에 가기 전에 거기와 가까이 있는 도시를 한 곳 들리자는 니콜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생말로(Saint-Malo)로 향했다.

조금 생소한 이름이지만 브르타뉴지방에서는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영국해협과 가까워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 역할도 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유난히 예쁜 이유가 4시간 가까이 차 안에만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햇볕에 반사되는 바다와 구름, 그 위에 떠있는 배들까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작품같다. 옷을 얇게 입고 온 탓에 브르타뉴 특유의 매서운 바람이 야속하기만 했지만, 이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보고 있자니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람이 가슴을 뻥 뚫어주는 것 같다.

생말로는 브르타뉴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자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생말로는 브르타뉴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자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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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향한 곳은 생말로 성. 이 성은 브르타뉴의 공작들에 의해 12세기경에 지어졌다. 1590년부터 4년 동안 생말로는 '독립 공화국'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성을 따라서 성벽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 성벽과 항구의 80%가 1944년에 일어난 전투에서 파괴되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 촘촘하게 꽂혀있는 방파제가 눈에 띈다. 브르타뉴 지방의 강한 바람을 직접 맞아보니, 파도의 위력은 어떨지 상상이 간다. 또한 여기는 조수간만의 차가 클 때는 14m라고 하니 조수의 차가 특히 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생말로 성과 성을 둘러싼 성벽. 거친 파도 때문에 방파제가 설치되어있다.
 생말로 성과 성을 둘러싼 성벽. 거친 파도 때문에 방파제가 설치되어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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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적 파는 서점, 제2차 세계 대전 때 엽서도...

돌아오는 길에 잠시 고서적을 파는 서점에 들렀다. 니콜라가 책을 고르는 동안 서점을 둘러보니 한쪽에 모여 있는 엽서들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엽서들이 꽤 오래돼 보였다. 뒷면을 보니 글씨까지 쓰여 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옛날에 주고받았던 엽서들을 모아서 파는 거라고 한다. 오래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주고 받은 엽서도 있다고 한다. 2012년, 여행자로 여기에 온 내가 이 엽서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진다.

생말로에서는 해산물 그 중에서도 특히 굴이 유명하다.
 생말로에서는 해산물 그 중에서도 특히 굴이 유명하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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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가 출발할 때부터 여기서는 해산물을 먹어야 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서점 아주머니께서 식당을 추천해주신 덕에 맛이 보장된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넉살이 좋은 니콜라는 주문하기 전부터 오른쪽에 식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음식이 맛있냐며 재차 확인한다.

해산물이 나오기 전에 먼저 여러 가지 연장(?)들이 식탁에 얹혀졌다. 도구 하나씩을 사용해 해산물을 하나씩 먹을 수 있다. 다슬기를 찌르는 이쑤시개만한 꼬치부터, 게 껍질을 깨는 이빨달린 가위까지 해산물 먹기 참 힘들다. 해산물이 나오고, 니코가 알려준 대로 굴에는 레몬을 뿌려서 씹지 않고 삼키고, 고동은 마요네즈에 찍어먹었다. 조금 색다르지만 맛있다.

우리가 정신없이 먹는 동안 니콜라는 게살을 발라서 우리에게 준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이럴 땐 꼭 아빠 같다. 이런 배려에서부터, 옆 테이블 사람들이 다 먹고 나갈 때 인사까지 하는 오지랖까지, 한국에 오면 아줌마들의 사랑은 따 놓은 당상이겠다 싶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브르타뉴지방에서 유명한 능금주(cidre)를 한잔씩 마시고, 우리의 목적지인 몽생미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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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생말로, #브르타뉴,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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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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