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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의 왕관 황제의 아내가 된 불행한 엘리자벳의 이야기
▲ 엘리자벳의 왕관 황제의 아내가 된 불행한 엘리자벳의 이야기
ⓒ 떼아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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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엘리자벳>의 '죽음(토드)'에서 괴테의 <마왕>을 본다. 죽어가는 아이의 눈에 나타난 마왕은 이렇게 노래한다.

사랑하는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나와 함께 재미있는 노래를 하자.
(중략)
네가 사랑스럽구나. 네 예쁜 모습들이 사랑스럽구나!
만약 네가 오기 싫다면, 내가 널 끌어주마!

죽음의 토드 엘리자벳을 사랑하는 죽음
▲ 죽음의 토드 엘리자벳을 사랑하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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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우리를 이렇게 유혹하고 때로는 우리에게 강요한다. 엘리자벳에 대한 토드의 유혹과 강요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데 어쩌면 '사랑'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런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죽음이란 인간에게 필연적인 과정으로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뮤지컬에서 이 죽음을 다르게 해석한다. 특별히 주인공 엘리자벳에게만 한정되어 있으며 그녀 삶의 일부인 것처럼 묘사함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생존의 끄트머리에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죽음보다는 약간은 낭만적이며 어쩌면 그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까지 갖게 한다.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큰 차이 중의 하나는 바로 '죽음'에 대한 해석인데 동양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객체화시키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반면 서양에서는 빈번히 죽음을 객체화하고 더 나아가 의인화시킨다. 문화적, 종교적, 풍토적인 차이로 볼 수 있다. 이 뮤지컬에서는 심지어 죽음을 의인화한다. 위 괴테의 시처럼 의인화된 죽음은 엘리자벳을 유혹하는데 죽음의 신 토드는 이 상황을 마치 연인처럼 노래한다.

마지막 춤 넌 나와 춰야 해
결국엔 나와 함께.

우리 둘이서

뮤지컬에서도 토드의 역할은 젊은 남자가 맡아 이 분위기를 관객에게 설득하고 있다. 죽음은 연인처럼 다정하고 달콤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엘리자벳  두 명의 배우
▲ 엘리자벳 두 명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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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은 황제의 부인이 된다. 엄청난 규율과 금지가 그녀에게 부여된 삶이었다. 처음에는 황제의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날이 갈수록 이것조차도 어려워지면서 엘리자벳은 모든 것으로부터 구속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삶은 집시처럼 자유롭고 모험에 넘치는 삶이었다. 황제의 부인이 되어 왕가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삶을 조금씩 갉아 먹지만 그것으로 그녀의 불행은 끝나지 않는다. 딸은 병에 걸려 죽고 장성한 왕자 루돌프는 자살하는 비극을 겪으면서 어쩌면 엘리자벳은 뮤지컬의 첫 부분 암살자 루케니의 말처럼 죽음에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한때 전 유럽을 지배했던 위대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근친혼에 의해 그 종말을 고하는데, 이 뮤지컬에도 황제와 결혼하는 엘리자벳은 황제의 사촌이었다. 1918년 카를 1세가 퇴위할 때까지 500년을 이어온 왕가는 마침내 그 문을 닫는데, 이 뮤지컬은 민족주의의 대두로 유럽 전체가 분열과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 서서히 몰락해가는 왕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음악

ACT 1 - 대공비 소피(이태원, 이정화 분)의 섭정으로 말미암아 제국은 신음하고 황제 요제프(윤영석, 민영기 분)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대공비의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엘리자벳(옥주현, 김선영 분)과 결혼함으로 이들의 앞날은 어둡고 험난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나레이션하는 엘리자벳의 암살범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최민철, 김수용 분)의 냉소적인 태도는 극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있다.

특히 <계획이란 소용없어>는 ACT 1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는 곡으로서 주인공들의 합창을 통해 뮤지컬의 시대상황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죽음 역의 토드(류정한, 송창의 분)의 음악은 매우 느리다가 격정적인 고음으로 노래하는데 죽음이 가지는 이미지를 비교적 잘 표현해주는 느낌이었지만 가끔 너무 길어지는 대사 때문에 신비감이 줄어드는 느낌도 동시에 받았다.

루케니 극을 설명하는 역(엘리자벳의 암살범)
▲ 루케니 극을 설명하는 역(엘리자벳의 암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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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의 비극이 시작되는 상황을 설명해주는 몇 개의 음악과 함께 극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행복한 종말>은 ACT 1의 정점으로서 루케니의 역할이 강조되는데 루케니는 이 뮤지컬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서 다른 시간대와 다른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객이 뮤지컬 속으로 무리 없이 걸어들어 올 수 있는 가교를 만들어 준다.

ACT 2 - 엘리자벳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대공비 소피의 심술 아닌 심술 때문에 엘리자벳은 자식과의 격리에 또 한 번 절망하게 된다. 이 상황을 비롯해 엘리자벳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 <아무것도>인데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마음에 완전히 다가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음악의 대중성, 호소력이 다른 뮤지컬에 비해 다소 떨어져서 생긴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황태자 루돌프의 자살 장면에서 황태자가 부르는 <내가 당신의 거울이라면>도 애절한 내용과는 달리 관객에게 슬픔을 전달해주는 음악의 기교가 약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베일은 떨어지고>에서 토드와 엘리자벳의 이중창은 꽤나 감동적이어서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감동을 받는 느낌이었다.

무대장치

회전판을 이용한 무대장치는 매우 기발한 것으로 생각된다. 뮤지컬의 장면 장면에서 이 회전판은 절묘하게 사용되는데 시간과 공간의 교차를 설명하고 동시에 감정의 흐름과 시간의 흐름을 적절히 표현해준다.

무대 중간으로 내려오는 줄사다리는 공간 속에 또 다른 공간을 연출해내는 도구로서 죽음 역할의 토드가 주로 이용한다. 죽음이 가지는 상징성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이 줄 사다리는 각도를 달리해서 오르거나 내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른 공간과의 교점을 표현하며 수평으로 걸쳐 있는 상황은 공간 속에 다른 공간이 중첩되어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조명은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주로 하고 어두운 주황, 짙은 녹색을 사용함으로서 이 뮤지컬의 분위기를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다. 최근 뮤지컬의 흐름은 조명이 관객석으로 확장되어 무대와 관객석을 묶으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뮤지컬에서는 이러한 모습은 가능한 자제하고 무대 중심의 조명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엘리자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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