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대문구 충현동
▲ 골목길 서대문구 충현동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뙤약볕에 몇 걸음만 걸어도 뒤통수가 따갑다. 뜨거운 햇살에 동공은 한껏 조여져 자비심도 없는 눈처럼 보인다. 포도의 열기가 스멀거리며 몸을 타고 올라오고, 위에서는 뜨거운 햇살의 열기가 내려와 내 몸에서 조우를 하는 듯하다.

나만 뜨겁고 목마른 것이 아니다. 삼라만상이 목마르다. 이 가뭄천지에도 가뭄이 아니라 착시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는 한 비는 내리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설마, 하늘이 그러하지는 않겠지.

좁다란 골목 사이, 화분에 심겨진 꽃들은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는 이들의 소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 골목길 좁다란 골목 사이, 화분에 심겨진 꽃들은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는 이들의 소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서대문구 충현동(충정로)에는 제법 골목길 다운 골목길을 간직한 곳이 있다. 4대문 안에 있는 얼마남지 않은 옛 풍경을 간직한 곳일 터이다. 근처에는 1971년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라는 풍림아파트, 금화아파트도 있다. 풍림아파트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으며, 금화아파트는 붕괴위험이 있어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골목, 어렸을 적에는 한 없이 넓어 보였던 골목이 어른이 되면 좁게만 느껴진다. 그 넓던 학교 운동장이 좁아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일 것이다. 이런 착시현상이라면 이해도 가지만, 이 가뭄에 자기들의 죄과를 합리화하기 위해 헛소리를 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겠다는 시도에 불과하다.

손가락으로 제 눈을 가리고는 '달이 없다'고 하는 미련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국민의 혈세를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앉아있으니 하늘이 노할만도 하다.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 어디에 심겨졌어도 자기 안에 들어있는 것을 픠워내고야 말겠다는 듯 피어난다.
▲ 골목길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 어디에 심겨졌어도 자기 안에 들어있는 것을 픠워내고야 말겠다는 듯 피어난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다행히 식물이 심겨진 화분엔 도움의 손길이 있어 물기가 남아있다. 어디서 온 것인지 덩굴식물이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하늘로 향하고 있다. 어디에서 피어나도 제 본성대로 살아가는 자연,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그 순간까지 대충은 살지 않겠다는 옹골진 다짐을 본다.

여전히 뜨거운 햇살에 좁은 골목길은 한증막처럼 달아올랐다. 그나마 좁은 골목이라 햇살은 마음껏 활보하지 못한다. 그늘에 있으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골목길 사이로 옛날 황토로 구운 굴뚝도 보인다. 정겹다.
▲ 골목 골목길 사이로 옛날 황토로 구운 굴뚝도 보인다. 정겹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골목사이 어리시절 보았던 황토로 만든 굴뚝이 서 있다. 지금은 하얀 연기를 내뿜지 못하겠지만, 여지껏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자극한다.

저 골목사이로 겨울이면 "찹쌀떠억~ 메밀무욱~"하는 소리가 울려퍼지지 않았을까? 밤참이 먹고 싶었던 이들이 창문을 열고 찹살떡과 메밀묵을 사고,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을 떠와 온 가족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별미뿐 아니라 사랑을 나눴을 것이다.

세상도 변하고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나는 정말 그런지 의심을 한다. 조금 불편해도 행복지수는 그때가 훨씬 높았을 것이다.

시멘트 깨어진 곳에 드러난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아지풀, 그 꼿꼿함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 강아지풀 시멘트 깨어진 곳에 드러난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아지풀, 그 꼿꼿함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골목을 빠져나와 걷다보니 시멘트 부서진 곳에 마른 흙이 드러나 있다.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곳에 강아지풀과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가뭄에 꼿꼿한 강아지풀이라니. 그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위로를 받는다.

살아가면서 피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어김없이 그들은 내 삶을 파고든다. 아픔, 슬픔, 절망, 고통… 이런 단어들이 그들이다. 누구나 품고 사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그것들에 굴복하지 않고 잘 다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온통 아름다운 말로 가득해서가 아닐 터이다. 원하지 않는 단어들을 잘 이겨내고, 혹은 친구삼아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뜨겁고, 따갑고, 목마르다. 그러나 그들도 그렇게 견디며 살아가는데 나도 그래야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4대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가뭄이 아니며, 폭염으로 인한 가뭄착시현상이라고 했다.



태그:#골목사진, #강아지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