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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역 1번출구 앞 희망식당 '하루'
 상도역 1번출구 앞 희망식당 '하루'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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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20일 오후 1시 12분]

"어느 중요한 시점엔 이 나라에서 당신들만이 꼭 필요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저의 바람입니다. 저도 잘 차려진 밥 먹고 용기 얻겠습니다."

서울 상도역 1번 출구 앞 희망식당 '하루'. 17일 오후 1시가 조금 지난 시간, 허름한 옷차림의 여성 한 분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여성은 낮은 목소리로 "도시락으로 포장해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기선 포장이 안 된다고 하자 "그럼 한 그릇만 주세요. 밖에서 먹을게요"라며 식당 밖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여성은 밥 한 그릇을 가볍게 비우고 일어섰다. 그리고 방명록을 내밀며 "부끄러우니 아저씨들만 보세요"라고 말하고 오만 원짜리 현금을 내밀었다.오천 원짜리 밥을 먹었으니 거스름돈을 내주려고 하자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사라졌다.

속으로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설거지를 하려니 저만치서 희망식당 대표인 가을에(가명) 사장이 방명록을 내밀며 읽어보란다. 손을 닦고 방명록을 받아든 순간 갑자기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당신들만이 꼭 필요할 때가 올 것입니다..." 눈물은 그칠줄 몰랐다.

어떻게 이런 글을... 많은 사람들이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수많은 해고자의 절규를 잊어가고 있을 때 그들이 꼭 필요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쓰고 간 저 여인은 누구일까?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그 여인의 행적은 찾을 수 없었다.

희망식당에 온 손님이 적은 방명록의 내용.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희망식당에 온 손님이 적은 방명록의 내용.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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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에 온 대학원생이 방명록에 '힘내세요'라며 그림을 그렸다. 나는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희망식당에 온 대학원생이 방명록에 '힘내세요'라며 그림을 그렸다. 나는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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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는 밥이 희망입니다." - 한겨레신문 안영춘, 김경래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집에 복귀하고 배고파서 밥 먹으러 왔습니다...어제 '희망걷기'는 몸은 힘들었지만 제가 엄청 힘을 얻었습니다." - 서송희
"평택공장과 아주 가까운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노동하지만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제부터 많이 알리고 함께 할게요" - 기아차 노동자

희망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그것은 밥이 희망이고 희망이 힘이었다. 옆에 있지만 같이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나누면서 새 희망을 보았고 희망에 대한 새로운 힘을 얻고 갔다. 그들이 있어 반가운 곳이 바로 이곳 희망식당이다.

희망식당에는 원칙이 있다.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 정 술을 마시려면 인근 슈퍼에서 한 사람당 한 병씩만 사가지고 와야 한다. 그렇지만 안주는 항상 푸짐하게 내놓는다. 또 하나, 식사를 한 다음에는 반드시 "해고는 나쁜 짓이다"는 글을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널리 알려야 한다.

전날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과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과 연대의 날' 행사로 대한문 앞에서 희망밥차를 운영했던 주방장 신동기씨가 밤을 새웠다며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로 주방일을 하면서 괴로워했다. 다행히 손님이 많지않아 두어시간 쉬도록 했다.

희망식당은?
희망식당 '하루'는 블로거 '오후에'(닉네임)씨가 지난 3월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상도역 1번출구 근처 실내 포장마차에서 처음 시작했다. '오후에'씨는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 중 22명이나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식당을 열게 됐다고 한다.

상도역 근처 1호점은 쌍용자동차 해고자인 신동기씨가 주방을 맡고 있다. 2호점은 지난 5월 14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지하철 6호선 상수역 4번 출구 인근의 한식당 '춘삼월'에 열었다. 이곳은 매주 월요일 문을 연다. 2호점의 주방은 쌍용자동차 해고자인 박일씨를 비롯해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훈씨 등이 맡고 있다. 또 6월 24일 희망식당 3호점이 청주 수곡동서 문을 연다. 3호점 주방장은 유성기업의 해고자 김풍년씨다.

희망식당의 수익금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다른 정리해고자들에게 도움을 주는데 쓰인다. 지난 6월 8일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옆에 차려진 쌍용차 분향소에서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코오롱, 콜트·콜텍의 정리해고자들에게 600만 원의 후원금을 1차로 전했다.
역시 '머피의 법칙'인가? 주방장이 잠시 쉬러 간 사이 손님이 몰려들었다. 일손은 바빠지고 머리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쁜 시간도 잠시, 이날 매출은 최근 두 달들어 최악이었다. 가을에 사장은 "오늘 매출은 일일호스트가 책임지는 거야"라며 은근슬쩍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다.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상임이사 이후 손님이 가장 적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오늘 희망식당 '하루'의 식단입니다. 어서들 오세요"라고 올렸다. 하지만 손님은 없고 파리만 날릴 지경이다.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렀다. 이런, '좋아요'는 이럴 때 누르는게 아니다. 바로 희망식당에 달려왔을 때 내가 "좋아요. 감사해요"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좋아요' 누른 사람이 미워진 날이었다.

네 명의 젊은 학생들이 왔다. 인근 대학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이란다. 학생들은 식당 밖의 외부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을 내고 "부족한 것 있으면 항상 부르세요. 여기는 무한제공 식당입니다"라며 빙긋이 웃고 돌아섰다. 그리곤 반찬 몇가지를 더 내다주었는지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학생들이 가고 다시 설거지를 했다. 이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손님에게 상을 내고 계산을 해서 돈을 받는 것과 손님이 돌아간 후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하는데 가을에 사장이 자꾸 웃는다. 나는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러는 걸로 생각하고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임 사장이 부르며 방명록을 내밀었다.

방명록에는 얼굴 그림과 함께 "힘내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누군줄 알아? 당신 얼굴이야. 당신이 해고노동자인줄 알았나봐."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내 감사했다. 하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가 내 모습을 그려주었다는 것에, 또 하나는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진정어린 관심에.

희망식당에 찾아온 강민수 기자가 설거지 일을 돕고 있다.
 희망식당에 찾아온 강민수 기자가 설거지 일을 돕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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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은 손님을 몰고 왔지만 정작 입사 동기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임 사장이 놀린다. "그동안 어떻게 했길래 아무도 안 보여? 여기서 인간성이 드러난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날렸지만 모두 피곤하단다. 그래, 이해하자. 나도 피곤하니까.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두 명의 동기가 왔다. 그것도 내가 부른 것이 아니라 사회부의 홍아무개 선배가 불러서 온 것이었다. 박아무개 동기는 하루종일 당직을 선 후 달려왔고 강아무개 동기는 자다가 달려왔다. 이런 나쁜 xx들...그래도 고맙다. 이렇게라도 찾아주니.

오후 10시에 식당은 끝이 났다. 남은 음식이라곤 밥이 거의 유일했다. 하지만 매출은 많지 않았다. 58만1000원. 몇 번이고 다시 세어봤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근심어린 얼굴로 "오늘 적자는 아닌가요?"라고 하자 임 사장은 "많이 팔 때도 있고 적게 팔 때도 있지요"라며 위로한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날 희망식당에 오신 손님들은 모두 '해고는 나쁘다'는 생각, 해고자들과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생각, 연대하겠다는 동참의 생각을 가지고 왔다. 이들에게서 희망을 보았고 힘들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해고자들의 용기를 보았다.

희망식당 1호점의 영업은 이렇게 끝났다. 상수역 옆의 '춘삼월' 2호점은 월요일에 영업을 하고 다음 일요일(24일)에는 청주에 3호점이 생긴다. 희망식당이 자꾸 늘어난다. 1호점과 2호점은 올해 말까지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사이에 쌍용자동차 문제가 해결되고 해고자들이 복직하길... 그리고 지금은 힘들었지만 이 분들이 여기에 있어 "당신들만이 꼭 필요한 때가 오기를..."


태그:#희망식당,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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