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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산책을 나온 강아지는 아예 목끈을 끌고 다니며 신이 났다.
 주인과 산책을 나온 강아지는 아예 목끈을 끌고 다니며 신이 났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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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운동장을 만들려는 성남시의 시도가 무산됐다. 최근 한 언론은 성남시가 반려견 운동장 설치 관련 추가경정예산 심의를 지난 1일 시의회에 신청했으나 시의회에서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성남시가 신청한 예산은 애완견 놀이터 울타리 설치와 잔디 심는 비용, 휴식용 퍼걸러 설치비용 9000만 원, 선진국 개 놀이터 견학 등의 비용 500만 원 등 모두 9500만 원이다.

지난 6일 <한겨례>에 따르면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예산 낭비에다 위화감 조성이 우려된다"며 이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시의회는 "어린이 놀이터 개보수 비용도 부족한 판에 개 놀이터 조성사업은 일단 거부감이 든다"며 "사람을 위한 사업 예산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사업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예결위는 "시민 정서에도 맞지 않고 사업 진행시기도 적절하지 않다"며 "시민 여론을 수렴한 뒤 사업을 다시 추진하라"고 주문한 뒤 지난 4일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늘어나는 반려동물... 유기동물, 동물학대 문제 불러와

반려견 운동장에 대한 여론은 이미 2006년경부터 있었으나, 현재 전국적으로 시에서 마련한 반려견 운동장은 울산시 정도가 전부이다. 이런 여론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0년 이후 우리사회에 나타난 두 가지의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반려동물산업의 발전이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반려동물산업규모는 1조2000억 원이며 사육 인구는 350만 명, 가족구성원까지 합치면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강원, <애견산업 육성을 위한 입법방향에 관한 연구> 참조)

반려동물문화는 서양 선진국에서는 이미 발전돼 왔다. 독일의 경우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세 가지 요소가 가족, 개, 자동차라고 할 정도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종종 모두 유럽인들의 반려견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하곤 한다.

미국의 경우 현재 가정의 39%가 집에서 개를 기르고 있으며, 고양이를 비롯한 다른 동물까지 합하면 전체 62%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반려동물시장규모는 530억 달러에 달한다. (<세계일보> 2012년 5월 13일자 기사 참조)

그러나 또 한편 반려동물문화의 발전 이면에는 유기동물의 증가와 동물학대 문제가 있다. 미국의 동물단체 'Humane Society of United States'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는 매년 600만~800만에 달하는 유기동물이 보호소로 들어오고 있으며 이 중 300만 마리 이상이 안락사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약 10만 마리 이상이 유기되어 거리로 쏟아지고 있다. 많이 키워짐으로써 많이 버려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유기와 동물학대 문제가 사회화되면서 이를 막기 위한 동물보호단체의 활동 역시 활발해졌다. 2002년 이후 창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동물단체의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가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한 입양 캠페인과 동물학대방지 캠페인이다.

미국의 경우 70년대에 25%에 달했던 안락사 비율은 미국 내 동물단체의 노력 끝에 현재 3% 미만으로 낮춰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일부 지역커뮤니티의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입양 캠페인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개들, 뛰어야 스트레스 덜 받아... 적절한 운동 제공해야

개들을 산책시키면 개의 표정이 밝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개들을 산책시키면 개의 표정이 밝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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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운동장 여론이 동물보호단체의 이러한 정책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려견에게 운동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현재 도시에 살고 있는 개들의 복지를 고려하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반려동물문화발전은 도시화, 산업화의 추세와 맞물려 있다. 그런데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의 도시에서 주거형태는 대부분 공동주택이다. 따라서 이웃 간의 불화도 많이 발생하지만 개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 역시 부족하다. 좁은 골목과 어디든 차가 다니기 때문에 목줄 없이 산책을 다니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동물관련 민원은 주로 개의 배설물 혹은 소음에 관련된 것이나 반려동물 소유주의 입장에서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책시키는 과정에서 이웃으로부터 편견에 기반한 감정적인 항의를 받는 경우들이 많다. 실제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산책시키는 과정에서 이웃으로부터 불쾌한 핀잔을 이유 없이 듣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디를 가든 마음 편하게 산책을 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개들에게 산책이 필요한 이유는 개들의 활동성 때문이다. 개들과 함께 생활하면 개들이 산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금방 알 수 있다. 과학적 연구 결과도 있다. 개와 인간이 모두 활동적인 성향을 좋아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과학연구결과이다. 미국 생물학자인 그렉 거드만 에커드대학 박사는 인류를 포함한 활동적인 동물의 진화적 체계를 연구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즉, 달릴 때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유산소 운동을 하는 동안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천연화학물질이 우리 뇌의 쾌감을 느끼는 영역에서 나타날 때 느껴진다. 거드만 박사에 따르면 이는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뿐 아니라 개 역시 달릴 때 쾌감을 느끼는 방향으로 진화됐고 밝혔다. (<서울신문> 2012년 5월 12일자 기사) 게다가 목줄로 묶어 산책하는 것보다 풀어놓고 운동을 시켰을 경우 그 운동효과는 여섯 배에 달한다. (<뉴시스> 2012년 4월 22일자 기사)

인간이 활동하지 못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들 역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인간사회에서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만큼 개들의 복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 복지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나 일반적인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수의사협회는 동물복지를 "동물에게 적절한 주거환경의 제공, 관리, 영양제공, 질병예방 및 치료, 책임감 있는 보살핌, 인도적인 취급 등 동물의 복리와 관련한 모든 것을 제공할 인간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동물복지의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 영국의 FAWC(Farm Animal Welfare Council)의 5대 자유 중에는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즉 동물복지란 동물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며, 고통이 최소화된 행복한 상태의 유지라고 볼 수 있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2012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위원 교육자료집 참조) 개들의 복지를 어디까지 고려할 것인가의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활동성 있는 개들에게 적절한 운동을 제공할 의무가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 있음은 분명하다.

개들 공간 따로 두면 이웃 간 불화 막을 수 있어

반려견 운동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예산이 투여된다. 아직 인간의 복지도 고려되지 못한 상태에서 개들의 복지를 고려할 수 없다는 의회의 입장은 일면적으로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반려견 운동장이 반드시 개들만의 공간일까? 개들만의 일정한 공간을 지역에 허용함으로써 이웃과의 불화를 막을 수 있는 방책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개들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운동시킬 수 있는 효과이다.

또한 충분한 운동을 한 개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 운동을 하러 온 다른 개들 혹은 사람들과 충분히 교류하며 사회성 역시 키울 수 있다. 개들이 공격성을 가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해 비사회적인 성향이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회의 예산삭감 결정에는 미처 고려되지 못한 여러 다른 측면이 또 있다. 개들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은 소유주들이 개들을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산업의 규모는 키워놓고 그 개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행복하게 살 수 없게 된다면 이는 무책임한 행정과 정책에 다름없다. 반려동물문화의 확장과 더불어 생긴 여러 문제점은 개개인의 책임감만 강조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 정책적 배려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정부의 유기동물보호소 관리에 들어가는 예산 역시 시민의 세금이다. 즉 키우는 사람과 버리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의 공동논의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예산 삭감의 주요한 명분인 위화감 조성과 시민의식에 맞지 않는 정서란 일부 시민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반려동물을 뛰어놀게 해주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인간사회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동물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그러나 반려견 운동장이 일부 반려동물과 사는 시민들의 요구만이 아니라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올바른 반려동물문화 정착을 위한 정책적, 시민적 활동이 전제돼야 한다. 개들이 반려동물의 지위를 법적으로 얻게 된 것은 이미 동물보호법을 통해서다. 2008년 개정된 법에 의해 동물등록제가 마련되었으며, 산책 시 목줄과 인식표의 의무화 규정도 생겼다. 2013년부터는 등록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유기동물을 줄이고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문화를 만들기 위한 법적 기준은 이미 생겼다는 의미다.

이제 어떻게 하면 반려동물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남았다. 'Humane Society of United States'는 유기동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을 통해 소유주의 책임감을 고취하고 번식을 억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과 정책 활동 ▲불임수술지원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선적으로 무분별한 번식을 막아 반려동물의 개체수 증가를 막아야 한다. 과잉 번식은 유기동물발생의 근본적 원인이며 유기는 반려동물에게 가해지는 대표적인 학대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려견 운동장 논의는 우리사회에서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산업의 규모만 확대되었을 뿐, 동물의 복지는 아직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를 통해 우리사회에서 반려동물의 지위와 올바른 문화정착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태그:#반려견 운동장, #반려동물, #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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