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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은 친구들과 함께 들살이를 떠나는 날이었다. 지난해 봄과 가을에는 강원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설악산과 오대산을 다녀왔고 올해는 강원도 마지막 국립공원인 치악산에 오른다. 중학생 10명, 초등학생 7명, 그리고 선생님 7명이 함께했다.

 

들살이 일정

 

들살이 일정은 이렇다. 첫날 우리는 박경리 문학관에 들러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의 옛집을 둘러보고, 오후에 치악산 자연휴양림에서 텐트를 치고 친구들이 준비한 몸놀이로 신나게 뛰어 논다. 저녁에는 저마다 하고 싶었던 요리를 모둠별로 만들어 나누어 먹고, 다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기자기한 몸놀이로 즐겁게 논다.

 

둘째 날 아침, 우리는 유부초밥과 멸치주먹밥을 만들어 점심을 싸고, 치악산 등반을 하고, 저녁에는 야영장에 돗자리를 깔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노래가 있는 밤'을 보낸다. 마지막 날에는 치악산 한증원이란 곳에서 전날 산행으로 인한 몸의 피로를 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이번 들살이는 우리가 다녀왔던 이전 들살이와는 조금 달랐다. 이전에는 우리 땅과 역사, 문화에 대한 공부를 중심으로 들살이를 다녀왔다면, 이번에는 야영을 하고, 식단을 스스로 짜보고, 식재료를 주문하고, 조리도구도 집에서 다 가져오고, 도시락도 싸고, 무엇을 하며 놀지도 우리 친구들이 스스로 짜보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우리 친구들의 시선으로 사진도 찍고, 느끼고 생각했던 바를 글로 정리해 보는 것이 공부의 중심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청소년

 

초등학교 고학년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에게 이런 책임과 권한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잘해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노프라블럼(No Problem)이다. 훨씬 더 풍성하고 창의적인 들살이를 보내고 왔다.

 

청소년 시기 학생들은 자기주도성이 굉장히 강해진다. 어른들이 나서서 이것해라 저것해라 하면 싫어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둠에서 요리를 하는데, 교사가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 하면서 어른 스스로 화려한 요리솜씨를 보여주는 것보다, 서툰 솜씨라도 학생들이 직접 칼질하고 지지고 볶고 하는 것이 낫다. 이때 필요에 따라 교사는 마지막 간 정도만 맞추어 주면 된다.

 

또 텐트를 설치하는 데도, 교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하기 보다는 간단한 설치 요령과 주의사항(비를 대비해 배수로를 파는 것) 정도만 알려주고, 친구들이 설명서를 보면서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하고, 난관에 부딪혔을 때 적절히 나서서 도와주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폴대 사이에 흙이 끼면서 잘 빠지지 않아 당황해 할 때, 다른 폴대로 퉁퉁 두드려 주면서 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정도다.

 

자기가 머리를 써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 친구들은 자기 스스로 만든 요리와 설치한 텐트를 보며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자신들이 시간을 짜니, 재밌는 것은 당연

 

오락가락(음악동아리) 친구들은 '노래가 있는 밤'을 준비했다. 다섯 명의 친구들이 저녁 이후 시간을 책임지는 것이다. 오락가락 친구들이 준비한 작은 음악회에 이어, 함께 한 사람들도 제비를 뽑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제비를 뽑아 당첨된 사람은 누가 노래를 부르면 좋을지, 어떤 노래를 부를지 선정할 수 있었다. 어떤 조합이 만들어 질지 또 어떤 노래를 선곡할지 무척 기대되었다. 마지막으로 장기자랑 순서도 있었다. 즉흥적인 게 아니라 사전에 준비해서 신청까지 받아 놓은 상태이니, 공연의 질도 훌륭하면서 즐겁고 알차고 풍성한 시간이 되었다.

 

실뭉치(만들기 동아리)와 신문동아리 친구들이 짠 놀이안도 여간 재밌는 것이 아니었다. '장애물 달리기', '이인삼각', '이구동성', '돼지씨름' 등 준비한 것이 참 많았다. 놀이 활동을 위한 물품 준비도 빈틈이 없었다. 우리 친구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준비했으니, 재밌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는 무엇을 하며 놀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교사들이 준비하기보다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친구들이 짜놓은 판에 들어가 먹고, 즐기고, 박수치고, 노래 부르고, 웃을 때, 친구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것에 뿌듯해하고 삶의 자신감도 생겨난다.

 

사실 청소년이 되었다고 바로 이런 주도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요리를 하고 놀이를 하는 데 있어서 주체로 서고 싶었던 친구들이 몇몇 있었고, 이들이 잘 설 수 있도록 작은 꼭지들을 맡겨주었다. 저마다 다른 친구들의 발달 상황을 살피며, 도전해 볼 만한 일들을 제시해 준 것이다.

 

물론, 이런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제시해 주어야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친구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아직 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것을 가늠하는 것은 교사들의 몫이겠지만, 정확히 지점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는 않다. 지나친 배려를 간섭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칫 큰 짐으로 느끼며 힘들어 할 때도 있고 안전에 문제가 있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 같은 학년이라고 하더라도 개별차이가 있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때 재빠르게 나서서 조율해 주어야 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겠다.

 

우리가 배운 것

 

사람은 책임을 지고 하는 일속에서 일을 수행하기 위한 능력뿐만 아니라, 일이 돌아가는 모든 절차들이 왜 그렇게 이루어지는지 학습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편에서 문득 생각해보았다. 이번 들살이를 통해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함께 기획해서 좋은 방안을 찾아내는 소통의 훈련, 일을 가늠하고, 수행하기 위한 절차를 생각해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는 능력, 생활 기술을 익히며 생긴 삶의 자신감, 이런 것들이 아닐까?

 

몇 년 전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 65%가 마마보이(걸)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입시제도 속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많이 길러지지만, 난처한 일이 있을 때, 자기 삶에 대해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부모를 의존하는 것이다.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부모인 것이다. '일을 어떻게 처리해 가야할지를 배우고 책임감과 분별력을 키우며, 친구들과 소통하고 조율해가는 능력, 그래서 공동체를 풍요롭게 해나가는 사람'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인재상이 아닐까? 학교에서 이런 능력을 잘 배워가길 소망해본다.


태그:#청소년, #들살이, #생동중학교, #아름다운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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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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