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년 만에 다시 배낭을 꾸린다. 2010년 가을에 회사를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한 달간 유럽 5개국을 돌고 온지 2년 만에 다시 여행계획을 짰다.

나이가 서른이 넘으니 이젠 일도 못 때려 치겠다. 2년 전만해도 20대였기에 나를 받아주는 곳은 많을 것이라는 패기와 자신감이 있었지만... 지금 나는 30대.

누군 나이 서른에 모아 논 돈을 가지고 멋지게 몇 달 동안 여행 떠나고 한다지만, 난 시집도 가야하고(가능하다면), 모아 놓은 돈을 몽땅 들고 멋지게 낭만 여행을 할만한 대인배는 못 되니까.

사장님께 빌고 빌어 1주일 휴가를 받아 단 기간의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1주일 휴가 받기가 그렇게 힘드나 하겠지만, 여긴 3D 직종인 인테리어 사무실. 1분 1초가 아깝게 바삐 움직이는 설계 부서이므로 1주일 휴가를 받아내기에는 엄청난 눈치를 발휘해야 한다.

1주일의 시간으로 떠날 곳을 정하자! 최종 물망에 올랐던 곳은 인도와 터키. 둘 다 일주일 안에 둘러보기엔 택도 없는 매력덩어리지만, 그래도 동남아는 가기 싫었다.

거리상으로 보나 환율 적으로 보나 인도가 부담이 없지만, 난 목적지를 터키로 결정했다. 이유는 자료수집을 하다가 발견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바로 카파도키아 벌룬사진.

이 모습에 꽂혀서 배낭을 꾸리게 되었다. 사진은 5월 10일 새벽에 일어나 찍은 풍경.
▲ 벌룬투어 이 모습에 꽂혀서 배낭을 꾸리게 되었다. 사진은 5월 10일 새벽에 일어나 찍은 풍경.
ⓒ 우현미

관련사진보기


"오, 이게 진짜 그냥 사진이야? 그래픽 아니고? 흠... 직접 확인해봐야겠군."

나의 선택이 터키 쪽으로 기울 때 쐬기를 박은 이유가 하나 있었다. 인도는 치안이 별로 좋지 않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때로는 몇몇 사람들이 대책 없이 달려들어 돈 달라고 구걸 아닌 협박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들었다. 때문에 여성이 가기에는 귀찮은 일이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여행의 철학중 하나는 '무리한 짓 하지 않기'다. 요즘 배낭여행을 다니다보면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은 건지, 아님 함께할 동행을 구하지 못한 건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난 아직까지 그럴만한 배포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여행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건 안전이니까 위험한 지역이거나 늦은 밤에는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겁이 많은 건지 현실적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난 주관적인 생각으로 이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어찌됐든 지난 5월 9일부터 15일까지, 나는 휴가 일정을 잡았다. 출발 비행기는 8일 오후 11시 50분 터키항공. 8일까지 근무를 하고 대전에서 급하게 공항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근무를 하고 바로 인천까지 가서 12시간 비행기를 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고작 일주일 여행이니 시간을 아끼고 아껴야지 별 수 있나. 저녁도 못 먹고 출발하니 중간에 천안휴게소에 들를 때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 해야했다.

휴게소에 들러 감자튀김을 사서 기대와 설렘을 곁들여 맛있게 먹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공항 도착했다. 출발 전날 새벽에 온라인 체크인을 해놓은 상태라 나와 내 여행벗은 줄을 서지 않고 멋지게 비즈니스석으로 가서 금방 짐을 부칠 수 있었다.

짐도 부쳤고, 이젠 공항을 돌아다니며 기분 좀 내볼까 생각했다. 가끔 연예인들 공항패션이니 머니하며 많이들 돌아다니던데 오늘은 누구 없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이런 생각을 하며 회사에서 나오면서 사장님께 받은 용돈(?)을 ATM기에 넣기 위해 지갑을 찾으려는데... 헉, 뭔가 이상하다. 불길한 느낌이 스며드나.

지갑이 없다.

뭐지? 아까 분명 표를 끊고 가방에 넣었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할 교회동생 '반짝이'와 배낭을 다 뒤집어 놓으며 찾아봤지만, 진짜 없다. 생각치도 못한 시나리오. 도대체 어디서 빠진 것일까.

출발까진 아직 1시간 반이 남아 있으니까 잘 생각해보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천안휴게소에서 마지막으로 돈을 쓰고 가방에 넣다가 리무진 바닥에 떨어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일단 공항의 교통관리과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해 공항 직원과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교통과에서 보내준 차량을 타고 리무진 대기 주차장으로 가서 대전청사에서 온 리무진을 찾아 기사님과 공항직원 동생까지 4명이서 버스를 두 번이나 찾아봤지만, 내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그 지갑은 2년 전 유럽여행 갔을 때 밀라노에서 아주 저렴하게 잘 산 가죽지갑이었는데, 내가 너무 맘에 들어 했던 정말 아끼는 지갑이었다. 아.. 이래서 멀리 여행 다닐 땐 다 떨어진 지갑을 들고 가야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다 그 지갑엔 터키 현지에서 뽑아 쓸 국제현금카드가 들어있었다. 우리나라에선 터키 리라가 환전이 되지 않아 반은 유로로 반은 현지에서 뽑아 쓸 요량으로 현금카드에 입금만 해 놓고 왔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분명 버스 안에 있을 것 같다. 정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찾아보자! 다시 버스에 올라 다른 자리까지 샅샅이 뒤져 보는데... 복도 건넌 옆자리 의자 밑에 패댕이 쳐져 있는 내 지갑이 보였다.

'주여! 감사합니다!!'

버스 바닥도 갈색 내 지갑도 갈색이라 잘 안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여행 전에 이런 일을 격고 잘 해결 됐으니 앞으로 조심하면서 다니란 뜻일 것이리라.

'철렁' 내려앉았던 마음을 다시 '업'시키고 버스 기사님과 공항 직원에 큰절을 하다시피하고 급하게 돌아와 티켓팅을 했다. 일이 신속하게 잘 처리되는 바람에 아직은 여유가 있어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가야겠다.

12시간 장시간 비행이라 조금이라도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려는 나는 어쩔 수 없는 30대. 신경을 써야지 뭐 어쩌겠나. 세수를 열심히 하는데 옆에서 일본아줌마 두 명도 같이 세수를 하고 있다. 놀라운 건 세수를 하고난 일본인들이 세수를 하면서 세면대에 튄 물들을 무슨 자기 집 싱크대 정리하듯 휴지로 꼼꼼히 닦아내고 가는 것이었다.

'와... 인정하긴 싫지만 일본은 일본이구나..'

그걸 보고 내가 어떻게 그냥 나갈 수 있겠나.. 나도 내가 쓴 자리는 잘 정리하고 나왔다. '이래서 여행이 중요하다니까... 난 정말 30 평생을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첨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신선한 충격을 안고 터키항공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 거의 국내항공을 이용했는데 터키항공은 서비스가 어떤지 좀 볼까. 역시 친절과 미소는 국내 항공을 따라 올 자가 없는 듯하다. 승무원이 뭘 잘못 먹었는지 집에 우환이 있는지 표정이 참... 답이 안 나온다.

'니들 이래서 어디 장사 하겠니?'

이어 나온 기내식도 열심히 먹고 이제 10시간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승무원이 좁은 복도에 카트를 밀고 다니며 서비스를 하고 있을 때 굳이 꽉 막힌 그 곳을 승무원과 앉아 있는 사람들까지 밀치며 지나다니는 대한민국 아줌마 아저씨들이 보였다.

승무원도 난색을 표했다. 앉아있는 승객들도 불편한 표정.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잘 살게 된 이유는 그 분들의 노력이란 걸 잘 알기에 어른을 공경하려고 늘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마음이 불편해진다.

거기에 더한 것은 한 동안 한국 아줌마 여러 명이 계속 화장실을 쓰고 나오기를 반복했다는 점. 들어가보니 쓰레기 소각장도 이거보단 덜 지저분하겠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혼났다.

문뜩 비행기 타기 전 공항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자기 집 세면대 닦듯이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가는 일본아줌마 들이 생각났다.

'불편한 마음 가운데 또 이렇게 하나 배우는구나.'

이제 여행시작인데 남은 시간에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남은 시간을 보냈다.


태그:#터키 배낭여행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