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 구마모토 현 조동종(曹洞宗) 교구장 이케다(池田大智) 스님(관음사 주지)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 방문단 40여 명이 지난 29일 전북 군산시 금광동에 있는 동국사(東國寺)를 참배했다. 동국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우치다)에 의해 창건된 일본식 사찰.

 

이날 오후 1시 30분 동국사에 도착한 방문단은 일제강점기 일본 북해도로 강제 징용되었다가 희생된 조선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위령제를 올렸다. 조동종 인권위원 다나카(田中淸元) 스님도 함께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부답.

 

동국사 대웅전은 신축(1913) 당시 목재와 기와 등 모든 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으며, 법당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이던 벽암 각성 스님을 종명 법사로 모시고 조성한 '소조석가여래삼존불상'(보물 제1718호)이 모셔져 있어 건물은 일본식, 정신은 한국 사찰로 알려진다.

 

일본 스님과 신도들은 위령제에 앞서 과거의 악업을 청산하고 복을 받으며 부처의 가피를 받는다는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이케다 스님의 분향과 삼배를 시작으로 치러진 위령제는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25분 동안 봉행되었다.

 

위령제를 올리는 법당 한편에서는 황군 전사자 영령 위패와 창씨개명·한국어 말살·신사 참배의 원흉 미나미 총독, 명치 천황의 조선침략 업적을 찬양하는 족자 등이 내걸린 '일제강점기 치욕의 역사 유물 전시회'(5월 23일~6월 22일)가 열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스님과 신도들 표정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아픈 과거 털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때"

 

이케다 스님은 "한국 방문단 여러분을 대신해서 인사를 올리겠다"며 "일본 북해도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고 추모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동국사 스님들에게 감사하고 부처님 제자 입장에서 위령제를 모시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방문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케다 스님은 한국을 네 번 방문했으며, 2010년에도 50여 명의 방문단을 인솔하고 동국사에서 태평양 전쟁 때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위령제를 올렸다고 한다.

 

성불사 주지 종걸 스님(동국사 지원 모임 한국 회장)은 "강제 노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가신 조선인들의 영혼을 추모하고 위로하러 오신 스님과 신도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일본의 조동종은 한국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제강점기 동안 군산에는 일본 절이 10곳 있었고, 전국에 487개의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절(동국사) 한 곳만 남아 있다"며 "해방 후 헐어버리자는 의견과 보존하자는 의견으로 나뉘었으나 대웅전은 2003년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고 소개했다.

 

종걸 스님은 "우리는 부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서로 앙금이 끼어 그동안 교류를 못했던 게 사실이다"며 "일본·한국 양국에 반대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제는 아픈 과거를 털어버리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며 일제강점기 유물 전시회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여러분이 좋은 일을 하러 오셨는데 전시물을 보시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로 받아들이고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아오모리 현 이치노헤 스님이 기증한 유물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누가 지은 건물이든 부처님이 앉아계시면 불교 성전으로 생각합니다. 기분이 상하셨을지 모르겠으나 양해해 주시고 이를 계기로 한·일 불교 교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 지도층의 참회와 반성, 너무 멀리 느껴져

 

종걸 스님이 설명하는 동안 몇몇은 공감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전시된 유물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돌아보았다. 그러나 곁눈질로 살짝 바라만 보거나 위령제가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나가는 일행도 많았다.

 

굳은 표정으로 전시장을 돌아보고 나오는 이케다 스님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러나 스님은 어려운 문제라며 답변을 꺼렸다. 한국과 일본에서 돌아가신 분들 제사를 지내러 왔기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는 것. 전시회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아쉬웠다. 일본 지도층의 진정한 참회와 반성이 너무 멀리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종무소에는 간단한 음료와 과일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방문단이 천안 '망향의 동산'을 들르느라 2시간 가까이 늦게 도착하였고, 점심을 예약해놓아 곧바로 출발하는 바람에 한가하게 담소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대신 동국사 측이 정성껏 준비한 한국산 김을 선물로 받아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국사, #위령제, #일본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