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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헨리 조지가 쓴 책의 많은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 핵심에 있어서, 특히 빈곤의 발생과 관계된 부분에서 그 책은 누구와도 논쟁이 되지 않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노동자의 빈곤이 극심해지고 사회주의가 발흥하던 19세기 말, 교황 레오13세가 라틴어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라고 불리는 유명한 <노동헌장>(영문 제목: The Condition of Labor) 회칙을 1891년에 발표한다.

 

그리고 몇 달 후 당시 칼 마르크스보다도 명성을 떨치던 미국의 사회 사상가이자 토지개혁가인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이에 대한 반론으로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원제: 노동헌장과 제목이 같은 The Condition of Labor, 김윤상 옮김, 경북대출판부)을 발표한다.

 

<노동헌장>은 노동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취한 가톨릭의 대표적인 사회 회칙이다. 교황 레오13세는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강력히 지지했다. 교황 레오13세는 역대 교황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교황으로 평가된다.

 

노동조합이 보편화된 지금으로서는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시로서는 종교계에서, 그것도 교황이 직접 나서서, 노동조합을 승인했다는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노동헌장>은 이후 몇 차례의 공의회를 통해 보완되고 수정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톨릭의 사회 회칙으로 흔들림 없이 인정받고 있다.

 

<노동헌장>은 당시에 들불처럼 번지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한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즉, <노동헌장>의 두 가지 목적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허용할 수 없지만, 노동자는 탐욕스런 지주와 자본가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 레오13세와 헨리 조지, 둘 중에 누가 맞을까?

 

헨리 조지는 당시에 노동 빈곤과 토지 문제에 관해 칼 마르크스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의도하지만 않았지만, 헨리 조지가 펼친 지공주의 운동(토지(가치)는 공유하고 노동의 결과인 임금과 자본의 이자는 사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사상과 운동)은 영국의 온건사회주의 단체인 페이비언협회의 탄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페이비언협회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 Shaw)는 당시 영국에서 부활한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 사람 가운데 6분의 5는 헨리 조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대표적 지성인 시드니 웹(Sidney Webb)도 헨리 조지가 쓴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의 대량 보급이 대중적 사회주의 운동을 촉발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진보와 빈곤>은 당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헨리 조지의 사상은 시장을 폐기하고 토지와 자본을 모두 공유하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와는 다르다.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고, 인간이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인류에게 천부적으로(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토지는 원칙적으로 공유하고, 노동의 결과인 임금과 자본의 이자는 사유를 허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만 토지가 사유화된 곳에서는 사회가 지대(rent)를 환수함으로써 토지가치를 공유하면 족하다고 헨리 조지는 주장했다.

 

사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고, 노동의 결과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며, 시장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에 더 가깝다.

 

헨리 조지는 시장을 부정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닌 시장을 인정하는 고전학파의 흐름에 서 있다. 아담 스미스도 지대는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일반균형이론(general equilibrium theory)으로 유명한 레온 왈라스도 토지는 국유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교황 레오13세의 <노동헌장>을 읽어본 헨리 조지는 교황 레오13세가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넘어 자신의 지공주의 사상까지도 오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교황 레오13세가 토지사유제를 정당하다고 인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반박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헨리 조지는 몇 달간 고심의 작업 끝에 쓴 <노동 빈곤과 토지정의 :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시장을 폐기하고 토지와 자본을 공유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해결책이 아니지만, 토지사유제를 인정하는 교황의 회칙도 정답이 아님을 명백히 밝혔다.

 

그러면서 헨리 조지는 그리스도교는 토지사유제의 철폐를 명한다는 신학적이고, 자연법적이고, 이성적인 (아인슈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논쟁의 여지가 없는(undisputed)') 반론을 펼친다. 아울러 헨리 조지는 토지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 노동 빈곤 문제에 있어 무엇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역설한다.

 

헨리 조지가 쓴 <노동 빈곤과 토지정의>는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교황 레오13세에게 전달되었다. 교황의 공식적인 반응은 알 수 없지만, 헨리 조지를 열렬히 지지하면서 같이 지공주의 운동을 하다가 파문된 뉴욕의 맥글린 신부가 책이 발표된 후 복권된 점과 교황 레오13세가 헨리 조지에 비판적이었던 보수적인 주교들을 이후 멀리한 점을 미루어 보면 헨리 조지에게 공감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동 빈곤의 해법을 논하는 북 콘서트가 열린다

 

교황 레오13세의 <노동헌장>과 헨리 조지의 <노동 빈곤과 토지정의>는 그 내용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노동 빈곤의 근본 해법을 놓고 벌이는 이론적 논쟁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한마디로 말해 '최강 고수들의 논쟁'이라고 할만하다.

 

교황 레오13세와 헨리 조지 사이에서 벌어졌던 노동 빈곤과 관련된 논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토지 정의를 강조하는 헨리 조지의 <노동 빈곤과 토지정의>는 실업과 비정규직, 부동산 문제,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시달리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황 레오13세의 <노동헌장>과 헨리 조지의 <노동 빈곤과 토지정의>는 아직까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노동헌장>은 우리나라 천주교에서 번역하여 조금은 알려져 있지만, <노동 빈곤과 토지정의>는 지금까지 번역이 되지 않아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헨리 조지 사상의 국내 최고봉인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가 <노동 빈곤과 토지정의>를 번역하여 출간했다. 김윤상 교수는 헨리 조지의 출세작이자 명저인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도 이미 번역하여 출간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 문제와 부동산 문제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헨리 조지의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출간을 기념하는 북 콘서트가 6월 8일(금) 저녁 7시 명동 청어람 지하 소강당에서 토지정의시민연대, 토지+자유 연구소, 희년함께 공동 주최로 열린다.

 

북 콘서트에는 사회자로 나꼼수 진행자인 김용민씨, 역자 및 부동산분야 패널로 김윤상 교수, 노동분야 패널로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종교분야 패널로 방인성 함께여는교회 담임목사가 참석하여 노동 문제와 부동산 문제, 종교 문제에 대한 흥미진진한 입담을 펼치게 된다. 북 콘서트 참가비는 없으며 온라인(http://landliberty.org/xe/39229)으로 신청하면 된다.

 

노동의 빈곤 문제와 부동산 문제가 지금도 여전한 우리나라에서 헨리 조지의 사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혹여 한계는 없는지, 헨리 조지가 말하는 노동 빈곤 문제와 부동산 문제의 해결책을 들어볼 수 있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기회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헨리 조지 씀, 김윤상 옮김, 경북대학교출판부 펴냄, 2012년 4월, 212쪽, 1만 원
* 고영근 기자는 희년함께(www.landliberty.org)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고,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운영위원입니다. 이 기사는 기독교인터넷언론인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하였습니다.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헨리 조지 지음, 경북대학교출판부(2012)


#북 콘서트#헨리 조지#교황 레오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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