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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열린 소아암 환우돕기 마라톤에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김상용(왼쪽)씨와 마라토너 페이스메이커 이호준(오른쪽)씨가 결승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 서울시민마라톤대회 지난 6일 열린 소아암 환우돕기 마라톤에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김상용(왼쪽)씨와 마라토너 페이스메이커 이호준(오른쪽)씨가 결승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 박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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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싶은 시각장애인이 있다면 그들의 눈이 되어주는 게 저의 임무죠."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의 눈이 되어주는 천사가 있다. 바로 이호준(35)씨가 그 주인공.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일, 이호준씨에게서 행복한 봉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제도 마라톤 봉사가 있어서 마라톤을 뛰었더니 너무 힘드네요"라며 첫 마디를 건넨 그는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인터뷰가 있기 전날인 6일에는 서울 한강 둔치에서 제9회 소아암 환우돕기 마라톤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는 "1급 시각장애인과 호흡을 맞췄는데, 벌써 10번 째 함께 뛰었어요"라고 말하며 마라톤대회를 설명했다. 더운 날씨에 힘들었겠다는 기자의 걱정에 "날씨가 덥고, 뛰는 게 힘들어도 마라톤을 뛰고 싶어 하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이 있다면 그곳에서 그들의 눈이 되어주는 게 저의 임무죠. 이제는 마치 한 몸 같아요"라며 밝은 얼굴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현재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의 경기를 돕는 모임인 '해피레그(Happy legs-행복한 달림이)'의 일원인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뛸 때 그들의 눈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는 "4년 전 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43명의 시각장애인 마라톤 도우미 역할을 했어요"라고 자신의 경력을 소개했다. 도우미의 역할에 대해서 묻자 "시각장애인들이 마라톤을 뛸 때는 작은 턱이나 돌맹이 하나에도 걸려 넘어지기 쉬워요. 그래서 그들을 안전한 코스로 달릴 수 있게 해 주는 게 저의 역할이죠"라고 설명했다. "마라톤 코스 안내를 하면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선수들의 페이스를 조절해주는 것도 제가 하는 일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도우미 역할을 할 때는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코스를 뛰다보면 많은 행인들이 지나가는데 그들에게 길을 비켜달라고 열심히 소리쳐도 늦게 비켜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행인이 부딪치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라며 어려움을 토했다.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마라톤이 열리는 장소의 마라톤 코스를 분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그는 "마라톤이 있기 전이면 인터넷을 통해 사전에 길을 숙지해야 해요"라고 설명했다.

마라톤을 뛰는 중에는 "1km를 지날 때마다 시각장애인에게 남은 거리를 알려주면서 페이스 조절을 하고, 급수지점에서 음료를 마실 것인지에 대해 미리 물어보는 것도 신경 써야 해요"라며 자신이 하는 역할을 설명했다. "경기 중에는 선수들에게 장애물을 알려야 하고, 선수의 페이스를 분배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가 길수록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라며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방법을 밝혔다. 이호준씨는 "선수들에게 컨디션이 어떤지, 몸 상태는 어떤지를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말벗이 되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며 마라톤을 뛰는 동안 선수들과 많은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전했다.

어떻게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을 돕는 봉사를 시작하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에는 그냥 마라톤만 했어요. 완주 후에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에 빠졌죠"라는 그는 처음에는 단지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해 마라톤을 즐겼다고 한다. 그렇게 취미로 마라톤을 즐기던 어느 날 "경기 중에 서로의 손목에 끈을 묶고 달리는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갔어요.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시각장애인의 마라톤을 돕기 위해서 끈을 묶고 함께 달리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더라고요"라며 처음 해피레그를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날 이후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도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해피레그라는 봉사단체에 가입하게 됐죠"라며 동기를 설명했다.

시각장애인들과의 마라톤에서 힘든 점을 물어보자 "처음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과 마라톤을 할 땐 마라토너들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힘들었어요"라고 답했다.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뛰는 게 중요한데 "옆에서 달리는 마라토너의 상태에 맞춰서 달리다 보니 평소보다 더 힘들었죠"라며 마라톤 도우미를 처음 했을 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과 같이 연습하고, 준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페이스를 맞추게 되요"라고 전했다.

해피레그에서는 시각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1년에 한번 시각장애인 체험을 진행한다. 이호준씨는 "시각장애인 체험을 한 뒤 시각장애인과 일심동체가 되지 않고는 그들의 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어요"라며 그들을 공감할 수 있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곤 "일심동체가 되어 달려보니 뛰는데 어려울 게 없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시각장애인의 손과 본인의 손을 연결한 얇은 끈 하나로 "서로를 믿고 함께 달리는 것"이 시각장애인과 마라토너 도우미의 마라톤 방식이다.

흔히 마라톤을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비유한다. 하지만 달리는 천사 이호준씨는 "혼자 싸우는 것 보다 둘이 싸우는 게 더 행복해요"라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마음속에 품고만 살아왔는데, 기회가 되면 앞으로 장애인 아이들과 국토 순례 대장정에 참여해 보고, 장애인 마라토너들과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는 게 꿈이에요"라고 밝히며 인터뷰를 마쳤다.


태그:#마라톤, #해피레그, #이호준, #시각장애인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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