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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의 지명 유래에 대해 강의하는 이복웅 원장
군산의 지명 유래에 대해 강의하는 이복웅 원장 ⓒ 조종안

지난 22일(화) 오후 7시 군산시립도서관 5층 교양문화실에서 열린 '群山學'(군산학 : 군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세 번째 강의 강사로 나선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은 군산의 마을(里) 단위별 유래와 지명의 변천 과정을 두 시간 동안 설명했다. 

이 원장은 지난 2003년 자신이 발간한 <군산의 지명 유래 (개정 3판)> 내용을 중심으로 강의를 이어갔다. 책에는 군산지역 지명 역사와 전설, 설화 등이 실려 있다. 미국 의회 도서관, 캘러포이나 주립대학 도서관, 남가좌주 대학 도서관에서 보존 중이며 한국학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원장은 "자식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소망하던 우리 부모들은 예부터 이름과 인간의 운명은 관계가 깊은 것으로 믿어왔다"며 "가정의 행복과 마을의 번창을 바라는 마음에서 지명(地名)에도 적잖게 신경을 써왔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마을 이름은 자연환경, 즉 산천초목(山川草木) 암석(巖石) 고개 등에서 비롯된 것과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만든 것(시장, 주막 등), 신앙생활 관련(유·불·도·선), 유적과 위치 물형(物形)에 따라 정한 것(풍수지리설), 마을 사람들 직업과 촌락발생의 신구(新舊)에 따라 정한 것, 전설이나 설화에 나오는 것 등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전통은 오랜 생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역사가 있는 곳이면 반드시 문화가 있고, 문화가 있는 곳에 전통이 있게 마련이다"며 "현재 호칭 되는 마을의 유래를 분석해보면 이름 뜻은 물론 지역의 문화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적(遺跡)과 관련된 마을

이복웅 원장은 이름에 둔(屯), 역(驛), 원(院), 관원(官院), 서원(書院), 진(鎭), 성(城), 창(倉) 또는 사창(司倉) 등이 들어가면 선조들의 발자취, 즉 남아 있는 건축물이나 싸움터 또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 등을 이르는 유적(遺跡) 관련 마을로 분류했다.

조선 시대에는 군대가 주둔하는 군사기지를 '둔영'이라 했는데, 이 원장은 '모을 둔'과 관련된 마을로 군산시 나포면 둔터(屯基)와 군둔(軍屯), 성산면 둔덕리(屯德里) 옥구읍 둔산(屯山) 등을 꼽았다, 

역마를 갈아타는 곳으로 일컫는 '역' 관련 마을은 나포면 '구역리', 옥구읍 '순연리(순역동)', '내역' 등이었고, 관원을 위한 '국영 여관'을 일컫는 '원' 관련 마을로는 회현면 '원우리'와 임피면 '이원리', 서수면 '관원리'를 꼽았다. 서원과 관련된 마을도 있었는데, 임피면 '서원리', 회현면 '학당리' 등이었다.

조선 시대 지방방위 조직체인 '진'에서 유래한 마을로는 미성읍 선유도의 '진멀'과 오식도 '진터멀' 그리고 나포면 '진장'이었다. 옥구읍의 '동문안', '서문안', '동문밖'과 옥구읍 옥봉리의 '성남동', '내성산', '외성산', '신성산', 옥산면의 '구성', '금성', 임피면 '성내' 등 '성' 관련 마을이 10개나 되어 군산이 군사요충지로 산성(山城)이 많았던 지역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외에도 곰, 송아지, 강아지, 쥐, 말(馬) 등 동물에서 유래한 마을과 촌(村), 전답(田畓), 용(龍), 산(山), 다리(橋), 나무(木), 마을의 형태, 조류(鳥類), 전설 등과 관련된 마을도 많아 흥미를 끌었다. 물길이 천 리가 넘는 금강(407.5㎞)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옥산면 칠다리 마을, 석교 마을, 대야면 복교리 마을, 광교리 마을 등 다리(橋) 관련 마을도 많았다.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일본식 지명(地名)들

군산(지금의 원도심권)은 본래 옥구현 북면(北面)에 속해 있었으나 갑오개혁(1894~1896) 때 부, 목, 군, 현을 모두 군으로 고치면서 옥구현도 옥구군이 된다. 옥구군은 1906년 옥구부가 되며, 경술국치(1910) 이후 다시 옥구군으로, 군산은 군산부(府)로 개칭된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시(市)로 승격되었고, 1995년 군산시와 옥구군이 통합,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15년 발행된 <群山案內>는 갈대밭을 매워 평지(시가지)로 만들고 서부, 동부, 중부로 나누었으며 옥구지역 일부를 군산부로 편입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시가명은 정(町)과 동(洞)으로 구분했는데, 마치(町)는 일본식, 동은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름으로 리(里)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경술국치(1910) 이후 일제는 조선 땅을 조사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토지조사에 착수하고 우리의 혼과 정신이 담긴 지명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데 조선의 수도 한성(漢城)을 일본 동경(東京)의 다음 도시처럼 느껴지는 경성(京城)으로 고친 게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조선의 전통문화와 민족혼 말살정책은 일제가 탐내던 도시답게 군산에서 절정에 달한다. 금광동, 중동, 영화동, 천도, 횡전, 강호정 등 일본식 동명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 명치정, 소화통은 일본의 연호를 기념하는 이름이고, 옥구저수지 인근의 팔목촌, 중야, 전중, 열대자 등도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명칭으로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우리 마을 이름, 고향은 어디일까?

 등동마을 입구. 길가의 함박꽃이 환영하는 듯하다.
등동마을 입구. 길가의 함박꽃이 환영하는 듯하다. ⓒ 조종안

우리 마을 이름 내력도 궁금했다. 나의 주소는 등동길 11호로 '등동마을' 길목이라는 뜻이다. 등동(燈洞), 등골(꼴)로 불리는데 등잔 모양의 지형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밤늦게까지 주경야독하는 '서당골'을 뜻하며 '등골' 한자어 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내려온다. 

대문을 나서면 집 앞으로 펼쳐지는 들녘 이름은 '만호(萬戶)뜰'. 마을 어른들에 의하면 밀물 때는 금강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는데 간척사업으로 '십자뜰'과 함께 논이 되었으며, 들녘 이름의 유래는 해마다 1만 가호의 1년 양식을 수확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부산에 살던 몇 년 전 추억도 떠올랐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역(驛) 지게골, 못골, 대연 등이 정겹게 느껴졌기 때문. 군산만큼이나 산이 많은 도시 부산은 높은 산들이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게 특징인데, 도심의 지하철역 이름이 깊은 계곡의 연못과 심심산골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복웅 원장은 "어느 지방이고 그 지방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이 있다"고 강조하며 "선조들이 태어나 자란 땅에서 뿌리로 남아 살아가고 있음은 역사의 맥이고 흐름이며 이어가는 끈이라고 할 때 우리 마을은 그야말로 소중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역사 인식과 의식이 곧 향토정신이다"며 강의를 마쳤다. 

지난 4월 16일~4월 23일까지 군산시민을 대상으로 수강생 50명을 모집해서 시작된 '군산학 강좌'는 두 번의 현장탐방을 통해 고군산군도와 군산지역의 역사장소를 확인하고, 군산의 자랑거리를 수강자가 직접 찾아보는 참여 토론식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시#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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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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