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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한 무장포항, 이른 새벽부터 어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무창포항 안개가 자욱한 무장포항, 이른 새벽부터 어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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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작은 항이지만, 조선시대엔 충남서부지역의 모든 곡물이 모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 무창포항 지금은 작은 항이지만, 조선시대엔 충남서부지역의 모든 곡물이 모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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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엔 왕실로 가는 진상품이 모이는 항구였을 터이고, 일제시대엔 일본에 약탈당한 것들이 모이는 항구였을 터이다.
▲ 무창포 조선시대엔 왕실로 가는 진상품이 모이는 항구였을 터이고, 일제시대엔 일본에 약탈당한 것들이 모이는 항구였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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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해수욕장은 일제시대때 개장되어 서해안 지역에선 해수욕장의 원조라고 하니 일제시대때 수탈의 횡포가 무창포항을 비껴갔을리 없을 터이다.
▲ 무창포항 무창포해수욕장은 일제시대때 개장되어 서해안 지역에선 해수욕장의 원조라고 하니 일제시대때 수탈의 횡포가 무창포항을 비껴갔을리 없을 터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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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의 등대, 안개가 자욱해서 잘 보이질 않는다. 마치, 무창포의 오늘을 보는 듯 하다.
▲ 무창포항 방파제의 등대, 안개가 자욱해서 잘 보이질 않는다. 마치, 무창포의 오늘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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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에서 바라본 무창포항, 잔잔한 바다 고요한 바다에 생기가 가득 넘치기를 바랄 뿐이다.
▲ 무창포항 방파제에서 바라본 무창포항, 잔잔한 바다 고요한 바다에 생기가 가득 넘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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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하나, 배 하나, 가로등 하나...
▲ 무창포항 등대 하나, 배 하나, 가로등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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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명성을 찾지 못해도 여전히 그곳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이들 있을 터이다.
▲ 무창포항 예전의 명성을 찾지 못해도 여전히 그곳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이들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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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구와 깃발, 펄럭이는 만선기 힘차게 흔들리며 항구로 돌아오는 꿈
▲ 무창포 어구와 깃발, 펄럭이는 만선기 힘차게 흔들리며 항구로 돌아오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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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기 펄럭이는 무창포항
▲ 무창포항 만선기 펄럭이는 무창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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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는 한자로 '무창포(武昌浦)'자를 쓴다. '무(武)'자는 '굳셀 무'요, '창(昌)'은 창성할 창으로 '창성함이 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창성함이 강하다는 뜻을 가진 무창포는 조선시대 세곡을 모아 바다를 거슬러 한강을 타고 마포나루까지 옮겨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 옛날 조선시대는 물론이요, 일제시대에도 무창포항은 이래저래 민중들이 수탈당한 것들이 모이는 곳이었을 터이다. 양반은 혹은 임금은 일하지 않아도 진상품을 받아 먹고, 민중들은 땀흘려 일해도 세곡이다 뭐다 바치고 나면 보릿고개를 넘기기 일쑤인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일제가 다스릴 때에도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서해안 해수욕장 중에서 원조가 일제시대 개장한 무창포해수욕장이라니 지리적인 요건 때문에라도 충남서부의 곡창지대를 약탈해가는 항으로 손색이 없었을 터이다. 물론, 군산항처럼 더 큰 항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안개가 자욱한 날 새벽 무창포항은 쓸쓸했다. 아직도 그 옛 기운을 다 잃어버리지는 않았겠지만, 조용한 무창포항에선 수탈의 역사가 떠올랐다.

누군지 모르겠다. 무창포를 '無窓浦'라고 하여, 창이 없는 포구라고 했던 이가. 안개 자욱한 무창포항, 어쩌면 그 이름을 더 닮기도 했다.


태그:#무창포, #만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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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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