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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만도체 공장의 비밀을 다룬 만화
▲ <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 삼성 만도체 공장의 비밀을 다룬 만화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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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이라는 책을 받아들었을 때 먼지 가득한 골방에서 먼지를 마시며 폐병으로 죽어갔다던 청계천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1970년대 다닥다닥 붙은 어두컴컴한 골방이나 다락에서 하루 16시간씩 미싱 돌리고 실밥 따던 봉제공 소녀들이 있었다. 1970년대 봉제공장 소녀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영양부족으로 폐병에 걸려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2000년대 먼지 없는 방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먼지 없는 청결한 방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청결이 필수인 반도체의 품질과 생산성을 위한 것이다. 먼지 없는 방에는 방진복을 입고 화학약품을 이용해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맨손으로 세척하는 반도체 소녀들이 있다. 반도체 소녀라 불리는 그 노동자들은 독한 화각 약품에 조혈세포가 파괴되는 백혈병으로 하얗게 생명이 사위어가고 있다. 반도체 품질을 위해 먼지 없는 방을 만든 삼성은 노동자들을 위한 청결이나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드라큘라나 흡혈귀보다 더 사악하게 노동자의 생명과 피를 착취하는 것은 마몬의 망령에 사로잡힌 자본가이다. 대한민국 대표적  마몬의 후예는 삼성이다. '삼성'은 노동자들의 '로망'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골수를 빼먹는 무서운 괴물이었던 것이다. 그 괴물의 선두에 반도체 사업이 있다. 반도체 공장에서 100여 명이 백혈병에 걸려 30명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들의 죽음에 대해 삼성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아 그들은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받다가 빚더미 속에서 죽어간다.

먼지 가득한 방에서 일하던 봉제공장 소녀들이 이제는 먼지 하나 없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다는 차이뿐 30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의 삶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2003년경 고등학교 졸업 후 서른이 넘을 때까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여성이 온몸이 아프다며 한의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왔다. 한의사는 일을 당장 그만두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엄마에게 사준 집의 대출금을 갚을 때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며 쉬는 날에 침을 맞고 한약을 지어 돌아가곤 했다. 대출금을 다 갚고 몇 년 전 일을 그만두었다는데 그녀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을 읽으며 며칠 전 유명을 달리한 이윤정씨와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노동 현장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씨 얼굴이 떠올라 조금 우울해진다.

공업용 본드를 이용해 하루에 1만2천 개의 부품을 10명이 부착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아들아이가 얼마 전에는 같은 공장에서 부품 검사를 하는 일을 한다고 할 때 불안감이 엄습했었다. 일의 강도에 비해 시급이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무실은 틀지도 않는 에어컨을 자기들 작업장엔 늘 틀어준다고 했다. 비록  5일간이었지만 불안해서 아들아이에게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아이는 시급 6천 원은 높은 것이라며 그만두려하지 않았다.

노동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휴대폰을 비롯한 대부분의 반도체 부품들을 삼성은 여기저기 하청을 줄 것이고 하청업체까지 합친다면 얼마나 많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것인가. 화학 약품에 대한 설명이나 위험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데다 일의 특성상 깨끗한 작업 환경 때문에 노동자들은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마몬의 후예 삼성을 비롯한 재벌 기업과 자본가들과 싸워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죽어가고 있는 반도체 소녀들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다. 우리 이웃과 친척이 우리의 아이들과 바로 우리 자신이 보이지 않는 위험에 맨몸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먼지 없는 방. 사람냄새/ 김수박 만화/보리출판사/ 각 권 12,000원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김수박 지음, 보리(2012)


태그:#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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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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