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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 건 큰 딸 아이 덕분이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큰아이가 혼자서 숫자쓰기를 하자, 그걸 본 초보엄마는 그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지금도 그 기사를 읽어보면 웃음이 난다. 아이가 혼자서 글씨를 쓰고, 새로운 단어 하나만 얘기해도 당시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발견이었고 화젯거리였다.

혼자서 숫자를 쓰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그 딸아이가 이제 11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아이는 부쩍 외모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특히 긴 머리에 집착했다. 아이의 기호와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날씨가 궂은 날, 치렁치렁한 머리를 늘어뜨린 모습을 보면 '머리 좀 자르자'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특히 시어머님은 긴머리를 유별나게 싫어하신다. 큰아이의 긴 머리를 두고 시어머님의 협박, 회유와 머리를 지키기 위한 아이의 눈물겨운 투쟁 때문에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다. 마침내 타협안이 도출됐다. 머리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는 대신, 단정히 하고 다닐 것, 그리고 오는 8월에 자를 때까지 '잔소리'하지 않을 것.

8월은 딸 아이가 정한 '데드라인'이었다. 왜 하필 8월이냐고 물었더니, 방학 끝나고 개학하는 날, 반 친구들에게 '서프라이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8월까지 머리를 기르면, 너무 덥고 불편하니 조금 더 일찍 자르자고 달랬다. 결국 7월에 자르기로 잠정 합의.

머리 손질할 때마다 벌어지는 아이와의 전쟁

 엄마가 앞에서 사진을 찍는 줄도 모르고 만화에 열심인 딸. 새끼손가락에 검은 매니큐어는 또 언제 칠했니?
엄마가 앞에서 사진을 찍는 줄도 모르고 만화에 열심인 딸. 새끼손가락에 검은 매니큐어는 또 언제 칠했니? ⓒ 안소민

평소 머리 손질도 꼭 자신이 하겠다고 우긴다. 스스로 하겠다는데 내가 말릴 이유는 없지만, 머리 모양이라는 게 내가 봐도 이상할 때가 더 많다(이건 순전히 내 관점이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라'라며 꽤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엄마처럼 애써 쿨한 척하지만 가끔 '영 아닌' 머리모양을 보면 엄마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발동한다. 내가 머리손질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딸은 자존심이 상하는지 얼굴이 뾰루퉁해지면서 한마디 던진다.

"엄만, 스타일을 몰라, 요즘은 이게 유행이야."

딸의 외모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사촌언니의 영향도 크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조카딸은 일본패션잡지를 애독하고, 케이블 TV프로그램 <온스타일>의 마니아다. 조카도 외출할 때마다 엄마와 전쟁을 한다고 했다. 어느 날 조카가 내게 물었다.

"숙모, 숙모도 나중에 의진이가 중학교 가서 화장하면 반대하실 거예요?"
"당연하지. 안 해도 예쁜 나이인데, 왜 벌써부터 피부를 망치고 그래?"
"어휴(한숨)... 전 숙모만큼은 안 그러실 줄 알았는데... 전요, 제발 엄마가 제 외모에 신경 좀 꺼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건 다 간섭해도 상관없는데 외모만큼은 정말 제 맘대로 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요즘 이 정도는 기본이란 말이에요."

어이가 없었다. 조카가 말하는 '이 정도'라는 건 선크림에 비비크림을 바르고 입술엔 립글로즈까지 한 상태였다.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이보다 더 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벌써 어지러웠다. 내가 그새 구닥다리가 되었나? 요즘 아이들의 놀라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궁지에 몰릴 때, 딸아이가 하는 말

 이 곰돌이 모양의 젤리는 아이들의 비타민 영양제다. 딸애가 비타민을 먹다가 즉흥적으로 만든 곰돌이 젤리 설치미술(?). 제목은 '지루한 조회시간'이다. 앞에 혼자 있는 곰돌이가 교장 선생님이고 나머지는 졸거나, 수다떨거나, 장난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란다. 딸 아이는 상상력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아이다.
이 곰돌이 모양의 젤리는 아이들의 비타민 영양제다. 딸애가 비타민을 먹다가 즉흥적으로 만든 곰돌이 젤리 설치미술(?). 제목은 '지루한 조회시간'이다. 앞에 혼자 있는 곰돌이가 교장 선생님이고 나머지는 졸거나, 수다떨거나, 장난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란다. 딸 아이는 상상력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아이다. ⓒ 신의진

딸아이의 두 번째 변화는 성격이었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까칠하고 예민했다. 아직까지 크게 반항하거나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집요하게 말대꾸를 하는지 정말 요즘들어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아이와 말도 안되는 억지 말싸움을 할 때면 함께 '덤 앤 더머'가 되는 기분이다. 마침내 머리 뚜껑이 열리고 폭발한다.

"의진아."
"왜요?"
"엄마가 부르면 왜요라고 하지말고 네라고 해야지."
"네 근데 왜요?"(끝까지 왜요)
"학교 다녀왔으면 가방은 방에 잘 갖다놓아야지."
"네. 이것만 보고요."
"가족들 다니는데 거치적거리니까, 지금 갖다놔."
"잠깐만요. 이것만 보고요."

10분 후에 가서 봐도, 가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때부터 전쟁은 시작된다.

"엄마가 가방 갖다놓으라고 했잖아."
"지금 막 갖다놓으려고 했단 말이에요.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하라니까 더 하기 싫어지잖아요."
"엄마가 말한 지가 10분이나 지났잖아."
"그러니까 이것만 보고 한다고 했잖아요. 지금 막 하려고 했다니까요."
"빨리해."
"알았어요."
"'네'라고 해야지."
"알았다니까요. 근데 엄만 왜 저한테만 그래요? 의경(동생이름)이한텐 암말도 안 하면서."
"의경이는 가방을 잘 갖다놓으니까."
"지난번엔 의경이도 거실에 놨단 말이에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이야기를 시작했던 애초의 목적과 이유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고, '말꼬리 누가누가 잘 잡나' '왜 나만 갖고 그래' 게임이 시작된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아이는 울먹이며 마침내 내게 한 마디 한다.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엄마, 제가 지금 사춘기거든요. 그러니까 저 좀 봐주세요. 저도 힘들어요."

빵 터진다. 물론 속으로만. 나는 속으로 웃는다. 물론, 비웃는 건 아니다. 단지 아직은 사춘기 초년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귀엽다.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는 있어서, 자신이 사춘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는 거다. 어느 때는 사춘기가 무슨 '벼슬'이나 되는 것처럼 제 동생한테도 "언니 요즘 사춘기거든? 까불지마라"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자신이 사춘기라고 얘기하고 다닐 정도면 내가 보기에 아주 심각한 사춘기는 아니다. 다행이다.

오히려 내가 두려운 건 요즘 아이들의 '조숙증'이다. 예전에 비해서 2차 성징도 빠르고, 우리 세대에 비해 아는 것도 많다. 여자 아이의 경우 생리가 시작되면 키 성장이 멈춘다는 속설이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어, 초등 고학년을 둔 엄마들은 딸아이들의 생리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요즘은 초등학교 6학년에도 초경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난 정말 우리 아이가 최대한 늦게 성장하길 바란다. 몸도 마음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컸으면 한다. 가능하면 철도 늦게 들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가는 게 무섭다. 요즘 매체들에 '불륜'이니 '강간', '성폭행'이라는 말들이 많이 등장해서 그런지, 아이들도 그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린다. 난 우리 아이들이 유년기의 정서를 더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울퉁불퉁한 길을 저 혼자 걸어가겠다고 고집부리거나, 컵을 제대로 들지 못해 바닥에 물을 다 쏟거나, 밤늦게까지 칭얼거리며 엎어달라고 할 때는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 반대가 되버린 것이다.

아이의 사춘기를 실감하는 순간은...

 딸 아이가 그린 만화스케치. 요즘 딸아이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푹 빠져있다.
딸 아이가 그린 만화스케치. 요즘 딸아이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푹 빠져있다. ⓒ 신의진

정작 아이의 사춘기를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아이가 만화그리는 걸 볼 때다. 혼자 숫자를 쓰겠다고 고집부리던 5살 딸아이는 이제 만화가가 되겠다고 한다. 지금껏 아이의 장래희망은 '피겨스케이터'였다. 부동의 1위를 지키던 피겨스케이터는 어느 순간 '만화가'로 바뀌었다. 2인자였던 '만화가'가 장래희망 1위로 올라선 것도 아이가 4학년이 되고 난 후의 일이다.

딸아이는 만화를 그리면서 웃기도 하고,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가끔 콧노래도 부른다.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곁에서 말을 걸어도 모른다. 밤 늦도록 만화를 그리고, 만화를 그리다 잠이 든다. 딸 아이는 만화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아이는 틈만 나면 만화를 그린다. 뭐든지 만화로 표현한다. 주로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것은 내게 자랑삼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 어느 것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가 보여주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른 체 한다. 내심 궁금하다. 그 안에 진짜 '이야기'가 들어있을 것 같다. 내가 몰래 보면 아이는 '프라이버시'를 침범당했다고 또 화를 낼 것이다. 그리고 또 울먹이겠지. 사춘기니까 제발 이해해달라고.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그림을 그리면서 티비도 보고, 간식도 먹고, 가족들과 얘기도 나눴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만화를 그릴 때는 오직 만화라는 '방'에 들어가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방은 내가 함께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갈 필요도 없는 자신만의 방일 것이다.

아이의 만화스케치를 버리지 않고 모두 모으고 있다. 나중에 하나로 엮어줄 예정이다. 스케치북은 아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어설픈 사춘기 시절'을 대신 기억해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벌써부터 아쉽다. 그때가 온다는 것, 생각만해도 왠지 쓸쓸하다.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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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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