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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에 김재연 당선자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에 김재연 당선자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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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재연 누나. 저는 누나의 학교 후배이자 통합진보당 당원이기도 한 추성호라고 합니다. 저는 최근 진보정치에 관심과 지지를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언론과 지인들을 통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쉽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상황인데, 하물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당선자인 누나는 얼마나 큰 아픔을 이겨내고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네요. 어쩌면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통합진보당이 작금의 위기를 하루 빨리 극복하고 다시 진보정치의 대표주자로 나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올립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유려한 언변,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미녀 총학생회장. 2002년, 제가 새내기 대학생 시절 처음 만난 우리학교 대학생들의 대표자, 바로 김재연 선배였습니다.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20대 초반에 대학생들의 권익과 국민들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디에서나 앞장서 헌신하는 누나의 모습은 대단해 보였습니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을 대학생들과 국민들에게 알려내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도, 2003년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와 수배해제를 외치며 대학생들의 대표조직을 탄압하는 정권과 싸울 때도, 시간이 흘러 제가 사범대 학생회장에 당선돼 학교 운동에 고심할 때에도 누나는 3년간의 수배 생활까지 이겨가며 앞장서 헌신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외대 운동과 선배들은 제게 자랑이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어떤 대학생활을 할지 고민하던 어린 시절의 저에게, 언제나 당당했던 누나는 실천을 통해 '외대운동이란 이런 것'이라는 듯 몸소 보여준 선배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다고나 할까요. '다른 미래를 바라는 자, 다른 미래를 준비하라'던 2002년 총학생회의 슬로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놀기 좋아했던 제가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따라 배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거창하거나 복잡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현하고자 실천으로 청춘을 채우는, 분명한 신념을 보여준 선배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언제나 대다수 대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하고자 애쓰며, 힘들고 더디지만 대학생들의 곁에서 마음을 주고 받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억울하게 비난받고 외대생들이 마음을 알아주지도 않을 때에도 대중을 탓하기보다 자신들의 부족함을 찾아가던 모습. 우리가 진심을 가지면 언젠가는 꼭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할 것이라며 다시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가자고 후배들을 다독이던 모습. 그래서 더욱 수많은 이들을 만나며 의견을 귀담아 들었던 모습들은 제가 보고 배운 외대 운동의 자랑이자 전통이었습니다.

그런 외대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저 역시 2009년,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후배들과 함께 총학생회를 건설하고 더 많은 외대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외대 운동과 선배들은 언제나 저의 자랑이었습니다.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없는 통합진보당의 현재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 방청하러 온 당원들이 회의 진행을 방해하자, 이정희 공동대표가 잠시 정회를 선언한 뒤 심상정 공동대표와 회의 진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 방청하러 온 당원들이 회의 진행을 방해하자, 이정희 공동대표가 잠시 정회를 선언한 뒤 심상정 공동대표와 회의 진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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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끄럽지만 지금의 저는 더 이상 활동가도 아니고, 어떤 운동 조직과 함께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진보정치가 더 많은 지지를 받아야 실현이 빨라진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기에 여전히 통합진보당의 당원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번 총선에서도 많은 당원들이 그랬듯 지인들에게 통합진보당 지지를 역설했고요. 그래서 더욱 지금의 상황이 마음 아프고 힘이 듭니다.

작은 회사 월급쟁이가 된 저에게 동료들은 요즘 "통합진보당 요새 왜 그러는 거냐", "당권파, 비당권파는 뭐고 대체 뭐하는 사람들인데 지금 이 난리냐",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지금이 그 때냐", "역시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구나. 새누리당이나 통합진보당이나 뭐가 다르냐"고 묻습니다.

어느 정당의 당원도 아니고, 단지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제 주변의 평범한 이들이 묻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들이 바라는 것은 누가, 어떤 세력이 부정선거를 했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이 아닙니다. 진보정당이기에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양심적이고 헌신적인 주장과 실천에 서서히 마음을 주었는데, 작금의 사태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실망스럽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통합진보당이 말하는 미래, 누나도 예전에 말했던 '다른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에서 어떤 식으로든 부실·부정 선거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을 받았으며 이제는 냉소와 불신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던 진보가 세상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도 자기들끼리 고성과 폭언을 주고 받는 지극히 새누리당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정치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희망마저 접으려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의원 선거에 민주노동당의 20대 비례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했었습니다. 20, 3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신촌과 노량진, 신림동과 각 대학가를 중심으로 서울을 누비며 서울시민들을 밤낮 없이 만났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며 만난 많은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무리 젊고 진보적이라 해도, 정치에 들어서는 순간 똑같다. 당신이 변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느냐?"

누나도 2008년 총선에서 서울 강남에 출마하셨을 때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나는 어떻게 대답하셨나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이기에, 언제나 국민을 가장 두려워하고 섬기며 당원들의 힘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진보정당이기에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한 개인의 다짐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당원과 대중의 힘을 믿어달라."

지금의 이 상황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요?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나는 당당하다, 결백하다"가 아니라 진보정당이 국민에게 끼친 심려에 대해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모습, 뼈를 깎는 고통일지라도 혁신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지난 3월에는 저도 통합진보당 청년비례후보 선출을 위한 <위대한 진출>에 선거인단으로 참여했습니다. 당시 경쟁자들과 함께 프리젠테이션에 나선 누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감탄했습니다. 10여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미 누나는 당당하게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하는 젊은 정치인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선배를 더 이상 촉망받는 젊은 진보 정치인으로 볼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당권파든 비당권파든, 지금 이 사태의 본질이 무엇이든 대중들은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진보정당을 평가할 것입니다. 그 대중들에게 지금 통합진보당이 보여 준 모습은 어떻습니까?

파벌이 갈라져 싸우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누가,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례대표 선출과정이 떳떳하고 공정하지 않았음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있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당 대표단끼리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당원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당원들이 고성과 폭언과 비아냥과 힘으로 회의를 방해합니다. 당원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기본 절차를 무시합니다. 물리력으로 의사진행을 막았습니다.

모든 상황이 생중계되고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당원들끼리 결정하자 합니다. 진보정당의 도덕성과 미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는데도, "나는 결백하다"고만 강변합니다. 저는 너무나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에게, 앞으로 다시 진보정당을 지지해 달라 말을 할 수 있을지, 새누리당의 부정과 부패를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을지, 눈 앞이 캄캄합니다.

진보정당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퇴의 변 전하십시오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를 대신 의장직을 맡은 유시민 공동대표가 전국운영위원들과 함께 후속 조치안건을 처리하려하자, 참관하러 온 당원들이 운영위 해산을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를 대신 의장직을 맡은 유시민 공동대표가 전국운영위원들과 함께 후속 조치안건을 처리하려하자, 참관하러 온 당원들이 운영위 해산을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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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가 벌어졌을 때, 많은 평당원들은 당의 문제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겼습니다. 그게 우리 당원들입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나서서 연신 일이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며, 잘 반성하고 고치겠지하며 주변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끼기엔 정작 지도부와 당선자들은 침묵하고 당원들과 같은 마음으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외대의 후배로서, 누나가 민주노동당 시절 열성적으로 벌였던 당원 배가 사업으로 처음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었던 사람으로서, 통합진보당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한 명의 국민으로서, 간절히 호소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국민들과 함께 하는 진보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집권에 대한 통 큰 포부보다 더 큰 책임감을 보여주십시오.

지금 누나가 국민들과 후배들에게 보여 주실 선택은 단 하나뿐입니다. 진보정당을 대표하는 당선자 신분으로 진보정당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억울할 수도 있고, 힘겨운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때마다 학우들을 믿고 학우들을 탓하지 않고 당당하게 책임지고 새롭게 거듭났던 자랑스러운 외대의 운동역사를 돌이켜 봐주세요. 가진 것 하나 없이 정의감과 대중에 대한 진심, 단결력만이 우리의 무기라며 몸뚱이 하나로 세상을 바꾸자고 달려들었던 학생운동, 외대운동의 선배다운 마음으로 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진보정당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사퇴의 변을 전하십시오. 진정한 진보는 국민들 앞에 무릎 꿇는 일을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비워야 더 큰 미래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진보정치란 걸 1, 2년 하다가 끝날 게 아니라면 바로 지금이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에 진보정당에 대한 믿음을 심어야 순간 아닐까 싶습니다.

간곡한 후배의 청으로 다시 한 번 통합진보당의 당선자이신 선배님께 말씀드립니다.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러나십시오. 내려놓음으로써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정치인 김재연이 돼야 합니다. 이제는 외대 학생들이 아닌 전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결단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떳떳하게 다시 국민들 앞에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태그:#통합진보당, #김재연, #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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