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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고사리를 소개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알고 보면 꽤 많은 종류의 고사리가 서식하고 있다지만, 여태껏 내가 알던 고사리의 정보는 딱 두 가지였다.

먼저, 취미로 플로리스트의 세계에 입문했던 때에 알았던 꽃꽂이계의 페이스메이커 보스턴고사리. 장미나, 수국, 거베라, 카라, 백합, 카네이션과 같은 앙증맞고 화려한 꽃들을 상요하는 꽃꽂이계에서 보스턴고사리는 1등 재료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꽃꽂이의 질감과 색감의 수위조절을 적정수준으로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몇 가지 재료 중 하나가 보스턴고사리이기에 페이스메이커라 칭해 봤다. 공기정화용 식물이며, 잘 자란 잎들은 잘라서 꽃꽂이의 재료로 쓰이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 고사리가 식용이 아니라는 점.

내가 알고 있는 또 하나의 고사리는, 명절이나 제사가 있을 때면 빼놓지 않고 상에 올라오는 엄마가 무친 고사리나물. 고동색의 나름 통통한 몸매를 지닌 고사리나물은 반찬으로도 좋지만, 비빔밥 재료로도 손색이 없다.

특별한 비법 없이 아무렇게나 밥을 비벼먹는 것을 때때로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사리나물이 간간히 밥상에 올라올 때가 참 좋았다. 어릴 때는 '고사리' 따러 간다고 할머니나 엄마, 다른 친척어른들이 말씀하시면, 내가 먹을 수 있었던 고동색의 통통한 고사리를 따러 가시는 줄로만 알았었다. 따온 고동색의 통통한 고사리에다 양념만 하면 고사리가 되는 줄 알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고사리는 원래, 진한 고동색의 몸을 지니고 태어난 식물인 줄 알았던 것이다.

어머님께서 고사리를 참 좋아하시나 봐요

가랑비에 말갛게 씻겨진 작은 고사리
 가랑비에 말갛게 씻겨진 작은 고사리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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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가 원래부터 진한 고동색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은 시어머니와의 아침 외출에서 알 수 있었다.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을 찾아뵈었던 지난 4월 29일.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날부터 "내일은 고사리 따러 가자"고 주문하듯이 거듭 반복하셨던 어머님의 결연한 의지가 아침 빗소리에 잠시동안 까무룩해지셨다.

그럼에도 전날부터 내비치셨던 그 간절한 바람을 이뤄드리고자, 남편과 내가 나서서 어머님을 함께 모시고 집 근처 산으로 출동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진짜로 가랑비는 옷이 젖는 줄도 모르게 내려앉았다.

고사리에 대한 염원이 가득하셨던 어머니의 걱정스런 말씀.

"그 할배가 엊그제 한번 싸악 훑어서 별로 없을겨."

뒤이어 어머님은 걱정스레 날 쳐다보며 선언하셨다.

"넌 잘 못 찾을텡게, 오늘은 그냥 구경 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어머님이 전날부터 말씀하셨던 "그 할배가 엊그제 다 훑더라"라는 문장에서 시작된, 고사리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성의껏 이뤄드리고 싶은 며느리는 가랑비에 젖은 산 속을 모두 뒤집어서라도 고사리를 찾을 기세였다. 많이 해본 솜씨였던 남편이 많이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여린 잎들을 똑똑 따주면 돼."
"이렇게 생긴 거야."
"헉, 고사리가 원래는 이렇게 초록색이었어? 고사리가 완전 쌩얼이네!"

어이없는 나의 외침에 어머님도 남편도 되레 나를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신기함도 잠시였고 그 때부터 열심히 재미나게 고사리를 따서 결국 한 봉지 가득 채워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시아버지께 달려갔다.

"아버님, 저 고사리 이렇게 한 봉지 꽉 채워 따왔어요!"
"어이구, 많이도 땄네. 잘했네. 우리 막내 며느리."
"근데 아버님, 어머님이 고사리를 참 좋아하시나 봐요. 어제부터 고사리 말씀하셨던 거 생각해보니까 말이에요."
"(웃음) 이제 곧 제사도 많고, 명절도 이어지고 하니까 이맘때 고사리 잔뜩 따다가 말려 놓으려고 하는 거지. 좋아하기는 뭐..."
"네? 아, 그래서 그러셨던 거구나..."

속 모르는 며느리의 엉뚱하고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고사리의 기억은 제사, 그리고 명절

수확한 고사리를 삶아 광주리에 닮다
 수확한 고사리를 삶아 광주리에 닮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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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말씀대로, 어머님이 고사리를 염원했던 이유만큼 제사나 명절 때 고사리는 빠질 수 없는 나물 재료다. 속 모르는 엉뚱한 며느리는, 사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명절 때나 제사 때에 고사리로 지지고 볶아 만드는 고사리나물의 실체를, 맛볼 때 외에는 볼 기회가 없었다. 엄마 말고도 작은 어머니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난도 요리 기술을 요하는 위치에는 내가 어울릴 수 없었고, 내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방청소나 재밌는 송편 빚기, 다 부친 전 맛보기 정도였다.

집안의 대장이셨던 할머니께서는, 어린 손녀들보다 어른 며느리들이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셨고, 그건 내가 대학생이 되어도 변할 수 없는 우리 집안의 문화 같은 것이었다. 철들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죄송하기만 한 과거다. 할머니의 지침도 있었지만, 손녀들은 분명 자의도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든다. 손녀들도 못하게 하는 일은 당연히 손자들이나 아들들에게도 시키지 않았다. 남자들은 어린 남자, 어른 남자 할 것 없이 밤 깎는 것 이외에, 제사 지내기 위한 큰 상을 나르는 힘쓰는 일, 한두 번 정도였다.

이렇듯 명절과 제사는 여자들, 특히 며느리들에게는 힘들지만 해내야 하는 절차였던 것이다. 시아버지 말씀대로, 시어머니의 고사리에 대한 의식 속에서 바탕이 됐을 명절과 제사는 이제 내게도 나눠질 통과의례다. 광주리 한 가득 담겨진 고사리를 보며 엄마가 떠올랐고, 할머니가 떠올랐고, 작은 엄마들이 떠올랐다. 시집간 사촌 언니들도 갑작스레 떠올랐다. 아직도 명절과 제사는 여자들만의 분주함인가 싶어 아무도 몰래 고사리를 슬쩍 째려보았지만 곧 거뒀다.

'일단, 명절이건 제사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맛있는 고사리나물만 생각하자'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시어머니께서 정성껏 삶아주신 고사리를 비닐 팩에 한 움큼 담아 주시며 "꼭 빠른 시일안에 된장에 끓여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아, 나는 나물 무쳐 먹는 게 더 좋은데...


태그:#고사리, #고사리나물, #명절,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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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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