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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가 올라온 모습. 가장 연약하지만 가장 강합니다
 볍씨가 올라온 모습. 가장 연약하지만 가장 강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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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가을걷이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볍씨를 담그고, 나락(벼) 싹이 나 모판에 옮겨야 했습니다. 쌀미(米)를 풀면 '팔(八)+팔(八)'입니다. 쌀 한 톨이 사람 입에 들어 올 때까지 88번 농부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옛날과 달리 모내기는 이양기, 벼 베기는 콤바인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 손품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손품이 들어가야할 때가 많습니다.

부드러움과 연약함이 강함을 이겨

지난 월요일(23일) 볍씨를 모상자에 뿌린 후 닷새가 지나자 싹이 났습니다. 모가 더 자라면 안 되기 때문에 모판에 빨리 옮겨야 합니다. 모는 파릇파릇한데 첫 순은 흰 빛깔을 띕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모상자를 15단~20단까지 쌓는데도 모는 부러지지 않습니다. 가장 연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이고,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걸 모가 증명합니다. 싹난 모를 보면서 강함이 이긴다는 논리가 얼마나 헛점이 많은지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볍씨가 나지 않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파릇파릇한 모가 올라옵니다
 볍씨가 나지 않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파릇파릇한 모가 올라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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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동생 혼자 모상자를 2000개도 만들었는데 요즘은 동생과 큰 형님 그리고 동생처가까지 합해도 800여개입니다. 우리 집만 봐도 벼농사가 얼마나 줄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상자가 2000개든, 800개든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내려가니 벌써 손길이 바쁩니다. 옛날에는 부지깽이도 농삿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는 품앗이

동생 처가 모상자부터 옮겼습니다. 큰 형님과 사돈이 정답게 모상자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품앗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도우는 사돈, 정말 아름답고, 멋진 광경입니다. 두 분이 하는 일에 함께 하려고 했는데 벌써 손이 아프고, 모상자 4개밖에 들지 않았는데 다리가 휘청휘청합니다.

큰 형님과 동생 장모님이 정답게 모판을 옮기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못합니다
 큰 형님과 동생 장모님이 정답게 모판을 옮기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못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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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47살인 제가 일흔이 넘은 농부보다 힘 모자랍니다. 모상자를 4개 들고 휘청거리지만 어른들은 무른 논을 잘도 다닙니다. 농사를 전혀 지어보지 못한 분들은 논에서 발을 옮기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저는 해마다 2~3번은 무른 논을 다니기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볍씨를 담그고, 모상자를 옮겨보면 혼자 할 수 있는 아니란 걸 압게 됩니다. 아무리 힘이 장사라 해도 혼자는 할 수 없습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흙이 생명이듯이 농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임을 증명합니다. 동생 처가 모상자를 다 옮기고 우리집 모상자를 옮겼습니다.

흙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명

우리 한해 먹을거리가 모판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하면 굉장히 고맙습니다. 저 무른 논에서 모가 자라고, 가을에는 풍성한 결실을 선물할 것입니다. 무른 흙을 만지면 정말 부드럽습니다.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생명 자체입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흙은 생명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줍니다.

모판입니다. 우리 가족 한 해 먹을거리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모판입니다. 우리 가족 한 해 먹을거리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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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이 많습니다. 부지깽이도 함께 하면 품이 한결 가벼운데, 사람 손길이 하나 더 있으니 가볍고 가볍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나도 들고, 너도 들면 450개였던 모상자가 금방 모판 위에 살포시 앉습니다. 욕심부리다가는 무른 논에 엎어지고, 넘어지고, 모상자도 못쓰게 됩니다. 욕심을 부릴래야 부릴 수가 없습니다. 발목까지 빠지고 모상자 무게가 10kg이나 나가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자연은 이렇게 사람의 욕심을 절제시킵니다. 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카'는 그만 흙을 콘크리트로 파묻어버렸습니다. 반드시 그 삽질은 반격을 받을 것입니다.

큰 형님과 동생 그리고 장인이 정답게 모판을 옮기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못합니다
 큰 형님과 동생 그리고 장인이 정답게 모판을 옮기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못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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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상자 옮기기 마지막 작업은 부직포로 덮는 일입니다. 부직포 아래 숨은 모는 약 40일 동안 자란 후 논으로 옮겨집니다. 사람들을 이를 모내기라고 하지요. 날씨가 덥고 볕이 좋을 때는 모가 자라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잘 자랍니다. 해님이 떠오르면 부직포를 걷어주고, 해님이 들어가면 부직포를 덮어줍니다. 농부는 단 하루도 모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쌀 한 톨은 이렇게 사람 손길 여든 여덟 번이 가야 사람 입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농부의 땀 한방울이 피같은 존재인 이유입니다. 농부의 땀 한방울이 피같은 것임을 안 다면 남은 밥을 함부로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모판 위에 부직포로 덮습니다. 쌀미가 왜 8(八)+8(八)를 뜻하는 알 수 있습니다.
 모판 위에 부직포로 덮습니다. 쌀미가 왜 8(八)+8(八)를 뜻하는 알 수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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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볍씨, #쌀, #모판, #부직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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