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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광화문광장에서 이수호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24일 광화문광장에서 이수호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엄지뉴스 #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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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여름의 열기까지 머금은 따가운 햇볕이 내리꽂는 지난 24일 한낮, 서울 광화문광장에 초로의 한 신사가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이수호(63)씨.

가장 최근 직함으로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그 직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혁신 재창당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지만 삶의 뿌리는 정치나 노동조합을 지나 교육계에 깊이 닿아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는 교육개혁운동가의 일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이날 들고 있었던 팻말은 교육이 아니라 언론에 관한 것이었다.

"방송·전파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김인규 KBS 사장·김재철 MBC 사장, 즉각 물러나야 합니다."

언론독립투쟁에 동참한 교육계 인사

이번 1인 시위는 '새 언론포럼'이란 단체에서 기획한 것이다. '새 언론포럼'은 1980년대 후반 언론사 노조운동을 주도했던 원로 언론인이 그때 품었던 '참언론'의 뜻을 현역 후배 언론인들과 나누기 위해 결성한 단체다. 회원은 누구나가 한 번 이상은 '언론독립'을 위한 파업투쟁을 벌인 경험이 있다. 누군가는 해고도 당했고, 누군가는 감옥에도 갔었다.

지금 방송 현장 또는 <연합뉴스>와 <국민일보>, <부산일보>에서 후배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은, 그동안 말끔히 치유된 줄 알았던 선배의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내는 끔찍한 고통이다. 그런 고통을 견디다 못해 "바람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절박한 호소에 공감하는 심정으로 광화문광장에 나선 것인데, 왜 교육계 인사가 이 대열에 동참한 것일까.

"독재자의 무기는 총·칼뿐이 아니지요. 사실은 언론과 교육을 장악하는 것이 독재의 핵심입니다.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는 민주체제일수록 그것은 더욱 진리이지요. 말하자면 군, 검·경찰 등 공권력은 저항의 가지치기를 하는데 유용한 것이지만, 교육과 언론을 장악한다는 것은 아예 저항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요."

나아가 저항의 싹이 자랄만한 토양 자체를 갈아엎는 것이라는 의미다. 목전에 대선을 앞둔 현재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은 언론이다. 공권력이 이미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교육은 비교적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총선 결과를 목도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총선에서 야당이 패한 이유 중 하나가 <조·중·동>과 방송들의 왜곡보도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언론인들이 벌이고 있는 언론독립투쟁이야말로 우리 민주세력이 대선 승리를 통해 2013년 체제로 갈 수 있느냐, 좌절하고 마느냐의 여부를 가를 결정적인 분수령 같아요. 물론 쉽지는 않겠죠. 이미 퇴로가 끊긴 이명박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총선에서 단맛을 톡톡히 본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그 맛을 쉽게 포기하겠습니까?"

그런 절박한 심정에 교육계 인사가 하루 짬을 내 언론계 투쟁에 동참한 것이지만, 사실 언론이 정상 상황이라면 지금은 오히려 언론이 교육현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정치 검찰을 앞세운 수구 기득권세력의 총공세 앞에 교육개혁 역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들의 수난과 제역할 못하는 언론

장만채(54) 전남도교육감이 결국 25일 구속됐다. 교육감 취임 직후부터 시작된 검찰의 내사가 드디어 개가를 올린 것이다. 뇌물수수, 업무상 횡령, 배임 등 대부분 혐의가 교육감이 되기 전 재직했던 순천대 총장 시절의 이야기다. 판사는 그의 범죄혐의가 소명됐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면서 영장을 발부했다. 도대체 그동안 검사가 샅샅이 뒤진 순천대 시절의 증거들을 어떻게 없앨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장 교육감은 취임하자마자 교육계 인사들이 자신에게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돈 봉투를 들고 찾아온 사실을 폭로했으며, 이후에도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전교조의 정책제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전남도 교육행정을 바꿔왔다. 그에 대한 표적수사와 구속에 이른 일련의 과정이 그의 이런 개혁적 행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진보교육감, 취임 뒤 교과부의 고발과 검찰기소로 쉴 새 없이 시달림을 당했던 김승환(58) 전북도교육감도 지난 3월 시국선언 주도 교사에 대한 징계를 대법원 판결 뒤로 미룬 것이 직무유기라는 교과부의 고발에 이어 검찰로부터 불구속기소를 당했다. 그는 "언론이 나를 편들어 주는 것은 고사하고 진실을 가려주기만 해도 고마울 텐데 오히려 나에 대한 공격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탄했다.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이들에 대한 탄압은 김상곤(62) 경기도교육감, 곽노현(58) 서울시 교육감의 경우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부패사학재단을 중심으로 한 교육자들이 "하늘을 함께 이고 있을 수 없다"고 할 정도의 적의를 보이며, 교육관료들과 정치검찰을 들쑤셔 교육개혁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구언론이 이들과 한패인 것은 분명하지만, 중립을 지키며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법원이라고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곽노현 교육감은 부패사학재단이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핵심과제라는 데에 동의하면서 이들의 비리를 척결하는 싸움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박근혜 법'이라고도 불리는 개정 사학법(2006년)이라고 단언했다. 참여정부 시절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촛불시위까지 벌여 가며 관철시킨 이 개정안 때문에 개방이사를 1/4(종전 1/3) 밖에 파견할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재단 이사장 등의 비리와 부패를 방조한 이사들에 대해 승인 취소가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모든 정치력을 동원해 개정을 관철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실제 영남대학 이사장을 지내다가 학내비리문제가 불거지는 바람에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으며, 지금도 정수장학재단에 대한 지배 형태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학재단 영남대학을 지배하고 있다.

비리사학재단 문제의 핵심 박근혜, 언론문제는?

결국, 진보교육감에 대한 정치탄압의 배후에는 이명박 정권을 넘어 박근혜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언론인의 저항을 부르고 있는 언론장악시도는 이명박 정권의 음모임이 민간인 사찰문건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지만, 박 위원장이 이를 쉽사리 정상으로 돌려놓을 리는 없다. 이명박 정권의 온갖 악행 중에서도 쓴 것은 뱉되 단 것만 골라 삼키겠다는 속셈이 이른바 '박근혜 차별화'의 본질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언론계든 교육계든 탄압세력은 새누리당-사학재단-관료-언론-검찰-법원까지 똘똘 뭉친 수구커넥션입니다.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그런데 이를 방어하고 극복해야 할 우리는 서로서로 남의 일 보듯 파편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저들이 그걸 노리는 측면도 있지요."

뙤약볕 밑에서 언론자유쟁취투쟁에의 짧은 동참을 끝낸 이수호 전 위원장이 작별인사를 하면서 힘주어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서로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합니다. 뭉칠 기회가 또 온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진실의 길> <프레스바이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1인시위, #이수호, #언론연대파업, #진보교육감,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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