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밭에서 일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합천 삼가 사시는 부산귀농학교 동문이다.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전화다. 기대를 가지고 받았다.

"재호씨, 이제 오면 되겠다. 암탉이 알을 품을 자세를 잡는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들뜬다. 이제 새 식구가 들어오게 된다. 빈 닭장을 채우게 될 녀석이다. 얼마 전에 닭장을 새로 수리했다. 장인어른이 오셨을 때 이틀 꼬박 걸려서 함께 만든 닭장이다. 이 닭장에 어떤 닭으로 채울지를 고민했다. 병아리를 입식시키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함안 오일장'에서 사오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이다. 한 마리에 2500원짜리 중병아리들이다. 아니면 동네마다 돌아다니는 '병아리 트럭'을 기다려도 된다. 역시 2500원부터 3500원 사이의 중병아리들이다.

요즘 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닭들을 키운다. 짙은 갈색의 재래닭들. 일명 '육계'라 부른다. 기계로 부화시킨 병아리들인데 6개월 정도 키우면 어른 닭이 된다. 다 크면 덩치가 상당히 크다. 그래서 삶으면 여러 명이 먹을 수 있어 많이들 키운다. 물론 다 자라면 알을 낳는다. 수탉과 함께 두면 유정난도 생산한다.

어떻게 보면 그냥 이런 '육계'를 키우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이다. 닭들은 음식물쓰레기도 처리해주고 싱싱한 유정난을 제공하는 보배 같은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육계와 토종닭의 차이

새로 지은 닭장 장인어른과 이틀 꼬박 걸려 새로 만들었다
▲ 새로 지은 닭장 장인어른과 이틀 꼬박 걸려 새로 만들었다
ⓒ 서재호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나는 더 욕심이 생긴다. 그 욕심은 '토종닭'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여러 날 전부터 합천 삼가에서 토종닭을 키우는 분께 각별히 부탁해 놓았던 터다. 부탁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조르고 또 졸랐다. 그렇게 조른 후에 기다렸는데 마침 기다리던 전화가 온 것이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토종닭에 대해서는 좀 집착을 하는 편이다. 몇 년 전부터 재래육계도 키워보고 토종닭도 키워봤다. 자연히 비교가 되었다. 덩치는 토종닭이 훨씬 작다. 손님이 와서 닭백숙이라도 할 경우에는 양이 적어 좀 아쉽긴 하다. 근데 아쉬운 건 딱 그것 하나, 덩치가 좀 작다는 것 말고는 육계와 토종닭은 비교가 안 된다.

뭐가 다르냐고? 캬~ 이거 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어떤 광고처럼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정도다. 그래도 좀 표현하자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모두 다 나열할 순 없으니 오늘은 딱 두 가지만 말해보자.

첫째로 토종닭은 영리하다. 내가 영리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반문할지 모르겠다.

"뭐. 영리하다고? 그래 봐야 '닭대가리' 아닌가?"

물론 닭대가리는 맞다. 그래도 수준은 좀 다르다. 그 수준을 예로 들면 이런 거다. 집에서 키우는 닭은 대체로 주인을 알아본다. 토종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똑같은 집주인이라도 사람 봐 가면서 대한다. 닭장 안으로 문을 열고 쓰~윽 들어갔다고 치자. 닭들은 여자 남자 구분할 줄 알고 어린이와 어른을 구분해서 대한다. 어떻게 해서 구분을 해내는지는 모른다. 그냥 구분한다.

애들이나 여자한테는 좀 만만하게 대한다. 어떨 때는 수탉이 은근히 엉겨 붙으려 할 때도 있다. 자기 '나와바리'라고 그런다. 그런 수탉도 남자 어른한테는 조심한다. 잘 까불지 않는다. 사실 토종닭, 수탉은 한 인물 하긴 한다. 크고 붉은 닭벼슬에 검고 긴 꼬리. 윤기나는 털. '화투장'에 나오는 그 캐릭터 그대로다. 목에 힘을 주고 "고, 고, 고" 소리를 내며 천천히 발을 내디딜 때는 제법 기품이 느껴진다. 목덜미에서 날갯쭉지를 지나 꼬리로 이어지는 라인이 살아있다. 폼 난다.

인물값 하는 이런 수탉은 보통 한 마리가 암탉 15마리 정도를 거느린다. 그게 닭들의 적당한 암수 비율이다. 만약 이 비율이 깨어지면 힘든 상황이 생긴다. 예를 들어 수탉 1마리에 암탉이 5마리뿐이면 난리가 난다. 수컷의 요구를 암컷 다섯 마리가 감당하기 위해 엄청나게 혹사당한다. 대단한 수탉의 정력이다. 좀 부럽다.

더 부러운 건 수탉의 영리함이다. 토종닭을 가만히 살펴보면(이건 내가 키웠던 토종닭들만이 아니라 토종닭은 키웠던 대개의 농가 공통의 평가임) 바로 알 수 있다. 이 한 마리의 수탉은 15마리 정도의 암탉을 기가 막히게 잘 관리(?)한다. 진짜 관리한다. 바람둥이 남자들 '어장' 관리하듯이 관리한다.

몇 년 전에 맛있는 김밥 찌꺼기 같은 걸 주고 살펴본 적이 있다. 수탉은 자기 앞에 먹이가 와 있어도 날름 바로 먹어치우지 않는다. 몇 번 먹이를 쪼아보고 '앗싸! 맛있는 거네' 하는 판단이 들면 독특한 행동을 한다.

주위를 살펴보고 소리를 내어 암탉들을 부른다. 그 소리를 듣고 암탉들이 모이면 자신은 암탉들에게 먹이를 양보하고 뒤로 물러난다. 이걸 본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보다 낫네."
"…. "

내가 직접 본 건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세상에 제일 심한 서열 싸움을 하는 놈들이 원숭이하고 닭들이라는 건 다들 알 것이다. 닭들은 서열 싸움에 더해서 약자에 대한 공격성까지 강한 놈들이다. 강자에게는 약하지만 약자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집요한 공격을 해댄다. 그런 공격 때문에 죽기까지도 한다.

원래 암탉들은 수탉을 사이에 두고 서열 싸움도 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왕따당하는 약한 암탉들이 반드시 생기게 된다. 이런 왕따 암탉들은 먹이경쟁에서도 밀려서 점점 야윈다. 수탉은 이런 왕따 암탉들도 따로 챙긴다. 맛있는 게 있으면 따로 불러 챙겨 먹게 한다.

이런 건 머리가 좋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다. 나 같으면 이런 건 가르쳐 줘도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사람으로 치면 애인이 열다섯 명이 있다는 얘기다. 근데 이 열다섯 명을 체계적으로 다 관리한단 말이다. 한 번씩 외식도 시켜주고 각자 다른 영화 보여주고 성격에 맞게 선물도 해주고. 거기다가 삐치지 않게 스케줄도 관리하고….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 짓을 왜 하나? 나 같으면 열다섯 명 애인 이름도 다 외우기 힘들 거다. 나는 역시 일부종사요 일편단심이나 해야겠다(이 글을 아내가 봐야 할 텐데).

병아리는 아무나 낳나?

갓 부화한 병아리들 이 사진은 2년전 토종닭으로 첫병아리 부화시킨 장면이다
▲ 갓 부화한 병아리들 이 사진은 2년전 토종닭으로 첫병아리 부화시킨 장면이다
ⓒ 서재호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 장점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버렸다. 토종닭의 두 번째 장점을 이야기를 해야겠다. 두 번째 장점은 병아리를 생산한다는 거다. 오잉~.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겠다. 닭이 병아리를 생산하지 그럼 뭘 생산한단 말인가? 하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알을 낳긴 하지만 알을 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그럼 세상의 그 많은 병아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공장에서 나온다. 공장식 농장에서 기계식 부화기로 부화시키는 거다.

그럼 이리 생각들 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그건, 치킨집에 가는 녀석들이고 촌에서는 다 닭들이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까지 않나요?"

거기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어디, 70~80년대 이야길 하시나요? 요즘 촌에서 병아리 태어나는 집이 있나요? 촌에서 애기 울음소리만 없어진 게 아니라 병아리 태어나는 소리도 없어진 지 오래랍니다. 촌에서도 모두들 (거의 대부분) 닭장 트럭에서 파는 중병아리를 사서 키운답니다."

좀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다. 기계식 부화기에서 깨어난 이런 병아리들은 커서도 알을 낳기만 할 뿐 품을 줄을 모른다. 촌에서 방사시킨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낳기만 할 뿐 그 뒤의 프로그램을 알지 못하는 거다. 자기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심지어 자기 알을 깨어 먹는 놈도 많다.

마을회관에 모이면 자기 알 깨어먹는 바보닭 이야기하는 할머니들 애기를 항상 듣게 된다. 물론 아주 아주 드물게 그런 닭들 중에서도 알을 품는 시늉을 하는 녀석들도 나온다. 다시 방사를 시키다 보면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자의 힘이 작동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런 애처로운 노력은 그냥 시늉으로 끝날 때가 잦다. 제대로 품지 못하니 달걀만 상하게 하고 병아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토종닭은 다르다. 알을 품고 병아리를 만들어낸다. 옛날 같으면 별것 아니었을 이 일이 요즘은 대단한 일이 되어버렸다.

알의 위치가 바꿨다? 놀라워라

유정난 세종류의 암탉이 낳은 다른 종의 알들
▲ 유정난 세종류의 암탉이 낳은 다른 종의 알들
ⓒ 서재호

관련사진보기


닭은 삼칠일(3 * 7 = 21일) 간 알을 품는다. 보통 열 개 정도의 알을 품는데 이 스무하루일 동안에는 꼼짝 않고 알만 품을 뿐 잘 먹지도 않는다. 며칠에 한 번씩 알통에서 나와 물을 먹거나 모이를 조금 먹고 다시 알통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다시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품는다.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나는 식탐이 많단다. 밥때가 지나서 배가 조금만 고파도 표정이 변한단다. 사람이 사나워지고 쪼잔해지고 괜히 짜증을 낸단다. 별거 아닌 일에도 신경질을 부린다 한다.

알을 품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삼 주일째쯤 되면 닭의 몸은 많이 축난다. 이런 과정을 겪고서야 병아리가 태어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빠뜨릴 뻔했다. 닭을 키워보기 전에는 몰랐다. 암탉이 알을 품는다는 건 그냥 21일간 알 위에 앉아만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근데 닭을 키워보고 공부를 해보니 그냥 앉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전문용어로 '알을 돌린다'라고 부르는 특이한 행동을 한다.

'알을 돌리'는 행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알을 뒤집는 거다. 알다시피 알을 품는다는 건 자신의 체온으로 알을 덥히는 거다. 생각해 보라. 알의 윗면은 자신의 몸에 직접 닿기 때문에 데워지지만 아래 쪽면은 땅에 닿아있어 잘 데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씩 뒤집어준다. 데워진 알의 윗면을 아래로, 아랫면을 위로 향하게 만드는 거다. 발로 돌리는지 배 근육으로 돌리는지 본적은 없다. 왜 못 봤나고? 암탉이 안 보여주니까!

또 하나의 알을 돌리는 기술은 알의 '위치'를 바꾸는 거다. 암탉의 배 밑에는 10개 정도의 알이 있다. 물론 사람이 알을 더 넣어주면 더 품으려 한다. 어미는 알 욕심이 있으니까. 여기서는 일단 열 개 정도의 알을 품는다고 하자.

알의 위치도 좋은 자리가 있고 나쁜 자리가 있다. 가운데쯤 있는 알은 항상 어미의 가슴 털 아래에서 잘 데워지지만 가장자리에 있는 알들은 아무래도 제대로 데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알의 위치를 한 번씩 바꾸는 거다.

가장자리에 있는 알은 가운데로 모으고 가운데 있던 녀석은 가장자리로 내몬다. 이 작업을 사람이 아닌 암탉 스스로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데 말이다. 

나는 궁금하면 좀 못 참는 성격이다. 알 돌리는 걸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실험해 본 적이 있다. 그때가 재작년이었던 것 같다. 알을 품는 기간 중에 잠시 모이를 먹으려고 암탉이 알통을 벗어날 때가 있다. 그때를 노렸다. 그 순간 달걀에 빨간 매직으로 위치 표시를 해놨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다시 암탉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알통 속을 들여다보고 놀랐다. 정말 신기하게도 알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아, 누가 이들을 닭대가리라 하리오(그때 나는 흥분해서 아내와 두 딸에게 이 실험 사실을 알렸었다. 그때 우리 집 세 여자가 나를 쳐다보는 반응은 왠지 참 한심하다는 눈빛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으로 시집온 토종닭

알품닭 몇시간 동안 경계하고 불안해 하더니 이제 알통에 들어가 알을 품는다
▲ 알품닭 몇시간 동안 경계하고 불안해 하더니 이제 알통에 들어가 알을 품는다
ⓒ 서재호

관련사진보기


어제 드디어 합천 삼가에서 토종닭 세트를 받아왔다. 토종닭 세트란 암탉 한 마리와 달걀을 묶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 집으로 묶음 세트로 시집온 셈이다. 암탉을 고를 때 보니 조그마한 덩치의 노란 토종닭이다. 검푸른 발을 보니 혈통도 괜찮아 보인다.

암탉을 구멍 뚫린 종이상자에 넣고 내 차 조수석에 실어왔다. 차로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신경 쓰였다. 합천에서 의령으로 넘어오는 고갯길에선 최대한 천천히 운전했다. 혹시 암탉이 멀미하지 않을까 싶어서.

암탉이 낯선 환경으로 스트레스받아서는 안 된다. 이러다 알을 품지 않을 수도 있다. 때때로 이상한 짓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알 품는 걸 거부하거나, 돌멩이 같은 엉뚱한 걸 품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운전대를 잡은 손이 조심스러워지는 거다.

품게 될 '알'들은 13개를 받아왔다. 이 13개의 알들은 한 종류가 아니다. 노란 닭 종류도 있고 흰 닭 종류도 있다. 거기다가 오골계 알도 몇 개 있다. 21일 후엔 세 종류의 색깔 다른 병아리들이 태어날 것이다. '다문화 닭장'이 되는 건가?

병아리 종류가 아무리 달라도 암탉은 자기가 품은 알에서 나온 병아리는 다 자기 새끼로 안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다. 어제 받아온 그 집에서는 오리가 귀해서 암탉 배 밑에 오리알과 닭 알을 섞어서 넣어줬던 모양이었다. 지금은 오리알도 잘 부화해서 오리 새끼가 암탉을 졸졸졸 따라다닌단다.

'임프린팅(imprinting)', 우리말로 '각인'(조류들이 알을 깨고 나올 때 처음 본 대상을 평생 기억하고 따르는 것)인 셈이다.

우리 집에 시집온 암탉은 다행히도 잘 자리 잡았다. 온종일 닭장을 서성이며 경계하더니 이제는 알통에 들어가 알을 품고 있다. 잘 적응해서 어서 21일을 견뎌내기를. 그래서 이 봄에 다시 우리 집에 병아리들 울음소리를 들려주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었습니다.



#토종닭#각인#병아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9,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