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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고혈압 약을 처방받았다. 그러나 뒤늦게 알고 보니 환자는 고혈압 아닌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자신의 병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약을 처방받았다고 오히려 환자를 탓한다.

 

환자 또한 스스로 병에 대한 자가 진단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이런 이유로 많은 환자들이 잘못된 약을 처방 받고도 병원에 따지지도 못한다. 오히려 스스로 바보가 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 밖에 안 된다는 생각으로 숨긴다.

 

이번에는 약의 부작용을 극복해 보려고 다른 약을 찾는다. 병원에서 처방을 내려주는 약이 아닌 은밀하게 판매되는 출처 분명의 약품이다. 그 약이 위험한 줄은 알지만 당장 고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용한다. 그렇게 위험한 약을 하루 하루 복용하다 결국 체내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독소가 쌓여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위험한 약을 복용함으로써 자신의 소중한 몸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까지 의식해야 한다. 더 이상 위험한 약은 먹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그제야 국가에서 마련한 초라한 의무실에 겨우 죽지 않을 만큼의 관리를 받는다.

 

물론 그 의무실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가족들의 병력까지 전부 조사하고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것인지를 철저히 따져 심사한 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야 가능하다. 국가의 의무실에 입소하지 못한 환자들이 길거리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거나 병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소비자 상태에 따른 금융상품 처방이 필요하다

 

가상의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미래 사회시스템을 구성해 만든 SF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느껴진다. 물론 이 이야기는 말 그대로 가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일반 대중이 의료 진단과 같은 전문적인 영역에서 스스로 자가 진단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전문의와의 상담과 정확한 진단을 반드시 거쳐 약품 구입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약사를 통한 약품 구입조차 제한하는 등 엄격하게 의약품 오남용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제한과 통제는 의료 분야가 공급자와 수요자간 정보 차이, 즉 정보 비대칭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 만큼 전문성을 전제로한 정보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금융분야는 어떠한가?

 

전국적으로 부자열풍이 불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금융교육 강화를 강조해 왔다. 즉 일반 환자들이 의학을 공부해 적절한 진료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금융상품의 복잡성과 난해함이 불러일으키는 문제를 극복하도록 소비자가 금융공부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교육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자.

 

"전제각종 금융상품이 혁명적으로 개발되면서 보다 구조화 되고 융·복합화 되는 현실에서 개인 금융소비자들의 금융지식이 금융상품의 선택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부정확한 정보나 위험요소를 선별해내지 못하고 있다." -  <조선일보> 2011년 3월 7일자 '금융이해력의 부족과 금융교육의 방향성'

 

혁명적으로 융·복합화되는 금융상품을 치열하게 공부해서 위험요소를 선별하고 적절한 상품을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발상이 합리적인 것일까?

 

펀드를 비롯한 각종 투자 상품은 상품 구조에 대한 이해를 뛰어 넘어 투자 대상의 국가 혹은 기업의 장래 수익 및 위험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중국펀드를 가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중국경제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펀드의 구조만 교육받고 설명들었다고 자신이 가입한 중국펀드의 수익과 위험을 예측할 수 있을까. 이미 금융상품 선택은 의료분야에서 처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의사가 적절한 처방을 내려주듯 소비자의 재정 상태에 따른 금융상품 처방이 필요하다.

 

또한 처방의 결과가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의사를 고소할 수 있듯이 금융 또한 소비자가 아닌 전문가에게 금융상품 추천 후 결과에 대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의사가 당뇨병 환자에게 고혈압 약을 처방하지 않기 위해 진료에 심혈을 기울이듯 금융권에서도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상품 권유를 하도록 강제할 수 있게 된다.

 

돈 갚지 못할 때, 부채상환보단 상황 판단이 먼저

 

대출 또한 마찬가지다. 돈을 빌려 쓰려는 사람의 동기는 급전일 경우 다급한 나머지 이성적이기 어려울 것이고 급전이 아님에도 우선 빌려 쓰고 보자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비합리적인 사람일 것이다. 대출 심사과정에서 무조건 돈부터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재정 상태와 신용상태, 대출 신청에 대한 동기 및 상환 능력과 정서적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 전문가의 냉철한 진단을 전제로 신용을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체 수단 즉 복지 및 여러 나눔 단체의 도움을 받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물론 모든 대출 심사과정이 이렇게 복잡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대출과정을 잘 상기해 보자. 신청 후 해당 기업의 실사를 필수로 하지 않는가. 그만큼 상환 가능성에 대해 꼼꼼히 살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개인 대출에 있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너무 쉽게 신용에 접근이 허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고 소득과 과거 금융거래 기록 즉 신용평가에 따라 신용공급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서 불가피하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할 상황에 내몰렸을 때 우선 부채 상환부터 강조하기보다 재정 상태를 다시 재점검하고 불가피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 미국의 신용회복 시스템은 150여 개의 지역 회원 단체로 구성된 비영리 기구인 NFCC에서 부채 유예까지 포함한 신용회복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재무 상담뿐 아니라 금융교육까지 더불어 제공함으로써 재정적 곤란에 직면해 정신적으로 힘든 채무자에게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용회복 기구가 존재하긴 하지만 채권단 즉 전국은행연합회, 한국여신전문금융업협회, 대한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의회 같은 채권 금융기관(또는 대표)들이 '신용회복 지원 협약'을 만들고 이에 동의하는 금융기관의 채무에 대해 신청을 받아 채무 조정을 해주고 있다. 공적인 기구가 아닌 사적 채무 조정기관이다. 비영리 사단법인이기는 하나 소비자들의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정부기구가 아닌 금융기관들의 자체 조직이라고 봐야 한다. 한 마디로 채권자들이 만들어낸 조직이라는 이야기다.

 

가혹한 채무상환시스템만 없었어도...

 

당연히 신용회복위원회의 주된 목적은 신용회복보다는 채권 회수, 즉 가능한 많이 빚을 회수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채무 조정을 해주기는 하나 최소한의 생계비만 겨우 남겨 두고 장기간에 걸쳐 빚을 상환해야 한다. 게다가 이 제도를 이용하기 전에 신용불량 등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당 수준의 채권 추심 고통을 인내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

 

SF 미스터리 스토리와 흡사하다. 의약품 오용에 대한 책임을 의료진에 먼저 물었다면 환자는 은밀하게 판매되는 불법 약품에 의존하지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정상적인 치유 과정을 통해 약물 후유증을 극복시키고 차후 정상적인 과정으로의 치유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를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로 옮겨 보자. 채권자의 과도한 신용공급에 먼저 책임을 물었다면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무 상환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을 제안했어야 했다. 즉 대출이 승인될 때 채무 불이행 상황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 채권자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채무 상환 일시적 유예 및 기간 조정, 이자율 조정 등의 방식으로 정상적인 채무 상환과정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그러나 채무자에게 과혹한 채무 상환 시스템을 방치함으로써 채무자들은 당장 불법 사채까지 끌어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가상의 스토리지만 환자가 최소한 불법 의약품에 노출되어 상태가 심각해졌을 경우라도 정부가 나서 우선 환자를 살리는 것부터 하겠다는 식으로 의무실을 운영했다면 죽음에 내몰리는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채무독촉,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은 파괴하나

 

다시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개인 회생과 파산 등의 정부 채무 조정 과정에서도 채무자들의 인간적인 삶을 살피는 것이 우선됐다면 수많은 채무자들이 빚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MB정부 들어서 파산과 회생에 있어 3000만 원 소액 파산은 관행적으로 거절되어 왔다. 회생제도 또한 갚을 수 있는 만큼만 갚고 나머지를 원금 감면해주는 제도이지만 소득이 일정 이상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취약계층의 빚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 밖에 버려져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도 수많은 과다 채무자들이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뛰고 집 근처 골목길에서 양복 입은 젊은 사람만 봐도(추심원으로 오인되어) 걸음을 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 이런 하소연 조차 빚 떼먹은 사람의 뻔뻔한 과장이라는 사회적 질타까지 의식해 어디에 털어놓지도 못하는 실정이 아닌가.

 

통합진보당의 민생 상담소에는 빚 독촉이 두려워 카드 돌려막기에서 순식간에 사채 빚까지 끌어쓴 사례들이 넘쳐난다. 이 정도면 현실에 있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만으로 SF호러영화 몇 편은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최근 개봉했던 영화 <화차>는 사채 빚의 채무 독촉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가에 대해 다뤘다. 영화의 내용 전개나 극적 장치는 이전의 호러영화에 비해 치밀하지 못하다는 평이 적지 않다. 다만 빚에 대한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상황이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영화 흥행에도 영향을 줬다.

 

더 많은 사회적 비용 유발하는 채권 회수 시스템

 

인간적인 삶의 품위를 먼저 챙기는 풍토라면 부실 채권 중 적지 않은 양이 오히려 정상적으로 상환됐을 것이다. 집에 묶인 대출을 무조건 회수하려고 차압부터 했기 때문에 임대가 어려워 더 빠른 속도로 빚이 악성화되고 채권 추심을 피하려 고리의 빚으로 옮겨 붙는다.혹은 집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려는 채무자들을 기다려 주기만 했어도 채무자는 은행 빚을 갚고 전세나 월세집을 구해 재기를 계획했을 것이다.

 

대부업을 인정하는 대신 복지 사업을 확충하고 서민들의 금융수요를 최대한 줄이거나 혹은 대부업과 카드대출 상환에 쓰지 않겠다는 전제하에 서민금융 제도를 운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사채 한 번 잘못 썼다가 아이를 낙태하고 노래방 도우미가 되었다는 잔인한 사건 소식을 듣고 경악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혹은 카드 값을 결제해야 하는데 갑작스런 어려움이 생겨 연체가 불가피한 경우, 채무 상환 유예조치가 가능했다면 사채시장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가혹한 채권 회수 시스템 자체가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채무자들을 고통으로 내모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기해 어떻게든 정상적인 경제 생활을 해보겠다는 동기마저 빼앗고 있는 것이다.

 

채무 상환에 앞서 인간적 삶의 품위부터 지켜줘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빚을 갚지 않고 당연하게 떼먹고자 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떼먹겠다고 작정한 말 그대로의 도덕적 해이가 분명한 사람이라면 이미 그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다. 오히려 지독한 채권회수 시스템 하에서 도덕적 해이를 작정한 사람들이 더 치밀하게 빚을 일으키고 잘 떼먹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 www.edu-money.co.kr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태그:#사채, #채권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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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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