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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척 좋은 4월의 어느 날, 신규영업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처음 방문하는 거래처의 위치는 양재 시민의 숲 근처. 출발 전 인터넷을 찾아보니 왕십리에서 2호선을 갈아탄 뒤 강남역에서 신분당선 환승을 권유하고 있었다. 사무실로부터 도합 57분의 거리라나. 그래도 첫 만남인데 어찌 약속시간에 맞춰 딱 나타날 수 있겠는가. 넉넉히 1시간 30분 정도 일찍 나와 길을 걸었다.

왕십리역에서 2호선을 갈아탄 뒤 강남가는 지하철 안. 역시나 머릿속이 분주했다. 오늘 처음 만나는 거래처 담당에게 우리 회사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그리고 그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어야 할지 등등.

응봉산의 개나리
▲ 무심코 마주친 도심의 봄 응봉산의 개나리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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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일순간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는가 싶더니 전철은 어느새 강변역을 지나 잠실나루역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개나리와 같은 봄의 전령들. 그나마 도시에서 봄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래서 학생 때는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애용했었건만, 이제는 샐러리맨으로서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정액권을 사용하려다 보니 지하철을 이용할 수밖에.

이윽고 2호선 강남역. 전철에서 내려 신분당선을 갈아타기 위해 환승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새로 지어진 노선답게 환승통로가 번쩍번쩍거렸다. 역시 새것은 다 좋은 것인가.

뭐야? 환승을 못한다고?

그러나 새 건축물에서 느끼는 깔끔함은 딱 거기까지, 곧이어 난 폭풍 같은 짜증에 휩싸여야만 했다. 신분당선 입구에는 추가 700원을 걷기 위한 환승용 게이트가 있었는데, 나는 그곳을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옆에 적혀있는 안내 문구를 보아하니 내가 정기권을 사용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2호선에 내릴 때 수도권 정기권 어쩌구저쩌구를 본 건 같기도.

친절하다고 치자
▲ 무심코 지나친 안내문 친절하다고 치자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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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서울 권역 안에서 이중으로 전철비를 낸다는 사실이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영업 사원에게는 시간 약속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결국 난 정기권을 걷어 들이고, 후불 교통카드를 꺼내 환승 게이트에 찍었다.

"삑!"

하지만 웬걸. 새로 후불 교통카드를 찍었음에도 환승 게이트에는 오류가 떴다. 몇 번이고 다시 찍어봤지만 역시나 오류였다. 낭패였다. 환승게이트에서는 새로 요금을 낼 수도 없는 듯했다. 수도권 정기권 사용자는 정녕 2호선 출구로 나간 뒤, 다시 새로 요금을 내고 들어와야 하는 것인가.

수도권 정기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
▲ 그래도 억울하다 수도권 정기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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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통과 방법을 물어보고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그 흔한 공익근무요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민자로서 열차마저 무인으로 운행하는 신분당선이 그곳에다 쓸모 없는 인력을 배치할 리가 없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비상 게이트에 달린 스피커에다가 사정 설명을 해봤지만 여직원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시 2호선 출구로 나갔다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좋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신분당선 환승 게이트에서 2호선 게이트를 찍고 오면 그것만 해도 최소 10분~15분은 걸릴 텐데, 그것은 처음 거래처 사람을 만나는 내게 치명적일 수 있었다. 답답했다. 700원을 안 내겠다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곳을 지나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아무리 민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환승은 가능해야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정기권 사용객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최소한 게이트 하나만이라도 설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결국 난 다시 2호선으로 돌아가 전철을 탔고, 교대에서 3호선을 갈아탄 뒤 양재역에서 내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거래처에 도착했다. 다행히 약속 시간 정각이었지만, 덕분에 난 허겁지겁 사무실로 들어가야 했고, 처음 만난 거래처 담당 앞에서 거친 숨을 내쉬어야 했다.

거래처와 미팅을 끝낸 뒤 퇴근하는 길. 아무리 생각해봐도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물론 신분당선 덕분에 강남에서부터 분당까지 이동시간이 많이 단축된 건 사실이었지만, 민자 노선과 기존 노선의 환승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민간자본으로 설치된 공공시설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 목적은 시민의 편의 아니던가.

민자유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민 편의 아닌가?

그렇다. 예상하다시피 내가 길게 경험담을 늘어놓은 것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지하철 9호선과 KTX 민영화 논란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독단적으로 요금 500원을 올리겠다는 지하철 9호선과 힘겨루기 중인데, 이 싸움에 있어서 그가 밀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를 통해 공공시설에 대한 민자유치가 단순히 투자자의 수익보전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공공시설의 개발은 시민의 편의를 위해 진행되어야 한다. 민영화 및 민자유치는 이에 대한 국가나 지자체의 예산이 부족해서 이뤄질 뿐이지, 민자유치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공공시설에 대한 투자자는 이를 단순히 수익개발의 수단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그보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시민들의 편익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책임의식과 공헌의식을 전제로 해야 한다. 비록 큰 수익은 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투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더 윤택하고 편안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것에다가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 아니겠는가.

이유가 빠져있다
▲ 환승안내 이유가 빠져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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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번 9호선 요금 인상 논란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다. 지금껏 9호선의 적자가 투자 업체 맥쿼리에 대한 고율이자 때문이라면 이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현 정권이 그 맥쿼리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진행되어야 하는 사업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불투명하게 진행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현 정권은 국가를 운영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부디 현 정권 실세들의 변명이 사실이길 기도하며, 이와 같은 일이 추후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박원순 시장이 명명백백히 밝혀주길 바란다.


태그:#민자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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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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