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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하늘에 올린 기도가 사람의 희망대로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평화를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만약 조상님께 바치는 간절한 기원이 그대로 이루진다면 세상에는 출세 못한 사람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경우가 더 많음을 본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의 작용이 인간에게 미치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면서 끊임없이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한 길을 찾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당을 찾아 묘를 쓰고, 명당을 찾아 집을 지으면 후손에게 복이 온다는 풍수지리설도 자신과 후손들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기원을 강하게 담은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나는 명당을 찾아 집을 지으면 무조건 후손에게 복이 온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기도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기도의 효험도 믿지 않는다. 아무리 기도를 한들 세상은 변하지 않으며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목적인 기도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에 공명하면서 산다.

그러나 나는 전통적인 풍수지리설을 기복적인 차원에서 믿지 않지만, 풍수지리설에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과학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한다.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이 살기에 좋다는 말만 해도 그렇다.

지금에야 시골집 방에도 아랫목과 윗목이 없고, 스위치만 올리면 난방이 되는 세상이지만 농사지어 먹고 산에서 나무를 구해 땔감으로 썼던 시절에는 북서풍이 강해 겨울이 추운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조건에서 뒤에 산이 있으면 추위를 덜 수 있다는 점, 뒤에 산이 있으면 땔감과 집지을 재목을 구하기 쉽고 그밖에 산나물 등 부산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앞에 강이 흐르면 식수와 농업 용수를 확보하기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배산임수 지형을 찾았을 것이다.

춥고 배고프면 질병에 걸리기 쉽고 그러면 삶에 대한 의욕도 떨어질 뿐 아니라 요절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현상이다. 한마디로 겨울이 추운 북반구 지방에 살며 농사를 지었던 선인들이 춥고 배고픈 곳을 피하고 싶은 지혜를 담아 풍수지리의 서두에 배산임수 지형을 강조했을 것으로 이해한다.

또 현대 과학으로도 수맥이 흐르는 곳에는 집을 지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질병이 많고 건물이 기우는 등 피해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그걸 보면 우리 선인들이 수맥을 피해 집을 짓거나 묘를 쓰지 않았던 사실도 그냥 단순한 금기 사항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수맥이 흐르는 곳에 묘를 쓰거나 집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오랜 경험과 지혜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그밖에 짚 터가 앞이 낮고 뒷이 높으면(후고전저, 後高前底) 전망이 좋을 뿐 아니라 요즘 말하는 일조권 침해를 걱정 안 해도 될 것이고, 집의 방향이 남향이면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집이라는 사실을 요즘 현대인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서양에서도 실내 인테리어를 중요시 여긴다는데 그걸 인테리어 풍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인테리어 풍수라는 말이 조금은 생소하지만 깨끗하고 수준 높은 집을 찾는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여 소비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인테리어를 한다면 그곳을 찾는 소비자는 좀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런 영업장소는 그렇게 노력하지 않은 가게보다 상대적으로 매출이 차이가 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실내 인테리어는 미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편안하고 오래 기억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며, 영업장소와 제품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정성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며 인테리어 풍수를 이해한다.

그러면서 나는 풍수지리설은 역사속의 오랜 경험의 기록에 더하여 민중들의 기원을 담은  민중 신앙이면서, 현대에도 용도에 따라 충분히 받아들여할 내용도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풍수지리를 생활에 활용하는 것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나 묘지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리라는 기대보다 하늘의 뜻에 앞서 인간이 준비해야 될 최소한의 일, 즉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반영한 기원을 담은 정성으로 보았던 것이다.

아마 풍수지리에 관한 몇 가지 책을 사보고 답사를 갈 때는 패철을 지참하고 다니면서 지세를 살폈던 까닭도 풍수지리설이 결코 미신적인 요소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 무당이 사람 잡고, 반풍수가 패가망신한다'는 말을 새기고 있었던 터라 내심 조심하면서 남에게 패철을 내 보인적은 결코 없었다.

 지적공사에서 나와 대지 분할 측량과 이웃 토지와의 경계측량을 마쳤다.
▲ 측량의 한 장면 지적공사에서 나와 대지 분할 측량과 이웃 토지와의 경계측량을 마쳤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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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지원에 집을 짓겠다는 구상은 오래전부터의 일이었다. 그동안 가장 적합한 집 자리가 어디인지 위치와 좌향을 나름대로 비정해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집을 짓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하면서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 풀 수 없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숙지원은 동서의 간격보다 남북의 길이가 2배쯤 긴 남서향의 지형이다. 마을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낮은 산과 접한 자리이면서 뒤가 높고 서쪽과 남쪽으로 완만하게 낮아지는 경사를 이룬 땅이다. 비록 복개되었지만 서쪽 옆으로 냇물도 흐른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명당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 땅이었다.

그런데 마을의 집들에 둘러싸인 숙지원에 왜 사람들이 여태 집을 짓지 않고 전답으로 활용했는지가 나에게는 늘 의문이었다. 집자리에 수맥이 흐르는 것인가? 아니면 전에 흉사가 있었던 곳은 아닌가? 아니면 지형적으로 다른 문제는 있는가? 

마을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물었지만 다행히 사람이 상하는 등의 흉사는 없었다. 의문은 수맥과 지형적인 이유로 압축되었는데 골짜기의 입구에 있는 퇴적 선상지이기 때문에 수맥이 가장 염려되었다. 과연 수맥이 흐르는 땅인지 여부는 집을 짓기 전에 꼭 풀어야 할 문제였다. 그래서 지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말하자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차원에서 결정했던 것이다.

다행히 수맥은 없다는 답변이었다. 집터나 집터의 좌향도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대문 자리도 내가 정한 자리와 다르지 않았다. 단 한 가지, 남서쪽 멀리 봉우리만 보이는 산이 숙지원 땅에 짓는 집의 재물을 엿보는 객산(客山)이라는 해석을 했다.  

단 한 가지, 남서쪽 멀리 봉우리만 보이는 산이 숙지원 땅에 짓는 집의 재물을 엿보는 객산(客山)이라는 해석을 했다. CCTV가 도둑을 지켜주는 세상에 객산 운운하는 이야기가 조금 황당하게 들렸지만 "좋은 것이 좋다"는 말처럼 모르는 것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비보풍수(裨補風水) 차원에서 객산을 가릴 상록수를 심으라는 지관의 말을 들어열 그루의 편백을 사다 심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현관의 위치에 대한 의견은 나의 처음 구상과 달랐으나 그 점도 지관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집 짓기. 그렇게 될 공산이 큰 마당에 지관의 의견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촌부의 스치는 말일지라도 타당한 내용이면 참고하는 자세 또한 아내와 나의 노후를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성의와 노력, 곧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진인사(盡人事)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집터를 파는 작업
▲ 터파기 집터를 파는 작업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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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풍수지리의 현대적 의미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풍수지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다를 것이다. 요즘 명당을 찾는 경우는 일부 호화분묘를 만들 수 있는 부자들 외에 거의 없다고 들었다. 이미 우리나라도 매장보다는 화장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명당을 찾아 먼 산 깊숙이 모신 조상들의 묘를 찾지 못하는 후손들이 많고, 명절이면 벌초 때문에 친척들 간에 싸움이 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요즘은 좌 청룡 우 백호를 따지기보다 좌 교통 우 교통이라며 교통 좋은 곳이 명당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 역시 음택의 명당이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매장보다는 화장이 그리고 유골도 가족들이 펀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면 무방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요즘은 사람의 주거 공간인 양택(집) 역시 명당을 찾는 것도 의미 없다고 본다. 인구의 60%가량이 밀집된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현실에서 명당 운운하는 것도 우습기 때문이다. 또 명당이 무엇인지, 그 부모가 어디에 누워 있는지 모르는 외국 사람들 중에서도 오히려 훌륭한 사람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음을 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조건을 갖춘 하늘이 정한 명당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하늘이 정해준 명당이 있다고 해도 시간이 가면서 지형이 변하고 강의 흐름이 변하듯 개념도 달라지는 것이고, 그보다 명당이란 사람의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기복 신앙의 관점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식처가 될 '편안한 집'을 위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배산임수의 지형, 남향 집, 수맥 없는 땅 등의 조건을 선택하는 태도는 선인들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일일 뿐 아니라 현대 과학에서도 먼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나는 좋은 땅이란 첫째 나와 가족이 평화롭고 편안함을 느끼는 건강한 땅이라고 본다. 거기에 기왕이면 앞 전망이 시원하고 또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요즘은 도로 사정이 좋고, 자가용의 보급이 늘어 못 가는 곳이 없다지만, 그래도 나이 든 사람에에게는 큰 병원이 가까워야 하고, 아울러 주변에 혐오시설이 없는 곳이면 더욱 좋고, 미래에도 재산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더더욱 좋은 곳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해본다.

숙지원은 그냥 마을 가운데 위치하여 이웃과 가까워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땅이다. 풍광이 아름답거나 맑은 시내물이 철철 흐르는 곳은 아니다. 전망이 툭 터진 곳도 아니다. 주변에 이름난 관광 유적지도 없다. 풍수지리의 좌 청룡 우 백호를 따지기 어려운 땅이다. 다만 대도시와 접근성은 괜찮은 편이다. 

그렇지만 숙지원은 아내와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땅이다. 아내와 나의 안전한 채소 등 먹을거리를 자급하는 편안한 일터요 복잡한 머리와 가슴을 식히는 휴식처요 건강을 지키는 놀이터이다. 그곳에 아내와 나의 건강하고 편안한 노후를 위한 기원과 흠 없는 땅을 만들겠다는 정성을 담아 집을 짓는다면 좋은 집이 되고 아마 그 자리는 하늘이 감동하는 명당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 우리는 그곳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집을 지을 작정이다.

12일 대지 분할 측량에 이어 어제(16일) 기초 터파기를 마쳤다. 이제 구체적으로 집 짓기를 시작한 것이다. 집 자리에서 파낸 흙에 물기가 없이 고슬고슬하여 우선 안심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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