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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월 11일, 투표를 끝내고 길을 걸었다. 선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던 당시엔 상쾌함까
지 느끼던 중이었다. 국민으로서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에 스스로가 괜히 자랑스러웠다고
할까? 햇살도 따듯했고, 불어오는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하염없이 걸었다. 나의 한 표가 내가 사는 지역,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하
는 상상을 하며 강가를 따라걸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왔다. 투표장으로 향할 땐 설레, 배를 치우지 않았다. 투표를 마치고 걷는 동안 긴장감이 사라지자 배고픔이 밀려온 것이다. 그러던 내가 발걸음을 멈춘 것은, 어느 간판을 보고나서다.

'착한 우동, 짜장'. 가격을 보는 순간 간판에서 착하다는 말의 뜻이 와닿았다. 한그릇에
삼천원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비판적 사고를 잃지 말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격
만 저렴하고 양은 적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꼼수가 판치는 시대가 아닌가? 판단은 일단
가게에 들어가 한 그릇을 먹어본 뒤에 내리자고 마음 먹고, 가게 안으로 향했다.

가게 벽면. 손님들의 소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게 벽면. 손님들의 소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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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아담했다.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는 가게 안에서, 사장님은 주방에서 주문을 받고
요리를 순식간에 해서 작은 바(bar)같은 인테리어를 갖춘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내놓았다. 들어서자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주방 반대편에 보이는 벽면이었다.

손님들이 직접 글과 그림을 남긴 메모지가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박한 낙서들은 가게의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을 칭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근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사랑고백, 고시생의 하소연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내 마음을 잡아끈 글은 바로 아래의 시였다.

어느 상인의 일기.
 어느 상인의 일기.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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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상인의 일기라는 시, 마지막 구절 누군가 밑줄 친 부분이 인상 깊었다.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 하는 사람.' (사진 상에선 오타로 '우익하게'로 나와있어 가슴 아팠다.) 아마도 이를 밑줄치고 벽에 붙인 사람은 이 가게의 사장님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시를 붙인 것은 단순히 가게 벽이 아니라, 손님들을 맞이하는 스스로의 마음 속이리라.

한그릇 가득 나온 짜장면의 맛은 결코 가격에 비례하지 않았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양도 예상외로 푸짐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손님들은 연신 "맛있다"를 연발하며 한그릇을
금세 해치웠다. 또한, 가게 메뉴에서 '공기밥 반공기:500원'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학생들의 허기진 배를 저렴한 가격에 채울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작년 11월부터 가게를 운영해왔다는 사장님. 어떻게 이렇게 저렴하게 파시냐고 물었더니, 근처 가게는 한그릇에 2500원이란다. 한그릇에 3000원에 하는 착한 짜장의 등장에 주위
가게들도 가격을 내렸다는 이야기. 동네 일대 짜장면 가격 하향에 일조했다는 거였다. 아,
참으로 착하지 아니한가!

한그릇 가득 자장면. 단무지는 셀프다.
 한그릇 가득 자장면. 단무지는 셀프다.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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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먹으며 사장님에게 "투표 하셨느냐"고 여쭈었더니, 그렇다고 하며 가게 안의 다
른 손님들에게도 투표를 독려하신다.

"투표는 국민이 한 표를 행사하는 귀중한 권리죠. 자신을 대변해줄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어느 후보가 서민들을 위해줄지 생각하고 투표해야죠."

가게 입구의 투표 독려 문구
 가게 입구의 투표 독려 문구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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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투표 인증샷을 찍어오거나 하면, 짜장면 값을 선거 당일 3000원에서 '반값'으로
'파격적 할인' 하는 방안을 생각했었다고. 하지만 홍보를 위한 준비기간이 부족하여 입
구에 투표독려 문구를 붙이는 것으로 대신했단다.

주방이 훤히 보이는 낮은 바, 짜장과 우동을 빠르게 즉석에서 요리하여 내놓으며 그는 손
님들에게 말도 걸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짜장면과 우동의 맛에서부터, 손님들이
내놓는 음식에 대한 의견, 세상 사는 이야기, 대학생들과 고시생들의 힘들다는 하소연도
받아주며, 그는 그렇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SNS가 대세라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어떤 매체의 도움도 없이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보면서 디지털의 시대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같이 소통하며 정 나누는 착한 가게

착한 짜장과 우동을 파는 가게. 저렴한 가격에도 양은 정직했고 맛에서는 정성이 느껴졌
다. 하지만 착한 것은 단순히 저렴한 가격 만은 아니었다. 가게를 찾는 손님 한명 한명에게 형식상이 아닌, 정말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태도에서부터, 돈을 받고 음식을 파는 것 이상의 그 무엇, 손님들과 한 명의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음을 나누려는 태도를 보면서 이 가게가 '착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키보드와 스마트폰으로 두드려 이야기를 주고받는 SNS 대신에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낙서들로, 화면 너머 혹은 전화기 너머로 대화하는 것보다 눈을 마주보고 편안하게 나누는
대화로 소통하려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가게. 육체적 배고픔만이 아닌 감성의 허기짐을 잠
시나마 쉬어가며 채울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2012년, 세상은 많이 발전하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터넷과 통신망이 발달했고, 소통
의 수단은 셀 수 없이 다양해졌다. 가게 역시도 대기업의 활발한 골목상권 진출로 어디에
서나 맛좋은 음식을 파는 체인점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역설
적이게도 점점 안부와 소식을 물으며 마음을 나누던 푸근한 예전의 가게들을 찾아보기 힘
들어졌고, 그보다는 그저 음식을 사고파는 형식적인 '돈과 물건의 거래'만을 보고 원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신속함을 원하는 소비자 욕구와 이윤 만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들의 목
표의식에 치우쳐 정(情)을 나누는 과거 우리네 소박한 모습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았나.

착한 가격에 맛 좋은 음식을 팔면서, 그보다도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정을 나누는 가게.
이런 가게가 많아졌으면, 하고 생각하며 가게를 나왔다.


태그:#착한우동짜장, #어느상인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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