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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 항거로 죽어가며 이소선 어머니에게 마지막 남긴 말은 "엄마, 배가 고프다"였다. 막힌 기도를 칼로 뚫어가며 자신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고 노동자 학생 모두 하나 되어 나이 어린 공장의 여공들을 지켜 달라, 그 일을 어머니가 해달라고 한 뒤,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말이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열다섯 살,  열여섯 살 소녀들이 배고픔과 폐병으로 시들어 갈 때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먹였던 전태일. 풀빵을 사 차비가 없어 먼 길을 걷다가 통행금지에 걸려 통금이 풀리면 돌아오곤 했다는 전태일.

차비가 없어 밤새 걸어와야 했던 이는 전태일만이 아니었다. 당시 형과 함께 청계천 피복 공장서 형과 함께 일했던 전태삼씨도 형의 권유로 차비를 내놔야 했다. 배고픔에 지쳐 골이 잔뜩 나 입이 삐죽 나온 상태로 돌아와도, 형과의 약속 때문에 차비로 여공들 풀빵을 사주느라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 이소선 어머니는 말했다.

"태일이 생일이었어. 생일이니까 국은 못 끓여줘도 김이라도 한 장 사줘야지 하고 김을 한 첩 샀어. 김이 열 장인데 우리 식구가 다섯 명이었거든. 두 장씩 주면 되는데, 큰 애 태일이가 생일이니까 내 꺼 한 장 더해서 태일이 한테 김을 세 장 줬어. 그랬더니 작은 아들(전태삼)이 그러는 거라. 엄마는 너무 형만 챙기고 그러지 마세요. 형 때문에 걸어 다니는데…."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씨는 메일 빵울 사가지고 분향소를 찾는다
▲ 전태삼씨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씨는 메일 빵울 사가지고 분향소를 찾는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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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에 차려진 분향소에 매일매일 '빵'을 사오는 남자가 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다. 전태삼씨는 "더 이상은 누구도 죽어서도 안 되고, 자본에 의해 죽임을 당해서도 안 된다"며 "그 모든 문제는 '빵'으로 시작해서 '빵'의 문제로 풀어야한다"고 말했다. 전태삼씨는 분향소를 지키며 앉아 있는 이들과 문화제에 참석하는 이들이 '빵'을 나눠먹는 것을 죽은자와 산 자 모두를 위한 일종의 제의라고 표현했다.

배고픔과 빵 한 조각의 가치. 노동의 참가치를 아는 노동자 전태삼씨는 "49제 날인 5월 18일까지 빵을 사와 문화제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나눠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빈곤과 배고픔의 의미를 잘 아는 전태삼씨가 자본주의 사회 노동의 문제를 빵의 분배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형, 나 주위에서 빨갱이라 하는데, 형은 어때? 쌍용자동차 해고자니까 취업이 안 돼…."

쌍용자동차 77일 옥쇄 파업 이후 정리 해고돼 생계를 고민하다 지난 3월 30일 스스로 목숨을 버린 고 이윤형씨가 김정우 지부장에게 했다는 말이다.

해고자 전원 원직 복직을 외치며 분향소를 지키며 앉아 있는 이들과 문화제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전태삼씨의 '제의'가 탐심과 이기주의로 양심이 단단하게 굳어진 자본가들, 그들을 옹호하는 권력자들의 병든 양심을 흔들어 깨워 물신의 망령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으로 부활시킬 수 있을까.

노동권 쟁취를 위한 파업 이야기를 다룬 켄 로치 감독의 영화.
▲ 영화 <빵과 장미> 노동권 쟁취를 위한 파업 이야기를 다룬 켄 로치 감독의 영화.
ⓒ A Parallax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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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이 만든 <빵과 장미>라는 영화가 있다. 모든 인간에겐 아름다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생존권과 더불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해준다.

1%만이 아니라 99%에 속한 노동자들도 '장미'의 향을 만끽하고 음미할 수 있으려면 노동의 조건이 개선돼야 한다. 남들이 모두 잠을 자는 시간에 '잠 좀 자자'고 말해도 해고되는 세상. 13시간 이상 일하면서 바깥 공기 한번 마시지 못하는 세상. 휴일이라고는 명절날 하루 이틀 뿐인 세상에서 혹사당한다면  '빵'의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장미'의 향기를 음미할 수 없을 것이다.

'빵'을 쌓아두면 썩어서 먹을 수 없다. 매일매일 새로운 '빵'을 구워 먹어야 향기와 맛을 음미할 수 있고, 육체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자본가들이여, '빵'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게 굴지 말라. 당신들이 '빵'을 창고에 쌓아두고 그 빵이 썩게 만드는 동안 굶주린 사람들의 생명줄이 사위어 간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노동자에게도 '장미'가 필요하다.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할 '장미'로 상징되는 문화와 예술이 향기, 때로 자기 안에 침잠할 수 있는 삶의 여유는 인간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장미'의 향기를 독식하려는 탐심 가득한 자본가들이여. 당신들이 '장미'를 가득 채운 방의 문을 닫아거는 순간 장미의 향기는 당신의 생명을 빼앗는 독이 될 것이다.

큰 꽃, 작은 꽃, 발 밑에 앉은뱅이 들풀과 들꽃까지 제각각 생명의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사람 정원에서 함께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쌍용자동차 22번째 희생자 고 이윤형님의 명복을 빕니다. 대한문 분향소는 49제인 5월 18일까지 이어집니다. 4월 21일에는 평택에서 범국민 추모대회로 모입니다.



태그:#쌍용차 22번째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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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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