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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겉그림 〈종횡무진 한국경제〉 ⓒ 오마이북
한국경제는 그간 재벌경제체제로 지탱해왔다. 대기업들이 잘돼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까지 은덕을 입는다는 것 말이다. 한 사람이 열 사람 몫을 해낸다는 것도 그런 흐름이다. 파이를 더 크게 키워야 더 많이 나눠먹을 수 있다는 의미다. 더 큰 재벌을 키워 세계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국부(國富)도 증가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작 재벌경제체제는 문제점이 없을까? 분명 있다. 중소기업들이 위로 올라설 수 있는 사다리를 차버리는 일들도 있다. 다른 하위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뻗어나가는 것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도 발생한다. 재벌도 살고 중소기업도 살고 소상공인들도 살아야 하는데, 모두 재벌에게 잠식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김상조 교수의 책 <종횡무진 한국경제>. 부제가 "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하라"다. 지나온 한국경제는 관치금융이었고, 재벌기업은 정부의 비호 속에서 거대공룡을 확립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문제점은 우리나라 GDP 지분까지도 재벌기업들이 많이 소유하여, 온전한 법치주의를 확립할 수도 없다고 꼬집는다. 설령 규제한다 해도 사상누각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진보진영이 '무능'이라는 낙인을 벗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정책적 대안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 진보적 대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이 '수구'라는 낙인을 벗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시장이 애초부터 기득권 세력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하고도 따뜻한 시장 경제 실서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194쪽)

김상조 교수는 한국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모두가 재벌의 이데올로기적 지배력에 종속돼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재벌개혁을 논하는 세력은 보수보다 진보에 가깝지 않나? 그런데도 그들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진보세력조차도 재벌과 타협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지원 없이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그렇기에 재벌개혁을 위한 일관된 정책을 실현할 '컨트롤 타워'를 설치할 것을 주문한다.

'법치주의'와 '기업집단법'으로 함정에서 탈출하자

과연 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할 해법은 무엇일까? 김상조 교수는 법치주의의 확립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집단법의 확립에서 찾는다. 이미 우리나라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임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재벌 총수가 사회악을 끼쳤어도 대통령의 사면이면 끝이 난다. 그와 같은 흐름을 방지할 수 있는 법치를 세워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업집단법은 또 뭘까?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는 유형을 일컫는다. 이른바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의 법적실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인 재벌 총수와 참모조직, 그리고 각 계열사 이사회 간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여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게 하자는 취지다.

독일의 경우 콘체른(기업집단) 내의 한 계열사의 주주는 다른 계열사의 거래관계에 대해서도 정보청구권을 가지며(주식회사법 제131조 제1항), 각 계열사의 집행이사회는 회계연도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다른 모든 계열사와의 거래관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감독이사회에 제출해야 한다(제312조). 또 모회사가 기업 집단 전체에는 이익이 되나 특정 자회사에는 손해가 되는 거래를 지시하는 경우 그 자회사의 손해를 보상해주어야 하며, 보상이 이루어지면 모회사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면책된다(제302조 및 제311조).(215쪽)

지난 50년간의 재벌경제 경로를 추적하고 한국 경제에 부과된 종적인 '경로의존성'의 제약은 무엇인지, 그리고 재벌·중소기업·금융·노동 분야 등의 횡적인 '상호보완성'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한 이 책을 통해 재벌개혁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리하여 중소기업들도 충분히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의 해법은 그래서 필요하고 또 적절하다.


종횡무진 한국경제 - 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하라

김상조 지음, 오마이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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