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녹색 궁전의 외관. 사진으로 봐서는 그냥 그런 건물처럼 보이는데 직접 봤을 때는 묘한 감동을 주는 게 있었다.
 녹색 궁전의 외관. 사진으로 봐서는 그냥 그런 건물처럼 보이는데 직접 봤을 때는 묘한 감동을 주는 게 있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테헤란에서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남부 구시가지에 있습니다. 아미르 카빌 거리에 위치한 숙소 인근은 허름한 건물이 무질서하게 늘어선 다소 우중충한 곳입니다. 한마디로, 못사는 동네였습니다. 근데 오늘 우리가 방문한 팔레비 왕가의 여름왕궁이 있는 토찰산 아래 마을은 기존 테헤란의 이미지와는 딴판이었습니다.

이란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타즈리쉬 광장 부근은 또 다른 이란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쿠키와 빵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유명한 제과점, 커피향이 진했던 커피전문점, '부어'를 연상시킨 패스트 푸드점 '부프', 예쁜 옷가게 등 풍요로운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곳이 가난한 테헤란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 것은 주택가에서입니다. 담장은 높고 건물은 깔끔했습니다. 지나다니는 차들도 다 새 차였습니다. 모퉁이로 현대의 싼타페가 지나갔습니다. 반가워서 다시 보니 이란 아줌마가 운전을 하고 있었고, 옆자리에는 아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이 아줌마뿐만 아니라 이 동네에 들어서니까 아이를 차에 태워 등교시키는 아줌마가 많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하게 봤던 풍경입니다.

고급 주택가를 지나 팔레비 궁전 앞으로 오니 단체 견학을 온 여학생들로 재잘재잘 시끄러웠습니다. 하얀 히잡을 두른 초등학생들인데 다들 표정이 밝고 명랑했습니다. 너무 귀여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아이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우릴 구경했습니다. 팔레비궁전 앞은 견학 온 소녀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팔레비궁전이 이란인들에게서는 유명한 관광지인 모양이었습니다.

팔레비여름궁전은 1930년부터 1937년까지 무려 8년간 팔레비 왕조의 레자 샤가 건립한 건물들로 그의 후계자가 여름 궁전으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에는 총 18개의 건물 중 7개를 박물관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샤드 아바드 복합 박물관(Sa'd Abad Palace-Museums)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7개의 궁전 가운데 하얀 궁전(White Palace)과 녹색 궁전(Green Palace)이 특히 건축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 클라라 압카르(Klara Abkar)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니어처박물관, 베흐자드(Behzad)의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그리고 민속연구소이면서 다양한 시대에 개발된 이란의 서예체를 전시한 미르 에마드 서예박물관(Mir Emad Calligraphy Museum), 상감기법으로 세공한 아름다운 가구와 함께 18세기의 이란의 유화작품을 전시한 회화박물관, 왕의 조카인 샤흐람(Shahram) 소유의 무기 및 다른 무기들을 전시한 군수박물관이 있습니다.

 하얀 궁전 앞에 있는 팔레비 레자 샤의 장화. 원래는 동상이었는데 혁명때 군중들에 의해 상체는 잘려 없어졌다 한다.
 하얀 궁전 앞에 있는 팔레비 레자 샤의 장화. 원래는 동상이었는데 혁명때 군중들에 의해 상체는 잘려 없어졌다 한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먼저 하얀 궁전에 들렀습니다. 하얀 궁전은  멜랏궁전(Mellat Palace) 또는 국민박물관(Nation Museum)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곳엔 총 54개 방이 있으며, 이란에서 가장 큰 카펫과 프랑스 마리 앙투와네트가 사용하던 책상이 있습니다.

또 하얀 궁전에는 커다란 장화 한 켤레 모양의 청동상이 입구에 서있습니다. 이 장화 청동상은 팔레비 레자 샤의 동상이었는데, 이슬람 혁명때 군중들이 파괴하고 장화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동상이 나름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적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으니 하얀 궁전의 마스코트처럼 여겨질 만 했습니다.

하얀 궁전에서 녹색 궁전까지는 걸어갔습니다. 이날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햇빛이 눈부셔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하페즈의 무덤이 있던 쉬라즈에서 느꼈던 강렬한 사막의 태양빛이었습니다. 강한 햇빛의 열기로 지쳤는지 몸이 마음과 달리 느릿느릿 움직였습니다. 팔레비 여름궁전은 구경할 게 많기 때문에 바삐 서둘러야 했는데 더운 날씨는 사람을 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녹색 궁전은 건물 외관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녹색 궁전의 외관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모방 작품이 있었을 듯도 싶습니다. 박물관 건물하고 닮은 것도 같고, 길 가다 모델하우스 건물에서 본 것도 같고, 어디선가 분명 본 느낌인데 정확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녹색 궁전은 외관을 녹색 미네랄 돌로 지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녹색 궁전 앞 벤치에 앉아서 나무를 흔들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며 건물을 구경했는데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히 봐왔던 모습이라 익숙한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오리지널이 가진, 마력 아닐까 싶습니다.

녹색궁전 내부의 가구와 장식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크리스탈로 꾸민 천정 거울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밖에 대부분의 가구들이 유럽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페르시아 카펫이 깔려있고, 외벽 및 기둥의 장식 등도 예술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하얀 궁전의 내부. 가죽을 남긴 채 엎어져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팔레비 레자 샤의 처지와 닮은 듯 하다.
 하얀 궁전의 내부. 가죽을 남긴 채 엎어져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팔레비 레자 샤의 처지와 닮은 듯 하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녹색궁전에서 나와  팔레비 왕가의 개인 전시관을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는 이미 중국 관광객이 있었습니다. 여자 한 명에 남자들뿐이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남자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란인들은 중국 여행자들과 우리 일행을 부부 단체 여행자로 오해할 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을 하면서 웃었습니다. 한 바탕 웃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회화박물관은 별로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녹색궁전과 하얀 궁전만 구경하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을 인솔하는 길대장이 그림을 전공하고 또 관심이 많았기에 그냥 따라간 정도로 갔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그림에 관심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좋은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재미있었습니다. 팔레비 왕가의 화려한 생활을 구경하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해석해보려는 지적 욕구를 느꼈습니다. 회화박물관은, 1층에는 추상화가 있고, 2층에는 사실주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아이의 모습이 담긴 그림인데, 아이의 아버지와 엄마는 잠에 빠져있고,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데, 아이에게 보이는 풍경은 환상적인 세계였습니다.

어른들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아이들은 깨어 있고, 깨어 있는 아이에게만 보이는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전공했고, 프랑스나 영국의 박물관에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많이 봤던 길 대장이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의 모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에게만 모이는 신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 그림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를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종교에 관심 많은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반면에 작은 딸 하나는, 어떤 여자가 옥상에서 미소 지으며 꽃에 물주는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드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나름의 삶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설명을 요약해보면, 삭막한 도시에서도 마음속에 밝음, 아름다움, 이런 걸 갖고 있으면 상황에 관계없이 행복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작은 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좁은 버스를 밤을 새워 타고 갈 때도, 두 끼를 연달아 굶을 때도, 추운 터미널에서 떨면서 몇 시간이고 기다릴 때도,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즐거워하던 하나다운 생각이었습니다.

반면에 큰애는, 어떤 엄마가 아이를 업고 돌다리를 건너는 그림을 베스트로 꼽았습니다. 아마도 큰애의 마음에는 내가 채워주지 못한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연년생의 맏이로서 피할 수 없는 트라우마라고 생각합니다.

회화박물관에서 우린 그림을 보면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주 감정이나 생각, 가치관, 관심사를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다음에 누군가 간다면 이곳의 그림들을 구경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아내는 놀이를 통해 자신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팔레비 여름궁전#햐얀궁전#녹색궁전#팔레비 레자 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