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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난로에 연통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교체한 연통.
 장작난로에 연통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교체한 연통.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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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겨우내 사용했던 장작난로 연통을 교체했다. 겨울을 나는 동안 2번이나 청소를 했지만 며칠 전부터 연기가 장작 주입구로 뿜어져 나오는 등 이상증상을 보인 연통이 결국 어제 사고를 일으켰다. 연통 속에 쌓여 굳어진 재 덩어리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난로열기와 지극성이 강한 목초액 등에 의해 삭아버린 이음새들이 터져버린 것이다. 철거한 연통에서는 엄청난 양의 굳은 재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왕 이렇게 됐는데 난로를 아주 철거해 버리지 뭐."

요사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자주 공사판 출근을 거르는 후배 길형씨가 시커먼 재로 난장판이 된 가게 곳곳을 빗자루로 쓸어내며 던진 말이다.

"아니야. 4월 한 달은 무조건 때야 돼. 아직 골짜기엔 얼음이 그대로 있는 걸."

긴 겨울이 무료하다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휴게소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마을 선배 영남씨가 손사래를 친다. 여기저기서 봄소식이 전해져 오지만 아무래도 산간 내륙인 이곳(강원 횡성)은 이달 말까지 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린다. 수년간의 경우를 보더라도 밭에 채소 싹이 꽤 자라고 개나리, 진달래가 만개한 뒤에도 함박눈이 쏟아져 모두를 당황케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한 겨울 잘 버텨준 연통을 교체하다

일요일인 어제(1일), 면 소재지에 있는 철물점 두 곳 모두 문을 닫은 탓에 당장 연통을 설치하지 못했다. 마침 바람이 세차게 부는 영하의 날씨 탓에 난로 열기가 아직 필요함을 피부로 경험한 것이다. 이른 새벽 득달같이 친구 광수씨가 운영하는 철물점 문을 두드려 새 연통을 구입했다. 연통의 높이와 경사도, 이음새를 끼우는 방향 등 나름대로 한 해 겨울 난로를 가동해본 경험을 반영해 연통설치를 마쳤다.

교체한 연통이 시원하게 연기를 뽑아줍니다.
 교체한 연통이 시원하게 연기를 뽑아줍니다.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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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통은 강력한 기능을 발휘했다. 작은 불씨로도 굵은 장작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난로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가게 전체를 훈훈하게 달구었다. 연통 이음새에 부착한 알루미늄 테이프의 접착물질이 금세 녹아 역한 냄새를 만들어 냈다. 연통 끝으로 세차게 쏟아져 나오는 연기를 보니, 어떻게 해서든 교체하지 않고 버텨보려 매캐한 연기에 시달린 며칠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하다.

장작난로는 훈훈함과 함께 추억을 선사합니다.
 장작난로는 훈훈함과 함께 추억을 선사합니다.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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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와 연통에 얽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다

난로와 연통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 어린 시절의 특별한 기억이 있다. 짧은 한 해 겨울의 기억들이지만 연상되는 장면이 많고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것은 즐거움과 충격이 함께 남아있기 때문일 것 같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일 듯싶다. 4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다. 아버지는 당시 30대 후반의 나이에 직업군인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에서도 보기 드문 첩첩산중인 이곳 '정자골'에 가족들을 이끌고 정착했다.

부모님과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누님 둘, 형과 갓 두 돌 정도 지난 동생 등 일곱 식구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워낙 외딴 골짜기 마지막 집인 탓에 하루 종일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새 농법과 신 작목을 도입해 소득을 얻고자 노력하셨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겨울철 두릅 재배 농사인데, 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장작난로를 활용한 하우스 내 온도 유지였다.

아버지는 꽤나 높고 넓은 하우스를 초가집 바로 옆 텃밭에 지으셨다. 하우스 안에는 가을철 산에서 잘라온 두릅나무를 빼곡이 심었다. 두릅나무는 뿌리로 번식을 하지만 절단해서 땅에 꽂으면 두릅을 한 번은 수확할 수 있다. 여기에 물을 주고 난로를 피워 온도를 맞춰주면 한겨울에 싱싱한 두릅을 생산할 수 있다는 새로운 농법을 도입하신 것이다.

참나무 장작.
 참나무 장작.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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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에서 한겨울 두릅 생산 시도하신 아버지

주변에서는 모두 무모하다며 심지어는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의지는 확고했다. 하우스 안에는 커다란 무쇠난로 두 개가 설치됐는데, 밤낮으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 장작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소요됐다. 얼어붙은 개울의 두꺼운 얼음장 가운데 얼음웅덩이를 만들어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두릅나무에 수분을 공급했다.

사실 당시 어린 나로서는 이러한 한겨울 두릅생산 농사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어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로만 '아, 그런 거구나'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정작 관심은 딴 곳에 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엄동설한 하우스에서 따뜻하게 지내기'였다.

두릅 하우스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다 보니 정작 살고 있는 집의 온돌방은 넉넉한 장작불이 지펴지지 못했다. 잠을 청하면 코가 시리고 손발이 얼 것 같은 냉골이었다. 그러나 하우스는 달랐다. 새벽녘 잠에서 깨면 곧장 온 식구가 하우스로 달려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했다. 온 천지가 동장군의 살기에 얼어붙어 있어도 하우스 안에서는 내복차림이 가능했으니 어린 마음에 그처럼 즐겁고 신기한 일도 없었다.

장작난로에 호박씨, 콩을 구워먹던 행복한 추억

어린 나와 형제들을 더욱 즐겁게 하는 일은 난로 가에 둘러 앉아 호박씨와 콩을 구워먹는 것. 호박씨는 난로 뚜껑 위에 그냥 얹으면 잠깐 사이에 저절로 튀어 올라 뒤집혔다. 잘 익은 호박씨의 껍질을 까서 먹는 고소함은 당시 주전부리가 흔치 않았던 두메산골에서 단연 최고가 아닐 수 없었다.

콩과 팥, 옥수수 농사가 주 작목이었던 탓에 콩은 흔했다. 콩을 구워 먹는 재미도 호박씨에 못지 않았는데, 특히 콩은 당시 육류 단백질 섭취가 어려웠던 때인지라 영양 공급원으로서도 좋았던 것 같다. 콩을 구워먹는 방법이 독특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가는 철사를 깔때기 모양으로 말고 손잡이를 만든 후 콩을 한두 개씩 넣어 난로 불에 넣으면 손을 데지 않고 콩을 구워먹을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됐다.

아마도 지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의 생활, 또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했던 산골 생활 중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때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기간이 보름 정도였는지, 아니면 그 이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가족들의 단란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사고로 마감된다.

장작불.
 장작불.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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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날아가 버린 아버지의 꿈과 가족의 행복

어느 날 새벽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빨리 물 가져와!"라는 아버지의 다급한 외침소리에 잠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 순간,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오래 가지도 않고 종료됐다. 두릅 하우스는 이미 시뻘건 불이 절반 이상을 핥아 골조만 덩그러니 남은 상태. 양동이와 바가지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온 식구가 물을 뿌려댔으나 이미 하우스 전체는 녹아내린 후였다.

연통 청소가 화근이었다고 한다. 젖은 장작을 때면 연통 속에 재와 함께 물기가 생겨 굳어지면서 연통이 막히므로 수시로 연통을 두드려 주어야 하는데, 이때 튄 불똥이 하우스를 덮고 있는 비닐로 옮겨 붙은 것. 초가집과 거의 붙어 있던 하우스에 불이 붙으면서 하마터면 집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넘긴 것만도 다행이었다.

하우스 안의 두릅은 아버지가 예상한 대로 잘 자라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과 충격이 컸던 사건이었다. 한 해 겨울의 꿈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아버지는 소주 됫병을 벌컥벌컥 들이키셨다. 어린 나로서는 콩과 호박씨를 구워먹던 놀이터가 없어진 아쉬움이 분명 컸을 터이지만 부모님의 상심에 그저 눈치만 살폈을 터이다.

훈훈한 정감 선사하는 난로는 겨울의 동반자

난로 위의 주전자가 어느새 거친 김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알루미늄 접착테이프 타는 냄새도 사라졌다. 제법 굵은 빗줄기가 언제라도 눈으로 바뀔 수 있을 듯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다. 가게 안에 놓여있는 자체만으로도 훈훈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를 선사해주는 장작난로와 연통,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의 소중하고 고마운 동반자임을 새삼 느낀다.


태그:#장작난로, #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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