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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뒤에 숨은 요놈, 산양인지 흑염소인지 모르겠다.
 나무 뒤에 숨은 요놈, 산양인지 흑염소인지 모르겠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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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병산 정상을 조금 내려온 지점에서 점심을 먹는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고 바람이 불어 식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능선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으로 내려와 조그만 공간을 차지하고 앉는다. 요즘은 등산객들 대부분이 점심을 싸온다. 도시락을 가져오기도 하고 김밥을 싸오기도 한다. 우리는 도시락 팀과 김밥 팀으로 나눠 앉는다.

도시락을 꺼내서 밥을 먹으려 하는데, 숲속에서 움직이는 검은 물체가 보인다. 상당히 크다. 자세히 봐도 산양인지 흑염소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우릴 경계하는 듯 나무 뒤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빵을 던져주며 유인한다. 먼저 조금 멀리 그리고 조금 가까이. 이내 그 녀석이 조금씩 경계를 풀고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그렇지만 빵을 먹고는 다시 멀어진다. 그렇게 여러 번 숨바꼭질을 하다가 경계를 더 늦추기 시작한다.

몸을 완전히 드러낸 요놈, 산양인지 흑염소인지 모르겠다.
 몸을 완전히 드러낸 요놈, 산양인지 흑염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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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 껍질도 던져 준다. 잘 먹는다. 우리가 자신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일까? 아주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는 새우와 같은 마른반찬도 던져준다. 안 먹는 게 없다. 준비해간 먹거리가 더 있다면 더 줬을 텐데 아쉽다. 우리는 20분 정도 이것저것을 주며 그 놈과과 함께 놀았다. 논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홀렸다.

가까이 다가온 산양인지 흑염소인지 모를 그 녀석을 보니 한쪽 뿔의 절반이 부러져 있다. 함께 한 회원들 모두 그게 궁금한 모양이다. 나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 부러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회원은 사람들에 의해 부러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부러진 뿔을 보며 야생에서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여하튼 800m 고지에서 이렇게 이 녀석을 만난 것은 행운이고 대박이었다. 먹이가 풍부했다면 이 녀석은 결코 사람 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요놈, 산양일까 흑염소일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요놈, 산양일까 흑염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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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과 검은 털의 동물이 보여주는 흑백의 대비,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역동성, 노란 눈에 검은 눈동자가 보여주는 외로움, 모두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우리가 던져준 먹이를 모두 먹어치운 녀석은 한두 번 더 눈 위를 왔다 갔다 하더니 유유히 우리 눈에서 사라져 간다. 아쉽지만 그렇게 작별할 수 있다는 게 즐겁다.

그러면서 이 녀석의 정체가 산양일까, 흑염소일까 궁금하다. 속리산과 구병산 지역에 산양이 산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자료 사진을 보니 흑염소에 더 가깝게 생긴 것도 같다. 그렇다면 농장에서 뛰어 나온 염소가 아닐까. 그렇지만 염소가 먹을 것을 찾아 해발 800m까지 올라올 리는 없다. 왜냐하면 염소는 본능적으로 제가 살던 마을로 접근할 것이기 때문이다.  

속리산의 파노라마... 구병산 오르면 보인다

구병산에서 바라 본 속리산의 파노라마
 구병산에서 바라 본 속리산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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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후 우리는 구병산 853m 고지에 선다. 이곳을 내려서자 속리산 전체 파노라마가 한 눈에 들어온다. 기묘한 봉우리가 만학천봉을 이루며 흘러간다. 그 봉우리에는 흰 눈이 덮여 그 파노라마가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속세를 떠난(俗離) 산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속리의 뜻을 좀 더 철학적으로 푼 시인이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부 7>'시예(詩藝)'편에 따르면, 임제가 학문에 뜻을 두고 속리산에 들어가 공부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성운(成運·1497~1579) 선생을 만나 <논어>와 <중용>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임제가 <중용> 800편을 읽고, <중용> 제13장 자왈도불원인(子曰道不遠人)을 활용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건만 사람이 도를 멀리 하고   道不遠人人遠道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건만 세속이 산을 떠나네           山非離俗俗離山

왼쪽이 속리산, 오른쪽 뒤로 백두대간이 이어진다.
 왼쪽이 속리산, 오른쪽 뒤로 백두대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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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은 또한 예로부터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 있어, 8봉, 8대, 8석문의 산으로 불렸다. 8봉은 천왕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이다. 8대는 문장대, 신선대, 경업대, 입석대, 배석대, 학소대, 은선대, 봉황대다, 8석문은 상환석문, 상고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등이다.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속리산을 '바위의 형세가 높고 크며 첩첩 봉우리의 뾰족한 끝이 모여서 막 피어나는 연꽃 같고 횃불을 벌여 세운 것 같기도 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동서로 이어진 속리산의 파노라마가 장쾌하다. 그러한 산세는 청화산과 대야산을 거쳐 희양산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남북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우리는 백두대간이라 부른다. 구병산에서는 동서로 이어지는 속리산과 남북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속리산의 파노라마를 제대로 보려면 구병산에 올라야 한다. 

구병산의 암릉미는 정상과 신선대 구간에서

구병산의 암릉미
 구병산의 암릉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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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산 정상에서 853m봉을 지나 두어 고개를 넘으면 신선대에 이른다. 그런데 이 구간이 구병산 산행의 백미다. 구병산의 암릉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속리산과 백두대간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 덮인 이들 암릉은 푸른 소나무와 아주 잘 어울린다. 신선대에는 작은 표지석을 세워 놓아, 이곳이 신선대임을 분명히 했다.

신선대부터는 산행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853m봉을 지나 남쪽의 적암리 또는 북쪽의 구병리로 하산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충북 알프스 구병산 구간을 종주하는 것이어서 동쪽으로 계속 나가야 한다. 신선대에서 지도와 GPS를 통해 나갈 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산행을 계속한다. 중간에 잠깐 다른 길로 들어서, 간 길을 되돌아오기도 한다. 소위 '알바'라고 하는 것으로 전문가도 가끔 하는 실수다.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따분'

신선대에서 헬기장 쪽으로의 조망
 신선대에서 헬기장 쪽으로의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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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에서 헬기장까지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지루하다. 바위도 별로 없고, 멋진 소나무도 없으며, 조망도 그저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형제봉까지의 거리를 적어 놓은 표지판이 나온다. 형제봉은 백두대간의 봉우리로 구병산과 속리산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목적지는 형제봉이 아니고 삼가리와 동관리를 이어주는 장고개다.

장고개는 행정구역상 상주시 화남면에 속해 있다. 헬기장에서 장고개까지는 30분이 조금 더 걸린다. 장고개에 가까워지면서 길에 눈이 없어진다. 우리는 아이젠을 풀고 좀 더 편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는 낙엽 밟는 소리가 난다. 푹신하다. 눈산행을 했기 때문에 등산화에서 약간 축축한 느낌이 든다. 고어텍스니 뭐니 해도 완벽한 방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충북과 경북의 도계
 충북과 경북의 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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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개에 도착하니 아스팔트길이 펼쳐진다. 우리는 이곳에서 삼가저수지까지 걸어 내려간다. 그리고 우리 회원 중 두 명이 산행을 시작한 서원리로 간다. 그곳에서 차를 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삼가천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밭이 보인다. 농사를 시작하려는지 밭에 거름을 내기도 했다. 조금 더 내려오니 달마선원으로 갈라지는 길이 보인다.

그리고 길을 계속 내려가자 충북과 경북의 도계가 나온다. 물은 한줄기인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경계선으로 도가 갈렸다. 최근에는 이 길에 비룡동관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난해부터 도로명이 주소명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오후 5시가 돼 차를 가지러 간 회원이 돌아왔고, 차를 타고 삼가저수지 쪽으로 간다. 그런데 운전하는 회원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선병국 가옥의 장항아리
 선병국 가옥의 장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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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우리가 출발한 서원리 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반대 방향인 동관리 쪽으로 가느냐 하는 문제다. 서원리 쪽으로 가면 좋겠다. 왜냐하면 서원리로 나가면 장안면 개안리에 있는 선병국 가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병국 가옥은 보은뿐 아니라 충청북도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이다. 그곳에 가면 또한 된장, 간장 같은 전통 음식문화를 만날 수 있다.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구병산에는 지난 3월 25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구병산, #산양, #속리산 이야기, #신선대, #장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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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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