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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장애인, 그들은 '미운 오리새끼'가 맞다. 온몸을 비틀며 힘겹게 내뱉는 한마디 말은 과도한 속도로 달려가는 세상의 굉음 속에 언제나 묻히고, 뒤뚱거리며 더듬거리듯 내딛는 발걸음은 효율이라는 잣대에서 늘 바닥을 헤메였다. 그래서 그들은 지나친 시혜의 대상이었지만 또 그만큼 외면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도 축구를 한다.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자리잡기 시작한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 장애인 보다 훨씬 더디게 움직이는 장애인 정책을 딛고 전국에 13개팀 약 200여 명의 뇌성마비 장애인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는 유소년 축구와 규격이 같은 75m*55m의 경기장에서 이뤄진다. 뇌성마비 장애5급부터 8급까지 선수들 7명이 뛴다. 오프사이드(Off side)는 없고 드로우인(Throw-in)은 손으로 굴린다. 그것이 비장애인 축구와의 차이점이다.

아시아 축구연맹(AFC)산하 사회공헌 위원회가 주관하는 아시아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선수권 대회(AFC Dream Asia 2012). 이번 대회에는 한국을 비롯해 이란, 호주, 요르단, 싱가포르, 개최국 UAE 등 6개국이 초청 받았다.

한 벌 밖에 없는 국가대표 유니폼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단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단
ⓒ 조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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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출정식이 있던 날, 대표팀 주장을 맡은 상훈씨는 저녁도 거른 채 공항 출국장으로 달려왔다. 상훈씨는 직장 일과가 끝나지 않아 출정식에는 참가도 못했다.

그는 이번 대회 참가를 위해 1년 치 휴가를 다 썼다고. 지난 대회 주장이었던 스트라이커 해철씨는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대회기간을 비우려면 회사를 그만 두라'는 상사의 압력 때문이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들을 부러워 한다. 다닐 수 있는 직장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일 게다.

그들은 국가대표다. 그들이 입는 유니폼 왼쪽 어깨에는 선명하게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더 미운오리새끼가 맞다. 터질 듯 뛰는 심장과 함께 태극마크가 주는 두근거리는 자존감은 국제대회 참가에 변변한 통역사 한 명 제대로 두지 못하는 현실 앞에 무너진다.

'붉은 악마'가 상징하듯 국가대표 유니폼은 붉은색이다. 적어도 두 벌씩은 준비가 돼 있어야 매 경기 세탁한 옷을 입고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은 한 벌, 그것도 모든 축구용품을 후원해주는 한 스포츠 업체에서 온 것이니 더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 다행히 대회조직위와 호텔 측의 발 빠른 대응으로 땀에 전 유니폼을 다음 경기에 또 입어야 하는 상황은 피했다. 호텔 측이 세탁소 운영시간을 연장해준 덕분이다.

주최국 UAE를 9대 0으로 대파한 한국대표팀

입장하고 있는 한국팀
 입장하고 있는 한국팀
ⓒ 조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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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수도 아부다비에 입국한지 이틀. 전 참가국 선수들이 묵는 호텔의 로비는 언제나 성황이다. 서로 소속을 물으며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고 선전을 기원한다. 한국팀은 개막전 상대인 UAE와의 일전에 초점을 맞춰 훈련을 진행했다. 또한, 조직위원회는 아시아 축구연맹의 위상에 걸맞는 철저한 준비로 참가한 모든 뇌성마지 방애인 선수들이 멋진 기량을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배려를 하고 있었다. 한국팀 전담 매니저인 마지드(Majid·33)는 우리 선수가 가르쳐준 "대~한민국 짝짝! 짝! 짝! 짝!"을 연일 외치며 응원한다.

마지드의 열혈 응원 때문이었을가. 한국팀은 지난 1일 오후 8시 15분(현지시각) 아부다비 암드포스 스타디움(Armed Forces Stadium)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주최국 UAE를 9대 0으로 크게 이겼다.

첫골의 주인공은 경석씨. 강북구청에서 장애인 전담 상담을 업으로 삼은 선수다. 한국 선수들 중 키가 제일 작지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지능적 플레이를 장기로 한다. 첫골을 쉽게 넣은 덕분에 이후 경기는 순조롭게 풀렸다. 무려 6골을 혼자 넣은 필립씨는 장애 정도가 가장 경미한 C-8급. 그리고 나머지 두 골은 뇌성마비 장애인 국가대표 축구팀 경력 15년 차인 베테랑 미드필더 형수씨의 몫이었다.

아부다비 티브이-스포츠(ABUDAHBI TV-SPORTS)에서 생중계로 방송된 개막전에서 한국선수들은 미운 오리새끼의 털을 하나둘 씩 벗어가고 있었다.

숱하게 많은 태극전사들이 포효했던 중동의 한복판, 아부다비에서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팀은 20명 남짓한 교민들의 간절한 응원을 디딤돌 삼아 하늘을 나는 백조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한국선수단 경기 일정
- 4월 1일 오후 8시 15분 (한국 시각 오전 01시 15분) 대 아랍에미레이트 9:0 승
- 4월 2일 오후 5시 (한국 시각 오후 10시) 대 호주
- 4월 3일 오후 7시 (한국 시간 오전 0시) 대 싱가포르
- 4월 4일 휴식
- 4월 5일 오후 7시 (한국 시각 오전 0시) 대 요르단
- 4월 6일 오후 7시 (한국 시각 오전 0시) 대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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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뇌성마비 장애인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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