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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월요일이 스페인에서는 '아버지의 날'인지라 순식간에 주말을 포함하여 3일을 쉬게 되었다. 작년 겨울에 크리스마스를 껴서 2주 동안 혼자 동유럽을 여행했는데, 여행이 주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겨울인 탓에 춥고 해가 짧아서 '따듯해지면 다시 여행해야지'라는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인 유럽에서 혈혈단신 여행하는 게 생각보다 신나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다음 여행은 꼭 좋은 사람이랑 같이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는데, 이번 주말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날이 공휴일이라는 것을 늦게 알았기 때문에 같이 여행할 사람을 구하기엔 힘들어졌고, 살라망카에서 제법 가까운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정한 여행지는 세고비아(Segovia). 가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인 세비아(Seville)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세고비아는 마드리드 북쪽에 위치한 다른 도시이다.

살라망카에서 세고비아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는 게 아니라서 오전 8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다. 어학원 수업이 10시에 시작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그 전날 알람도 3개나 맞추어 놨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다들 나처럼 여행을 가는 모양이다. 버스에는 여행에 들뜬 사람들이 한 가득이었다.

살라망카에서 동쪽으로 186km의 지점에 위치한 세고비아는 버스로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살라망카에서 동쪽으로 186km의 지점에 위치한 세고비아는 버스로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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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자고나니 벌써 저 멀리 세고비아 풍경이 보인다. 버스정류장에는 관광안내소도 있어서 지도도 받고, 친절히 설명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인구가 56만 명 정도인 조그만 도시이기에 편한 신발만 신고 있다면 어디든지 걸어서 거뜬히 갈 수 있다.

먼저 세고비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로마시대 지어진 수도교(水道橋)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이 수도교는 구시가지에 들어가려면 꼭 지나쳐야하는 광장(Plaza del Azoguejo)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안 지나칠래야 안 지나칠 수가 없다.

세고비아의 구 시가지와 이 수도교는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도교의 크기가 워낙 방대하여 머리를 90도로 들어야지 그 끝을 가늠할 수 있다.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지어져 19세기까지 산에서부터 시내로 물을 공급하였다고 한다.

나는 광장서부터 수도교의 끝을 따라 걸어가 보았다. 이 수도교는 교량이 낮아질수록 그 정교함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는데 수도교의 끝으로 가서야 물이 흐르던 곳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21세기까지 로마시대의 건축물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니 경이로울 다름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수도교를 따라서가 아닌 발길이 닿는 대로 가니 도착한 곳이 한 성당이었다.

로마시대의 수도교가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로마시대의 수도교가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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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스 후스토와 파르토르 성당(Iglesia de los santos justo y pastor)이었다. 성당 내부에는 내일 이곳에서 있을 공연 조명 준비가 한창이었다. 12, 13세기에 지어진 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성당 안에는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11세기에 만들어진 고딕양식의 예수 나무 조각(Cristo de los Gascones)이었다. 팔, 다리의 관절까지 표현된 이 조각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경건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다음날에 있을 연극도 이 조각상에 대한 연극이었다. "여기에서 뭐 해요?"라고 물었던 나에게 관심이 가셨나본지, 연극을 한다고 알려주신 조명을 설치하던 아저씨는 아예 나를 성당곳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물론 그 주에 스페인어 '말하다, 먹다, 살다'의 현재형, 과거형을 공부한 나로서는 이 성당의 역사와 그 안에 있는 그림의 역사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었지만,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아저씨의 정성에 감동하여 눈을 마주치며 "그렇구나!"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나무조각의 예수상이 인상적이었던 산토스 후스토와 파르토르 성당
 나무조각의 예수상이 인상적이었던 산토스 후스토와 파르토르 성당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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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시가 중심가로 걸어가다 보면 스페인 도시에는 항상 있는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이 보인다. 이러한 큰 광장은 스페인의 각 도시마다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살라망카에도 존재한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인터넷으로 스페인어 강의를 듣다가 다이얼로그에 마요르 광장이 나오길래 '이 강의를 만든 사람들도 살라망카에 왔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마요르 광장 바로 옆에 세고비아 대성당(Catedral de Nuestra Senora de la Asuncion y de San Frutos)이 있다. 16세기에 건축된 이 성당은 후기 고딕 성당건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후기 고딕양식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세고비아 대성당
 후기 고딕양식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세고비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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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면 알카사르 성(Alcazar)을 만날 수 있다. 성 앞에 있는 정원에서 잠시 쉬려고 앉아있으니 미국에서 온 관광객 아저씨들의 대화가 들린다.

"우아 이거 디즈니랜드 성 아니야?! 팅커벨은 어디 있지?"
"흠, 난 아직 팅커벨은 못 봤는데."

아저씨들의 대화대로 이 성을 보자마자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성이 떠오른다. 그 이유는 바로 디즈니가 팅커벨이 아닌 <백설공주>를 만들 때 이 성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성이 언덕에 있는 터라 그 뒤에 탁 트여서 보이는 광야도 인상적이다.

디즈니 만화의 '백설공주'성의 배경이 된 알카사르 성
 디즈니 만화의 '백설공주'성의 배경이 된 알카사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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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수도교가 있는 광장 앞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시켰다. 역시 관광지라 그런지 살라망카에서 마시는 맥주보다 50센트가 더 비싸고, 같이 나온 안주도 시원치 않지만 수도교를 보면서 이렇게 맥주를 마시니 이런 불만이 없어진다. 이렇게 혼자 여행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교를 보며 마시는 맥주는 그 값이 다른 곳보다 50센트가 비싸도 아깝지 않다.
 수도교를 보며 마시는 맥주는 그 값이 다른 곳보다 50센트가 비싸도 아깝지 않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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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덧붙이는 글 | * 스페인 버스표 구입 사이트 | http://www.venta.avanzabus.com/compra/busqueda5.jsp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세고비아, #스페인, #수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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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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