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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흥기(80) 경로당 회장께서 전해내려오는 김유정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유정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 김유정 민흥기(80) 경로당 회장께서 전해내려오는 김유정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유정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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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봄비라도 내릴 듯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 지난 3월 16일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을 찾았다. 실레마을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아침 일찍 춘천행 기차를 탔다. 김유정역에 내리니 빗방울이 조금씩 내린다. 평일이라 그런지 몹시 한산하다.

<동백꽃><봄봄><봄과 따라지> 등 김유정은 봄이 배경인 많은 작품을 썼다. 이렇게 봄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심정과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봄날의 문선 김유정

김유정 선생은 봄을 좋아하고 누구보다도 봄을 기다렸으며 새봄이 시작되는 입춘무렵 이 땅에 찾아오셨다가 스물아홉해 생일이 지나 달포 뒤 실레마을에 동백꽃이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 떠나가셨으니, 진정 봄날에 왔다가 봄날에 떠나가신 '봄날의 문선'이라고 김유정 장학회장 유인순씨는 기록하고 있다.

생가 담밑에 서 있는 동백나무, 금세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동백꽃이 생강나무라는 이야기도 있다.
▲ 김유정 생가 담밑에 서 있는 동백나무, 금세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동백꽃이 생강나무라는 이야기도 있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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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터에 복원된 김유정의 생가 모습, 초가집이 한결 포근함을 주고 있다.
▲ 김유정 옛터에 복원된 김유정의 생가 모습, 초가집이 한결 포근함을 주고 있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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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울타리에는 동백꽃이 금세라도 노란꽃잎을 터트릴듯 부풀어 있다. 김유정이 동백꽃으로 표현한 나무가 생강나무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생강나무도 봄에 제일 먼저 노란 꽃잎을 터뜨려 봄소식을 전해 주는 봄의 전령사다. 금병산을 중심으로 동백나무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김유정 생가를 나와 김유정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실레마을을 둘러 보기로 했다. 마을 앞에는 금병산이 우뚝 솟아 있다. 금병산이 시루모양으로 마을을 둘로 싸고 있어 실레마을(증리)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오고 있다. 금병산은 해발 652.2미터의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산이다.

금병산 아래 실레마을 전체가 김유정의 작품 무대가 되었다. 금병산 중턱에 김유정 작품을 무대로 실레 이야기길(5.2키로 90분 소요)이 잘 조성돼 있다. 실레 이야기 길을 따라 걷는 동안 길 옆으로 잣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신갈나무 등과 이름모를 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실레 이야기길을 오르자 제일 먼저 만나는 길이 들병이가 넘어오던 눈웃음길이다. 김유정 소설에는 19홉살 들병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홍천에서 이 산길을 통해 마을에 들어왔다가 며칠 후 떠났다는 길이다.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도 있다. 19홉살 나그네가 병든 남편을 물레방앗간에 숨겨놓고 노총각 덕돌이와 위장결혼 했다가 도망간 길이다.

점순이가 수탉에게 싸움을 붙이고 있다. 오소리같이 살팍하게 생긴 놈이 우리수탉을 함부로 해내고 있다.
▲ 김유정 점순이가 수탉에게 싸움을 붙이고 있다. 오소리같이 살팍하게 생긴 놈이 우리수탉을 함부로 해내고 있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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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의숙을 지어 야학을 했던 자리, 느티나무가 당시를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 김유정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을 했던 자리, 느티나무가 당시를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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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어린 시절, 어땠나 들어보니...

이외에도 아기장수 전설길, 점순이가 나(남자)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건 신바람 길, 복만이가 계약서를 쓰고 아내를 팔아먹던 길, 등 이야기 열여섯 마당이 어떤 길은 산을 가파르게 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길은 평평하게 숲길로 이어지기도하며 재미있게 펼쳐저 있다.

실레마을에서 기억하고 있는 김유정은 어떤 모습일까. 수소문 끝에 민흥기(80) 경로당 회장을 만나 전해 내려오는 김유정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아버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김유정 아버님 김춘식은 참봉으로 101간의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자였다고 합니다. 청송 김씨 사이에서 2남 6녀로 태어난 김유정은 6살이던 해에 서울로 이사를 갔다가 1930년 다시 실레마을로 이사를 온 후 조카 김영수와 함께 움막집을 지어 야학을 했으나 소실되어 현재 이곳에(결로당이 있는 자리) 공회당을 짓고 농우회를 조직하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힘을 쓰셨다고 합니다. 공회당을 지을 때는 그분의 생가 앞에 큰 미류나무가 있었는데, 그걸로 공회당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김유정 생가 앞에 연못도 있고 개울도 있었고 그 아래 쪽에는 술을 파는 주막집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유정은 태권도도 하셨던 모양입니다. 시내 젊은 사람들이 주막에 와서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면 수가 아무리 많아도 때려눕혀 다시는 행패를 부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김유정은 불의에는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고 합니다. 김유정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점순이는 바로 친구의 누님이었습니다. 금따는 콩밭의 모델이 된 금광도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이처럼 그분의 소설 무대와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하고 있었습니다. "

금병산에서 바라본 실레마을 전경, 멀리 왼족에 김유정 생가가 보인다. 이곳이 김유정의 작품의 무대가 되었다.
▲ 김유정 금병산에서 바라본 실레마을 전경, 멀리 왼족에 김유정 생가가 보인다. 이곳이 김유정의 작품의 무대가 되었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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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실레 이야기길을 둘러보는 동안 실레마을에는  봄소식이 전해 지고 있지만 금병산 자락 깊은 골짜기에는 여기저기 겨울의 잔해 들이 남아 있었다. 골짜기 어름 사이로 녹아내리는 맑은 물이 퐁퐁 소리내며 흐르고 있어 산골에 봄을 재촉하는 듯하다. 동백꽃 나무도 꽃마을을 터뜨릴 것 같이 새순이 돋고 있었다.

김유정은 1908년 1월 11일(음력) 이곳 설레마을에서 테어나 1937년 3월 29일 폐결핵과 치질을 고치지 못하고 1935년 경기도 광주에 있는 누님댁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낙비>를 시작으로 <동백꽃><금따는 콩밭><봄봄>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태그:#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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