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월 29일부터 3월 3일까지 사가현 다케오, 오이타현 오쿠분고, 구마모토현 아마쿠사 이와지마,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등 4곳의 규슈올레 코스가 문을 열었다. 사진은 다케오 코스.
 지난 2월 29일부터 3월 3일까지 사가현 다케오, 오이타현 오쿠분고, 구마모토현 아마쿠사 이와지마,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등 4곳의 규슈올레 코스가 문을 열었다. 사진은 다케오 코스.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올레에서 중요한 건 생태관광(eco-tourism)보다 힐링(healing)이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자연경관'보다 '치유'를 더 강조한다. 제주올레 구상 단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 자연생태가 외부로부터 주어진 환경이라고 한다면, 치유는 그러한 조건을 활용해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켜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서 이사장이 입에 달고 사는 '올레 정신(spirit)'과도 일맥상통한다. 올레는 단순히 빼어난 자연경관을 즐기는데 머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걷고 느끼며 새롭게 거듭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다.

이러한 올레 철학은 '연대'에서도 드러난다. 제주올레는 다른 나라와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스위스 레만 호수 와인길, 영국 내셔널 트레일인 코츠월드 웨이, 캐나다 브루스 트레일 구간 등과 '우정의 길' 협약을 맺었다. 각자의 길을 존중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는 방식을 찾는다. 개방하되 강요하지 않으며, 서로의 장점이 상대방에게 스며들도록 천천히 기다려주는 느림의 미학은 국제 연대에도 녹아있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지난해 8월 체결한 일본 규슈(九州)올레와의 업무 제휴는 독특한 연대 방식이다. '올레'라는 이름을 쓰도록 허용했다. 업무 제휴비 100만 엔(약 1400만 원)이 건네졌고, 매년 계약이 갱신된다. 사실상 '올레' 브랜드를 수출하고, 노하우를 전수한 것이다.

지난 2월 29일부터 3월 3일까지 사가현 다케오 코스, 오이타현 오쿠분고 코스, 구마모토현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코스 등 4곳의 규슈올레가 문을 열었다. 업무 제휴 7개월만이다. 기획 단계부터 코스 선정 및 수정 작업, 개장 행사까지 제주올레가 함께 했다.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문화 수출에 가깝다. 규슈올레는 이런 친숙함 때문에 초기부터 한국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다케오 코스에 있는 수령 3000년 이상된 녹나무. 둘레 20m인 이 나무 안은 다다미 12장(6평)을 깔 수 있을만큼 넓은 공간이다. 일본 사람들은 파워 스팟(power spot)으로 좋은 기운을 받는 영험한 장소로 여긴다.
 다케오 코스에 있는 수령 3000년 이상된 녹나무. 둘레 20m인 이 나무 안은 다다미 12장(6평)을 깔 수 있을만큼 넓은 공간이다. 일본 사람들은 파워 스팟(power spot)으로 좋은 기운을 받는 영험한 장소로 여긴다.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일본 규슈 사가현 다케오 코스의 다케오(武雄)신사 옆 대나무 숲길. 이 부근에 수령 3000년 이상된, '지구의 안테나'라 불리는 녹나무가 있다.
 일본 규슈 사가현 다케오 코스의 다케오(武雄)신사 옆 대나무 숲길. 이 부근에 수령 3000년 이상된, '지구의 안테나'라 불리는 녹나무가 있다.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1] 일본이 제주올레에 '러브콜'을 보낸 까닭

1년 전인 지난해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발생했다. 후쿠시마에서 북규슈 후쿠오카까지는 약 1000km. 서울~후쿠시마의 거리만큼이나 떨어져 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같은 일본이라는 인식 탓에 잘 나가던 규슈 관광은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2010년 244만 명이었던 한국 관광객이 2011년 166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대지진 직후에는 규슈조차 한국 관광객이 사실상 '제로'였다.

대지진 직전만 해도 규슈는 조만간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날인 3월 12일에 일본철도공사(JR)의 규슈 신칸센이 개통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규슈 신칸센은 북규슈 후쿠오카와 남규슈 가고시마 서부를 종(縱)으로 연결하는 고속 철도다. 신칸센 개통은 규슈 관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또한 대지진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갔다.

규슈는 '반전 카드'가 필요했다. 새로운 관광객을 늘리는 일보다, 빠져나간 관광객의 발길을 되돌리는 일이 더욱 어려운 법이다. 2007년부터 건강과 여유를 생각하는 질 높은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로하스(LOHAS) 규슈' 사업을 벌여왔지만, 발상의 대전환이 요구됐다. 대지진의 여파가 진정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한 새로운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제주올레'였다. 생태관광을 넘어 치유여행으로, 제주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꾼 올레는 둘도 없는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규슈관광추진기구의 이유미씨는 "규슈는 올레가 만들어지기 전 제주처럼 2박3일이면 끝나는 여행으로 인식돼 왔다"며 "올레가 바꿔놓은 제주 관광의 변화를 보고 새로운 해법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점 찍고 이동하는 '빠른 여행'에서 벗어나, 선으로 움직이는 '느린 여행'이 주는 묘한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오이타(大分)현 오쿠분고 코스는 분고오노(豊後大野)시의 작고 소박한 무인 기차역인 JR 아사지(朝地)역에서 출발한다. 앙증맞은 노란색 두 칸짜리 기차가 이 역을 지나고 있다.
 오이타(大分)현 오쿠분고 코스는 분고오노(豊後大野)시의 작고 소박한 무인 기차역인 JR 아사지(朝地)역에서 출발한다. 앙증맞은 노란색 두 칸짜리 기차가 이 역을 지나고 있다.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오이타(大分)현 오쿠분고 코스의 오카 산성터(岡城跡). 유명한 작곡가였던 타키 렌타로의 노래 <황성의 달>이 오카 산성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이타(大分)현 오쿠분고 코스의 오카 산성터(岡城跡). 유명한 작곡가였던 타키 렌타로의 노래 <황성의 달>이 오카 산성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2] '올레의 역설', 편안한 관광에서 불편한 여행으로

"마을을 지날 때는 집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기 / 사유재산 촬영할 때 사전 동의 구하기 / 먹고 쓰다 남긴 쓰레기는 꼭 챙겨가기 / 과일 껍질 길가에 버리지 않기 / 농작물에 손대지 말기 / 길가의 꽃과 나뭇가지 꺽지 말기 / 가축과 야생동물 괴롭히지 말기 / 산 정상에서 소리치지 않기 / 간세 위에 올라타지 말기 / 정해진 길로 다니기 / 놀멍 쉬멍 여유롭게 즐기며 걷기 / 올레꾼과 주민에게 정다운 미소와 눈인사 건네기."

규슈올레 팸플릿에 쓰여진 '올레 에티켓'이다. 지켜야 할 일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많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10~20km의 길을 스스로 걸어야 한다. 안내자도 없다. 제주 조랑말을 상징하는 표식 '간세'와 '리본'이 유일한 가이드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눈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올레는 몸으로 하는 것이다. 이처럼 올레는 불편 투성이다. 그런데도 기꺼이 불편한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편한 관광을 밀어낸 불편한 여행 신드롬, 그게 '올레의 역설'이다.

지난달 28일 한·일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서명숙 이사장은 "규슈올레가 한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고도성장과 아스팔트 문화에 지친 일본인들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20여 년 동안 찌든 언론인 생활을 접고 떠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2007년 제주올레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길에서 얻었던 위안을 나누었다. 무엇보다 규슈올레에 전해주고 싶은 게 스스로 몸을 움직여 정신을 맑게 하는 '올레 정신'이었다.

규슈올레가 '안티 공구리'로 대변되는 제주올레의 길 철학을 처음부터 쉽게 이해한 건 아니었다. 다케오 코스는 걷기 편하게 하려다보니 정작 아스팔트 중심으로 길을 내 여러 차례 코스를 수정·보완했다. 다케오시 관광협회의 시라하마 사무국장은 "올레 정신을 살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는 제주올레쪽과의 논의 과정에서 시작점과 종점이 모두 바뀌었다.

정도 차만 있을 뿐 다른 코스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규슈올레는 다듬어졌다. 아스팔트 도로보다는 흙길이, 편안한 큰 길보다는 불편한 작은 길이 늘어났다. 대신 일상 생활에서 보고 듣지 못했던 자연과 지역문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차를 타고 가거나, 큰 길로 걸었을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규슈의 속살이 차츰 드러난 것이다. 이는 제주올레 탐사팀과 디자이너, 핵심 간부들이 번갈아 오가며 '잔소리에 가까운' 조언을 아끼지 않은 탓이다. 서 이사장이 "자연만 일본 것이지, 명칭과 시스템을 전부 수출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마모토(態本)현 아마쿠사(天草)·이와지마(維和島) 코스의 소또우라 해안가. 제주올레와 가장 닮은 코스로 평가받는다.
 구마모토(態本)현 아마쿠사(天草)·이와지마(維和島) 코스의 소또우라 해안가. 제주올레와 가장 닮은 코스로 평가받는다.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구마모토 현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의 소또우라 해안가.
 구마모토 현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의 소또우라 해안가.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3] 규슈올레를 만든 수봉이들, 여행의 개념을 바꾸다

제주올레 7코스 시작점인 외돌개에서 3.9km 걸어가면 '수봉로'가 나온다. 이 길은 올레꾼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이다. 수봉로는 세번째 코스 개척 시기인 2007년 12월, 올레지기인 김수봉씨가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만든 길이다. 이런 까닭에 '수봉이'는 올레꾼들 사이에서 제주올레만큼이나 유명해졌다. 이름 자체가 '헌신적인 올레지기'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규슈올레 각 코스에도 그런 '수봉이'들의 땀과 노력이 배어있다. 서명숙 이사장은 규슈올레 4개 코스 개장 축하 만찬 행사장에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해당 코스 '수봉이'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런 수봉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규슈올레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서 이사장의 생각이다. 규슈관광추진기구 해외유치추진부의 모치마스 차장과 이유미씨가 규슈올레 전체 기획·진행의 수봉이였다면, 아래 소개하는 사람들은 직접 길을 냈던 각 코스의 수봉이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이렇게 많은 '보물'이 있었다는 게 새로운 발견이어서 감동했다." 다케오 코스의 '수봉이'인 미조카미 마사카츠(56·다케오시 관광과)씨는 맨 처음 올레 길을 교사인 아내와 함께 걸었다. 규슈관광추진기구나 제주올레 팀에게 선 보이기 전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다. 다케오 코스가 만들어지면서, 그동안 사람 통행이 없었던 산악유보도와 시라이와운동 공원 뒷길 등이 새로 태어났다. 이케노우치 호수 뒷편 산길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돼 나뭇가지로 거미줄을 헤치며 탐사했다. 그는 상급자 코스만 10차례 이상 오갔다. '올레 시장'이 되고 싶다는 다케오 시장의 격려도 미조카미씨에게 큰 힘이 됐다.

"느리게 걷는 것, 순수하게 감동하는 것, 평화로운 마음이 되는 것." 오쿠분고 코스의 '수봉이'인 나오야마 타카시(48·오이타현 관광과)씨가 꼽은 '올레 정신'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제주올레와 규슈관광추진기구의 업무 제휴 협약식에 자비로 참가할 정도로 초기부터 관심이 많았다. 지리학과 출신인 나오야마씨는 올레 길을 내면서 20여 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찾은 길도 있었다. 또다른 오쿠분고 수봉이인 나가요시 토시미츠(53·분고오노시 관광협회)씨는 "일본도 대부분 포장 도로여서 자연의 흙길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그는 올레 길이 무엇보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산과 바다가 만나고, 정상에서 다도해 풍광을 볼 수 있어 제주올레 팀이 가장 제주올레다운 길이라고 평가했던 게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다. 처음에는 접근성이 불편해 규슈관광추진기구에서 난색을 표했던 곳이기도 하다. 코스도 아마쿠사시가 처음 제안했던 섬에서 다른 섬으로 바뀌었다. 이 곳의 '수봉이'인 스기모토 겐이치(39·아마쿠사시로 관광협회)는 무엇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과 주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코스가 만들어진 게 기뻤다. 또다른 '수봉이'인 니시가마 유우야(가미아마쿠사시 관광과)씨는 개장 행사가 열린 다음날이 결혼식이었는데도, 결혼 준비보다는 올레 길 개장 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런 탓에 결혼 준비를 걱정하는 여자친구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그는 이 올레 길이 아마쿠사풍 여행의 상징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걷고 싶었던 길을 올레 코스에 넣을 수 없어, 또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 가장 어려웠다." 이부스키 코스의 '수봉이'인 하마다 케이시(32·가고시마현 관광과)씨는 규슈올레 수봉이들 가운데 가장 어리다. 제주올레를 체험한 탓에 올레에 대한 이해가 빨랐다. 하마다씨는 주말도 반납하며 길을 찾고,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며 발로 뛰어다녔다. 또다른 '수봉이'인 츠루타 시게타카(이부스키시 관광과)씨는 "올레꾼들이 가이몬다케나 나가사키바나 같은 이부스키의 풍요로운 자연을 맛봤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츠마의 후지산'으로 불리는 가이몬다케(해발 922m)는 신기하게도 이부스키 올레 길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나가사키바나는 한국의 땅끝마을처럼 규슈 최남단에 위치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가고시마(鹿兒島)현의 이부스키(指宿) 코스. 나가사키바나의 검은색모래 해변이 일품이다.
 가고시마(鹿兒島)현의 이부스키(指宿) 코스. 나가사키바나의 검은색모래 해변이 일품이다.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가고시마현의 이부스키 코스는 JR 최남단 역인 니시오야마(西大山)에서 출발한다. 이른 봄에 노란 유채꽃이 만발했다.
 가고시마현의 이부스키 코스는 JR 최남단 역인 니시오야마(西大山)에서 출발한다. 이른 봄에 노란 유채꽃이 만발했다.
ⓒ 이한구

관련사진보기


[#4] 제주올레가 바꾼 여행 지도, 규슈올레도 가능할까

"아마쿠사 시에서 2만5000명을 데리고 제주올레에 가겠습니다. 그러면 답례로 제주올레에서는 25만명을 아마쿠사로 보내주세요."

지난 3월 1일 제주올레팀, 한국 취재진과의 만찬 자리에서 가와바타 유유기(40) 가미아마쿠사 시장이 던진 말에 웃음보가 터졌다. 혈기방장한 젊은 시장의 과장된 말이지만, 뼈 있는 농담이었다. 이틀 전, 한일 공동 기자회견장에서는 '올레라는 명칭에 대한 일본 내 반감은 없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규슈관광추진기구의 오오에 히데오 본부장은 "올레는 브랜드 가치가 충분하고 한국 관광객들도 (규슈올레를 보면) 제주올레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인들은 외래어를 잘 쓰는 게 특기"라고 받아 넘겼다.

이처럼 규슈올레 길을 낸 4개 코스의 지자체 관계자와 관광협회 임원들은 모두, '올레'가 침체된 규슈 관광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특히나 제주올레에 익숙한 한국 여행객들이 규슈올레에 찾아와주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규슈를 찾는 외국 관광객 가운데 한국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체된 규슈 관광의 터닝포인트를 한국에서 찾으려고 노력중이다.

이런 절박함이 규슈올레를 만든 동력이 됐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한국 관광객들에게만 잘 보이려고 하면, 자칫 규슈올레가 제주올레의 형식만 본뜬 유사품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서명숙 이사장이 "외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친 일본인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며 "도쿄나 교토에 사는 사람들이 세컨드 라이프를 규슈에서 보내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레의 정신과 가치는 공유하되, 규슈올레만의 색깔과 매력을 가꿔나가야 한다는 게 제주올레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제주올레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각 코스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한두 코스만 더 개발되면, 섬 전체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완결된 '통 올레'가 완성된다. 땅 크기가 남한의 절반 가량되는 규슈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코스 시·종점에는 걷기 여행의 피로를 풀어줄 온천들이 많다는 건 규슈올레의 매력 포인트다. 그리고 수령 3000년 이상된 녹나무, 아마쿠사시로 같은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의 스토리텔링은 규슈올레 여행에 활력소를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서명숙 이사장은 "올레 길에는 좌우가 없다"고 했지만, 올레 길에는 국경도 없었다. 그렇기에 제주올레가 규슈올레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는 '길의 연대'이자 '길의 진화'다. 올레지기가 만들고, 올레꾼들이 걷는 올레 길은 아날로그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대의 '집단지성'이 녹아 있다. 끊임없이 수정·보완되고, 매일 걸어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올레 폐인들은 '아름다운 중독'에 빠진다고 고백한다. 규슈올레는 이미 그 늪에 빠졌다.


태그:#규슈올레, #제주올레, #규슈관광추진기구, #수봉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