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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동네서 방귀깨나 뀌며 사는 지인의 고희연을 다녀왔다. 직업이 사진사이니 사진을 의뢰받아 돈도 벌고 어르신께 인사도 드리고, 꿩 먹고 알 먹고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한 셈이다.

내가 이 친구를 '방귀깨나 뀌며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어려운 사람을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와주는 친구다. 이 친구만 지나가면 동네 개들도 반갑다고 여기저기서 왈왈거리니 말은 해 무엇 하랴. 잠깐 작년 가을에 있었던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아버님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 . 아버님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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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고희연 잔치의 사진을 의뢰받아 촬영을 갔는데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는 몰라도 뷔페의 연회석을 600석이나 예약해 놓았다. 1개 층을 다 사용한다는 얘기다. 사진사인 나는 잔치 30분 전에 미리 가서 대기하는데 행사 시작 한 시간이 넘어도 손님이 60명이 안 됐다. 어르신들 술에 취하면 사진을 못 찍으니 가족사진은 미리 찍어놓은 상태고 비디오 기사와 나는 헌수(부모님께 술 한 잔 올리는 것)로 시작하는 행사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한 시간이 지나고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이 80명을 넘지 않았다. 어르신과 자식 6남매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나마 일찍 온 손님들은 벌써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오기 싫은 거 억지로 왔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뷔페 연회장의 특성상 600명을 예약했으면 손님이 100명이와도 600명분의 음식 값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집의 경우 돈도 문제지만 자존심이 상했고 체면이 상했다. 결국 잔치는 '형이 잘 못했니 아우가 잘 못했니', 형제들 간 싸움질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흥겨워야 될 잔치가 싸움으로 끝났으니 사진 찍을 일도 없어 넉살좋게 밥이나 먹자며 손님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는데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 집 사정을 알겠다.

잔치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 둘이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하는데 서로 안면이 있는 시장 상인들의 경조사에는 한 번도 참석을 안 하면서 자신의 집안 경조사에는 시장 안의 지게를 지는 짐꾼에게까지 청첩을 돌린다는 얘기였다.

그리고는 시장 상인회의 간부라는 이유로 청첩을 받은 사람은 모두 참석할거라 철석같이 믿으며 얼토당토 않게 청첩장이 나간 수만큼 600석을 예약을 다 했단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지 어찌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려는가." 그나마 사업관계로 연결되어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손님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헌수
▲ . 헌수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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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석을 꽉 메운 하객들. 잔치가 끝날 때까지 모두 함께 했다.
▲ . 600석을 꽉 메운 하객들. 잔치가 끝날 때까지 모두 함께 했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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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있었던 잔치의 주인공인 어르신이나 그 자제들이 세상 참으로 아름답게 살았다고 생각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잔치 시작 30분 전부터 손님들이 밀려오기 시작하는데 손님들을 맞는 어르신과 자제분들의 겸손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예약을 해놓은 400석으로 모자라 연회장 측에서는 부랴부랴 자리를 마련하느라고 부산했고 음식이 모자라 주방 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잔치를 주관하는 큰아들은 연회장 지배인과 주방장에게 일부러 찾아가  "이렇게 손님이 많이 오실 줄 몰랐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숙인다.

보통 잔치가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나면 손님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하는데 늦은 밤 10시까지 처음 온 손님 그대로 다 함께 음주와 가무를 즐기며 어르신의 칠순을 축하해 주었다. 사진관 20년 만에 처음 보는 일이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 역시 혀를 내두르며 도대체 큰아들이 어떤 사람이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같은 동네 사는 분인데 동네에서 조금 어렵다 싶은 사람은 저 양반에게 쌀 한가마니 안 얻어먹은 사람이 없다"는 나의 설명에 사회자도 더욱 신이 나서 흥을 돋운다. 그야말로 신명나는 잔치다운 잔치였다.

사회자가 더 신이나서 난리다.
▲ . 사회자가 더 신이나서 난리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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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인 나도 덩실덩실
▲ . 사진사인 나도 덩실덩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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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세상을 제대로 살았는가는 경조사 같은 큰일을 치를 때 보면 안다"는 예전의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어제의 잔치를 보면서 손님이 많고 적고를 떠나 손님들이 잔치에 오시어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고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며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게 바로 이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잔치집의 어르신이나 자제들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조차 뭔지도 모르고 찾아 온 손님들 중 동네 어려운 분께는 차비까지 손에 쥐여 주고 돌려보내니 진실로, 진실로 세상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다. 나 역시 오랜만에 흥에 겨운 잔치를 즐기며 사진을 찍었다.


태그:#고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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