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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 (혼배미사)
▲ . 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 (혼배미사)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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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촬영하는 웨딩포토가 대만에서 건너온 지 20년은 되었나 보다. 그때만 해도 웨딩포토는 연예인 또는 강남의 몇몇 부자들이나 촬영을 했었다. 나는 그때 음성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투잡으로 일요일이면 모 방송국의 선배 주선으로 웨딩촬영을 했었다.

20년 전 월급이 150만 원. 웨딩촬영 한 번 하면 200만 원이었으니, 웨딩촬영을 주선해 준 드레스 삽에 20%를 떼어주고도 원가를 제하면 140만 원 이상이 남았다. 150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매주 140만 원씩 한 달이면 최소한 400만 원 이상의 부수입이 있으니, 회사 사장이 뭐라고 해도 이사가 뭐라고 해도 잘못된 지시가 내려오면 따지기 일쑤였다.

남들은 회사에 손해가 나는 일이라도 사장과 이사 말이면 아무말 못 하고 일을 진행하는데,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장감 떨어지는 사장을 설득시켜서 올바른 방향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런 이유로 회사 이사나 공장장도 어쩔 수 없이 내 눈치를 보곤 했었다. 나의 이런 자신감은 웨딩촬영이라는 부수입에서 나왔다.

"쫓아내려면 쫓아내라! 내가 여기 아니면 밥 못 먹고 사는 줄 아느냐?"

몇 년 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사진관을 개업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고부터 사양 산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예전에 모아 놓은 돈까지 다 까먹고 이제는 사진관까지 내놓는 사태에 이르렀다.

지난주에 실로 오랜만에 웨딩사진 의뢰가 들어왔다. 문제는 요즘 웨딩포토라는 게 어떤 스튜디오에서 찍던지 신랑·신부 얼굴만 달랐지 포즈며, 소품 그리고 배경까지 대부분 비슷하다. 따라서 손님들에게 내놓는 이 앨범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가는 집마다 똑같은 포즈에 비슷한 배경의 사진을 내놓으니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근사하다' 속에 없는 말로 칭찬은 해야겠는데, 그만큼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사진이라는 게 핀트가 덜 맞아도, 노출이 부족해도, 내 가족 내 자식 사진이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지만, 타인의 사진은 그렇지를 못하다. 더구나 결혼식 사진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별다를 게 없는 사진이기에 더욱 지루할 수밖에 없다. 웨딩촬영을 의뢰한 신랑·신부를 데리고 동네 근사한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식사하면서 신랑·신부에게 위의 사정을 얘기하고 나의 사진촬영 스타일을 설명했다.

결혼식 전에 한 컷
▲ . 결혼식 전에 한 컷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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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은 흔들린 사진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신랑·신부만을 위주로 찍지 않습니다. 신랑 ·신부가 주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결혼식 자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보고 또 그렇게 편집을 할 것입니다. 또한 가족사진이나 기타 단체 사진처럼 틀에 박힌 사진을 저는 좋아하지도 중요하게도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결혼 앨범을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꾸밀 자신은 있습니다. 40여 장의 사진이 들어가는 앨범 속에 두 분의 결혼식을, 두 분 만의 멋진 연애가 결실을 맺는 연애소설을 쓴다는 심정으로 촬영하고 편집을 할 겁니다. 이래도 저에게 촬영을 맡기시겠습니까?"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장님을 찾았고 촬영을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신부님의 축복과 축하 메시지.
▲ . 신부님의 축복과 축하 메시지.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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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신랑·신부가 앨범을 받아보고는 사진에 만족하며 돌아갔다. 친구들이 집들이를 와서 신랑·신부 웨딩앨범을 보며 자기들이 주제가 된 신혼부부의 앨범을 보고 흥겨워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 눈에 선하다.

다만 예식장에서 분위기를 살린다고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아 흔들린 사진 몇 장이 앨범 속에 포함되었는데, 신부가 보더니 오히려 흔들린 사진이 더 재미있단다. 모르기는 해도 사진이 마음에 들기보다는 앨범 속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참으로 오랜만에 즐겁게 촬영을 했고, 신랑·신부와 죽이 맞았던 웨딩촬영이었다.


태그:#웨딩앨범,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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