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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보다 열 살 어린, 아내와 함께 가끔 계를 하기도 하는데 나에게도 "형부, 형부!" 하며 살갑게 구는 예쁘장한 아줌마가 있다. 아내 덕분에 별 시답잖은 처제하나가 생긴 셈이다. 엊저녁 퇴근길에 시장 골목을 들어서는데 족발집이 시끄럽기에 들여다보니 친구들은 아내와 깔깔 웃느라 정신없고 처제(?)는 우느라 정신이 없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어 들어갔더니 처제가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단다. 위로는 못해줄 망정 왜 웃고 난리냐고 했더니 처제가 강아지 제사를 지내준단다.

 

세상에! 술 한 잔 털어 넣고 족발을 뜯다가 그 소리를 듣고는 사래가 들려 강아지와 함께 나도 초상을 치를 뻔했는데 처제 하는 말을 듣고는 그예 까무러치고 말았다. 울다가 웃다가 눈에 덕지덕지 바른 마스카라가 번진 얼굴로 하는 말이 벌써 사과 배 곶감도 사다놓았고,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청주도 한 병 사다 놓았단다. 이거 참, 웃어 말어? 아무튼 처제의 하는 짓을 보며 다들 반은 정신이 나갔는데 처제에게 물었다.

 

"어이! 아무리 강아지 제사라지만 지내려면 제대로 지내고 말면 말고."

"어떻게 하라고요? 집에서는 다 어른들이 알아서 하니까 나는 모르지."

"집에서 제사지낼 때 축문 읽어 안 읽어? 읽지?"

"당연하지요."

"지방은 강아지 사진으로 대신하고 축문은 형부가 써 줄 테니 정성껏 제사 지내라우."

"알았으니까 얼른 써주기나 해요."

"제사는 자정에 지내는 거 알지?"

"어머머! 꼭 자정에 지내야 돼?"

"당연하지."

 

維 歲次 檀紀 4345년 3월 3일 孝子춘자, 敢昭告于 顯考 學生府君

歲序遷易 諱日復臨 追遠感時 昊天罔極 謹以淸酌 庶羞恭伸 奠獻 尙 饗

 

유 세차  단기 4345년 3월 3일 효자 춘자 감소고우 현고 학생부군

세서천역 휘일부림 추원감시 호천망극 근이청작 서수공신 전헌 상 향

 

축문을 써주기는 써줬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강아지 축문은 난생처음이다 보니 써준다는 게 그만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 지낼 때 쓰는 축문을 써주고 말았다. 처제가 축문의 내용이 무어냐고 묻기에 죽은 강아지를 애도하며 명복을 비는 근사한 시라고 했더니, 또 목을 놓아 펑펑 운다. 옆에 앉은 친구들이 처제가 내 말은 잘 들으니 그러지 말고 처제 좀 위로해주라고 하기에 근사한 말로 위로를 해주었다. 알아 들었는지 어쩌는지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라만 왠지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있다.

 

발톱 무좀약이 간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듯이 어느 한 곳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약이라도 크든 작든 부작용은 있다. 그러기에 면목동의 모병원에서는 의사가 처방을 하기 전에 위장이 안 좋은지 미리 묻기도 하고, 특히 발톱손톱 무좀약을 처방할 때 간 검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을 줄 알면서도 무시를 하고 처방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부작용으로 생기는 병이 현재 겪고 있는 병의 고통에 비하면 견딜 만하고 나중에라도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인 경우에 그렇다. 중병을 앓는 환자의 고통은 이렇게 아픔의 강도를 줄여나가며 치료를 하는 것이다.

 

이별에 대처하는 마음의 상처 역시 마찬가지다. 가슴에 천공이 날 정도의 커다란 상처도 비록 몸서리 쳐지는 후회와 회한이라는 부작용은 있지만 마음의 상처를 발효시켜 만든 그리움이라는 약으로 치료를 한다. 아픔이 발효가 되어 그리움으로 변하고 그리움이 발효가 되어 추억으로 변해가듯 차츰차츰 부작용과 고통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상처가 나은 뒤에라도 흉터가 덜 남는다. 처제의 강아지를 잃은 슬픔도 울고불고 해봐야 당장 뾰족한 수가 없으니 그저 삭이고 삭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찐빵 반죽 아랫목에 이불 덮어놓고 하룻저녁 발효시키듯, 그저 세월이 약이니 견디시라. 아시겠는가?


태그:#강아지제사, #축문, #면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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