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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밤중의 대학 유흥가 앞에서 매우 특이한 광경을 보았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의 특성상 흥청거림이 있고, 술과 음식으로 골목마다 음식 찌꺼기가 넘쳐 나는 그 골목 가로등 밑으로 잘 차려입은 한 분의 신사께서 납시는 것이 아닌가! 온통 검은 정장에 말쑥한 모양새, 그리고 얼굴에는 제법 부티 나게 살이 투실투실 찐 그는 아마도 부하 수십 명은 거느린 오너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눈에는 굉장한 카리스마를 내비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쳐도 못 본 척 쓰윽 자신의 길을 가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하나! 그는 근래의 멋쟁이들에게는 보기 드문 흰 장화를 신고 있었단 것이다. 누구냐고? 장화 신은 검은 고양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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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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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특별하게 여겨진다. 얼룩무늬, 점박이, 때론 온통 몸이 검은 고양이까지 그들 각자의 의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중 검은 고양이가 가장 패셔니스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아무리 검은 고양이라고 한들 몸 어딘가에 잘 살펴보면 분명 반점 같은 흰점이 있거나 정 아니면 네 발만이라도 흰 털이 나 있기도 한데, 아주 드물게 너무나 완벽한 검은 고양이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윤기 좌르르한 그 털빛은 우아와 숭배의 저 꼭대기에서 말할 수 없는 경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검은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지, 놈들을 만나면 조금은 움칫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하여간 어디서건 고양이를 만나면 녀석들이 꼭 사람인 듯이 보일 때도 있고, 고놈들을 통해서 인간이란 동물을 재조명해보는 새로운 기분도 맞이하게 되는 바, 그건 고양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 혹은 추억이 작용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에 집에서 동생이 친구에게 얻어 온 그 고양이를 우리는 실내에서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난생 처음 동물을 기른 탓에 녀석의 습성도 알지 못한 채로 쓰다듬고 한시도 놓은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양이는 그런 애정표현을 너무나 귀찮아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개와 다르게 고양이는 인간에게 복종하는 동물도 아니고, 상하관계를 엄격하게 구분 짓지도 않아 사람을 그저 친구쯤으로나 여긴단 걸 모른 채 고양이 훈련도 시켜보곤 했다. 그럴 때면 녀석은 '이 인간들 참으로 난감하군' 하며 가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양이님" 외치며 그를 모시는 당신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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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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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녀석은 먹이를 얻기 위해 재롱을 떨거나 아양을 부릴 줄을 몰랐다. 그저 쓰다듬고 귀여워하는 것을 귀찮게 여길 뿐만 아니라 한편으론 사람이 모든 것을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수고로움을 극히 기다리는 듯도 했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자칭 '집사'라고 칭하며 고양이님을 극진히 수발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딱 그 표현이 맞는 상황이었다. 도도하게 창밖을 응시하거나 때론 허공을 향해 뚫어져라 시선을 집중하며 사색에 잠길 뿐 사람 곁에 다가와서 칭얼대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놈에게 사랑을 구걸하며 받들어 모시기만 했을 뿐.

게다가 이따금 녀석은 낯선 사람이 오면 극도로 예민해졌다. 바짝 긴장한 채로 몸을 부풀리며 몸을 실제보다 크게 보이려고 했다. 반대로 그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 싶으면 실제 자신의 몸보다 작게 보이려고 애쓰며 '난, 댁하고 비교도 안 돼요. 그러니 살려줘요' 하는 뜻이겠거니 싶은 태도로 일관했다.

도도한 고양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면 참으로 헛웃음이 나오곤 했고, 그것이 고양이만의 생존 방식은 아님도 알게 되었다. 뭐, 살다보면 인간 사회에도 이런 사람은 흔히 볼 수 있어서, 강한 자에게는 끝없이 비굴하게 아부하고 약한 자에게는 오히려 기세등등해서 기어오르려 드는 인간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또 한편으론 기분이 좋을 때 놈의 아양은 하늘을 찌른다.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비벼댄다든지, 자신의 이마를 사람 몸에다 누르며 비벼대는 몸짓을 하며 엄마 고양이에게 먹이를 달라고 하거나 보살펴 달라고 할 때와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왔을 때 놈은 내 발소리를 알아듣고 '오옹' 하며 쏜살같이 달려와선 '골골' 소리를 내며 같이 놀자고 얼마나 어리광을 부렸는지…. 이렇게 드물게 애정 표현을 하기에 그 기쁨은 배가 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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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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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체 하면서도 한편으로 영악하게 시류에 편승해서 자신의 처세술로도 삼고, 때로 드물게 주인에게 애정 공세도 퍼붓는 고양이. 놈들의 또 다른 매력을 들라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남다른 감각센서를 언급치 않을 수가 없다.

고요한 물웅덩이 같은 그의 내면에는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가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건 동물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제6감'이란 것이다. 이것에 의해 동물은 상대방이 자신을 대할 때 적의나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민감하게 판단한다고 한다.

사람 중에도 유달리 육감이 발달해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상대의 목소리나 행동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가 있고 그건 예외 없이 들어맞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개나 고양이들은 특히나 육감이 발달해 있기에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정확히 알아맞히고 그에 맞게 상대를 대하는 것이 특징이고, 특히나 고양이의 경우는 그런 능력이 더욱 발달해 있단 것이다.

그러고 보면 놈들이 잔머리가 보통 좋은 것들이 아니다. 한편으론 귀엽고 한편으론 희한한 것들, 요놈들 덕에 인간세계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태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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