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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씨, 이름만 듣고 당연히 여성이라고 생각한 것은 편견이었다. 서른 두 살의 건실한 청년사업가 황선영씨는 온라인에서 '선영군'으로 더 유명하다. 이름에서 오는 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붙인 접미사라는데, 그는 자신을 '친절한 선영군'이라고 칭하고 그가 운영하는 쇼핑몰에도 그렇게 소개해 놓았다. 자타가 인정하는 친절한 선영군과의 만남은 삶의 가치 기준에 대해 생각케 하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캐릭터도장을 비롯해 무엇인가 찍는 스탬프와 관련, 국내 선두를 달리고 있는 쇼핑몰업체 '스탬프 쿡(stampcook.com)'의 대표가 예산 사람이고, 회사도 예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은 충남 예산군 예산읍 창소리 쪽파시설재배단지로 유명한 비닐하우스 마을 가운데에 있었다.

 

사인(sign)이 보편되면서 사라져가는 도장을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해 성공한 아이디어맨의 쇼핑몰 업체가 쪽파재배로 유명한 농촌마을에 있다니, 이색풍경이다.

 

선영씨는 첫 만남부터 남다른 사업가적 마인드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스탬프를 즉석에서 찍어 명함을 건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리고, 디자인 스탬프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하니 그 자체가 홍보다.

 

그리고 '친절한 선영군'이라는 별칭의 유래를 짐작게 하는 명랑한 말투, 인터뷰 사이사이 고객에게 걸려오는 전화 응대 목소리는 한 옥타브 더 높아 노래하듯 했다. 그런데 그것이 '사업적 수완'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채 안 돼 알 수 있었다.

 

환경공학도, 디자인 도장으로 창업하다

 

정감 어린 캐릭터와 제품들을 개발해 예쁜 도장 사업으로 성공한 선영씨는 전공이 환경공학이다. 의외다. 신례원초, 예산중, 예산고를 졸업한 뒤 고려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그가 이 일을 하게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자신도. 어릴 적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군대에서부터다.

 

"제 보직이 환경기사 관리병이었는데, 시간이 꽤 많았어요. 그래서 나무도장을 파 동료에게 선물했더니,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창업의 꿈을 키우게 됐지요"

 

2004년 8월 제대한 그는 한 달 뒤, 복학과 동시에 바로 창업을 했다. 제품 이름을 비롯해 모든 준비는 이미 제대 전에 끝내 놓은 터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창업 관련 강연을 할 때면 "준비가 길어야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사업의 제1원칙은 '사람을 남기자'

 

사인보다 도장을 찍는 행위가 훨씬 아날로그적이어서 사람들의 감성을 일깨울 것이라는, 제품 개발만 잘하면 이름을 새겨 기념하는 도장 선물이 전망 있는 사업이 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홍대 앞 프리마켓에 참여하고 '선영군'의 사업이 제법 알려질 무렵, 사업 활성화의 큰 계기가 찾아왔다. 2007년 한 방송에 잠깐 출연한 것이 홍보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주문이 쇄도했고, 경쟁업체도 속속 등장했다. 여러 동종업체가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스탬프쿡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선영씨는 창업이래 지금까지 1년에 두 세 개의 신제품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다. 소비자 취향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채워주면서도 그 가짓수가 넘치지 않도록 조절한다.

 

스탬프 쿡에서 제작하는 모든 제품에 새겨진 캐릭터는 모두 그가 직접 그린 것들이다. 쇼핑몰 사이트도 모두 스스로 만든다. 사업성을 위해 기계화하면서도 독창성을 잃지 않는 아이디어들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그는 소비자와 친구 같은 관계를 꿈꾼다. 돈을 받고 물건을 건네는 거래관계를 넘어 기쁨을 배가시킬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A/S 요청이나 클레임에 대처하는 원칙도 당장 이익이 아니라 '사람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돈을 벌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된다. 새 제품 개발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를 새 기운으로 들뜨게 하고, 소비자와의 관계맺기는 사람과 만나는 기쁨이 된다.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을 하면서도 그가 즐거울 수 있는 이유다.

 

굳이 서울에서 살 이유 있나요?

 

그가 고향인 예산으로 돌아온 지는 올해로 3년이 됐다. 사업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2009년의 일이다. 그러고 보니 창업에 성공했음에도 연관없는 전공공부를 끝까지 놓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습니다. 저도 굳이 대학을 마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대학에서 만난 지인들로부터 배운 게 많습니다. 어떤 만남이든 배울 것이 있고 그 과정이 의미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서른 갓 넘긴 젊은이의 속 깊은 답변에 놀라운 마음을 진정하기도 전, 귀향의 이유에 대한 설명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졸업 뒤, 그가 홍대 쪽에 있던 공방을 정리하고 예산으로 오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많았다. 이른바 일류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이름있는 기업에 취업하기를 지금도 바라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모두 떠나려 하는 시골로 내려온다는 게 탐탁지 않았던 것. 그런데도 그는 끝내 부모님 집에 작업실을 차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데, 작업실이 굳이 서울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교통이 편리해져 일이 있으면 언제든 갈 수 있고…. 무엇보다 결혼하면 분가해 살 테니 부모님과 함께 지낼 시간이 없잖아요. 젊으실 때 조금이라도 더 함께 생활하고 싶었어요"

 

귀향이 준 선물, 그리고 그의 꿈

 

귀향은 그에게 기대 이상의 선물을 줬다. 규칙적인 식사와 생활로 더 좋아진 건강,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느끼는 행복, 친구들과 지역 선후배들과의 만남. 대기업의 직원 연봉보다 훨씬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성공한 청년사업가가 '금의환향'을 했는데도 사람들은 아직 그 진가를 알지 못한다. 삶의 질이야 어떻든 대도시에서 직장인이 되어야 성공으로 여기는 구시대적 기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 청년은 어찌 이리 이른 나이에 터득할 수 있었을까?

 

다과를 내온 그의 어머니가 말한다.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참 많이 도왔어요. 자연에서 노는 것도 좋아하고"

 

작업실에 있는 목화솜 모빌, 원목으로 짠 작업대, 편히 누워 쉴 수 있게 한 침대, 나무 대문, 물레방아 모두 그가 직접 만든 작품들이란다. 봄이 오면 앞뜰에 원두막을 짓고 싶다는 선영씨. 디자인 문구 전문쇼핑몰에서 늘 상위에 랭킹 되고, 오픈마켓 오늘의 베스트에 오르는 동종업계 1위를 위지하는 청년사업가의 성공마인드, 그 뿌리에는 농촌과 자연, 노동의 기쁨에 대한 경험이 깃들어 있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사업을 확장하고 싶진 않아요. 제 꿈이 가까운 사람들과 행복하고 평범하게 사는 건데, 돈을 더 벌자고 욕심내면 이 평범한 행복이 깨지지 않겠어요? 다만 언젠가 종합공방을 만들고 싶어요. 한켠에서는 빵을 굽고, 한켠에서는 나무공예, 스탬프 만들기같은 수공을 하는"

 

서울로만 불려다니지 말고 스탬프체험, 창업특강 같은 시간을 지역에서도 나눌 생각이 없냐는 말에 선영씨는 예의 명랑한 톤으로 망설임 없이 답한다.

 

"당연히 그래야죠. 우리지역인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 예산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캐릭터도장, #스탬프 쿡, #청년창업, #황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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