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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이 울리고 요동하도록 떠들썩했으나 나타난 것은 생쥐 한 마리뿐(泰山鳴動 鼠一匹)이라고 했던가. 어제(6일) '관계부처합동' 그러니까 사실상 정부에서 내놓은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아래 학교폭력대책)'이 꼭 그러하다. 일을 떠벌린 데 비하여 쓸 만한 내용이 없으니 말이다.

 

대구에서 일어난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비롯된 학교폭력 논란과 관련해 온 나라 산천초목이 들썩였던 것에 비한다면 대책치고는 참으로 옹색하기 짝이 없다. 학교폭력에 대한 '종합'도 아니고 '대책'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부처' 장관들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국무총리가 TV 카메라 앞에 서서 "앞으로 학교폭력을 좌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문까지 읽는 장면은 실소를 머금게 하는 퍼포먼스의 절정이었다.

 

'관계부처합동'으로 내놓은 '학교폭력근절 7대 실천'의 내용을 살펴보면 ▲ 학교장과 교사의 역할 및 책임 강화 ▲ 신고-조사체계 개선 및 가·피해 학생에 대한 조치 강화 ▲ 또래활동 등 예방교육 확대 ▲ 학부모교육 확대 및 학부모의 책무성 강화 ▲ 교육 전반에 걸친 인성교육 실천 ▲ 가정과 사회의 역할 강화 ▲ 게임·인터넷 중독 등 유해 요인 대책 등이다. 새로울 것도 없고 실효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들이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훑어보기로 하자.

 

반성은 했으나 거기서 끝

 

우선 이번 학교폭력대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학교폭력 관련 기존 대책 및 제도의 한계'를 짚으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당국은 학교폭력의 "가장 근본적인 대책인 학생들의 배려·공감·협동심을 키우는 실천중심의 인성교육에 대한 정책 추진이 미흡"했고, "성적 중심의 입시 위주 교육으로 핵심 가치인 '인성'교육에 소홀했다"라는 진단을 내렸다. 성적·입시 위주의 경쟁 만능 교육이라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이 학생들의 인성을 제대로 가꾸지 못 하게 했고 이것이 학교폭력과 연결된다고 확인한 것이다.

 

너무 늦은 감이 크지만 지극하고 통렬한 자기반성이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반성은 여기에서 끝나고 문제는 또 꼬이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 상황을 인식했다면 "성적·입시 위주의 교육"을 중단하고 경쟁만능이 아닌 "학생들의 배려·공감·협동심을 키우는 실천중심의 인성교육"을 하겠다는 말과 대책이 나와야 할 텐데 그런 것은 쏙 빠졌다. 오히려 실효성 없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학교폭력대책의 자료들을 상급 학교 진학이나 입학사정관 등의 대입 자료로 쓸 수 있도록 연결 짓고 말았다. 그래야 학교폭력대책의 실효성이 생긴다는 게 교과부의 논리라고 한다(교과부의 '실효성' 논리대로 하자면 초중고 재학 기간 동안 학교폭력에 연루되지 않으면 특목고와 서울 명문대 입학 자격을 준다고 하는 편이 학교 폭력을 획기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실효성'은 더욱 뛰어나지 않을까).

 

결국 이는 "성적·입시 위주의 교육"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학생들의 배려·공감·협동심을 키우는 실천중심의 인성교육"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전제로는 "학생들의 배려·공감·협동심을 키우는 실천중심의 인성교육"이란 불가능하다. "성적·입시 위주의 교육"의 약육강식·승자독식의 무한 경쟁 논리가 훨씬 집요하고 힘이 세기 때문이다. 당국이 내놓은 87쪽에 이르는 학교폭력대책이 어쩌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기도 하다.

 

학교폭력 보고하면 불익... 이젠 보고 안 하면 중징계?

 

또 정부는 '학교장과 교사의 역할 및 책임 강화'를 주장하면서 학교폭력을 은폐하려다 발각될 경우 학교장 및 관련 교원에 대해 4대 비위(금품수수, 성적조작, 성폭력 범죄, 신체적 폭력) 수준에서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학교폭력의 예방과 근절을 위해 교원들을 파면·해임 등의 중징계도 하겠다는 의미이다. 참 무서운 방침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일부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은폐·축소(하려고)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학교폭력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 보고하면 당국이 학교 평가나 지역 교육청 평가에서 불이익을 주었기 때문이다. 불이익을 받기 싫으면 은폐·축소하라고 친절히 전화까지 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학교나 교사들을 그렇게 위협하고 윽박질러서 비겁해지도록 만든 것이 바로 교육 당국이다.

 

그런데 이제는 방법을 바꾸어 오히려 그렇게 하면 징계를 하겠다고 한다. 어느 방법이든 학교와 교사를 존중하며 함께 교육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주체나 협조자로 보는 시각은 담겨 있지 않다. 언제나 학교와 교사는 불이익의 대상, 책임 추궁의 대상이거나 명령과 지시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협박과 징계라는 정당한(?) 폭력을 언제든 들이밀 수 있는 허수아비일 뿐이다. 여기에 '교권'이 설 자리는 없다.

 

학교생활규칙 무조건 따라라? 강제 동의서 무슨 의미 있나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교사, 학생, 학부모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학교생활규칙을 정하고, 이에 따르는 과정을 통해 규율 준수의 중요성을 체득하는 실천적 인성교육 추진"을 위해 "학생과 학부모는 학생생활규칙 동의서 제출을 입학단계 또는 매학년 초기에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말하는 바와 같이 학교생활규칙을 정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합리적인 절차와 토론에 기반한 민주적 상호작용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학교 상황에서는 교사나 학부모에 비해 학생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지난해 학교생활인권규정 개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할 때 '학생의 수가 반드시 심의위원의 1/3 이상 되도록 하고, 교사의 수는 학생과 동일하게 구성'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의 학교생활규칙 개정에는 학생들을 배려한 어떠한 내용도 없다.

 

게다가 "학생과 학부모는 학생생활규칙 동의서 제출을 입학단계 또는 매학년 초기에 의무화"한다는 데에서는 입이 딱 벌어진다. '동의서'라면 동의하는 사람만 제출하는 것인데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의무화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고, 학생·학부모 가운데 어느 누구도 동의서나 서약서를 강요에 못 이겨 내야할 까닭이 없다.

 

물론 이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된다. 이런 모든 행위는 명백히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하며 '의무화'라는 강제와 강요로 받아낸 동의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으로 학교폭력을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지도 몹시 궁금할 뿐이다. 이러한 일이 또 하나의 폭력이라는 사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복수담임제'는 10여 년 전 실패... 학급 당 학생 수 줄일 예산 마련이 먼저

 

수업시수 감축이나 학급당 인원 감축, 업무 경감 등에 대한 구체적 계획 없이 담임교사에게 매학기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1:1 면담을 하라는 것도 터무니가 없다. 한 학급 학생이 40명이라면 학부모까지 80명을 한 학기에 면담하라는 소리다. 교장·교감이라면 몰라도, 교사에게 현실적 여건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이 물색없는 억지 생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모른다면 탁상 행정이라는 걸 당국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학급당 학생 수가 과다한 경우 학생들을 세밀하게 보살피고 충분한 상담을 하기 곤란함"을 이유로 내세운 '복수담임제' 역시 실효성과 기능에 의문이 들 뿐이다. 이는 10여 년 전 이미 추진했다가 실패한 정책이기도 하거니와, 학급당 학생 수 과다의 문제를 확인했고 이 때문에 1명의 교사가 학생들을 제대로 보살피고 상담하기 곤란하다는 걸 알았다면 학급을 나누고 학생 수부터 줄일 일이다. 그에 따른 정책과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10여만 원 남짓한 수당을 미끼로 교사 한 명을 담임으로 추가 배치하겠다는 건 교사와 학생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전혀 없는 모독이자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당국이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체육수업 시수를 50% 증대하고, 교육과정개정을 통해 '학교스포츠클럽'을 교양필수과목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모든 중학생이 학교스포츠클럽에 1개 이상 가입해 학교나 교육청 단위의 스포츠 리그에 참여하라는 것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다. 죽음을 부르는 입시 경쟁도 부족해서 스포츠 만능까지 바라는 것인가.

 

이처럼 "성적·입시 위주 교육으로 핵심 가치인 '인성'교육 소홀"이라는 훌륭한 자가 진단을 내려놓고도 정작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잡은 '대책 없는' 당국의 씩씩함이 안쓰럽고 답답할 뿐이다. 학생들이 진정으로 학교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교육적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진지하게 토론·소통하고 연구해야 학교폭력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적 차원의 계도 조치"를 "온정주의적 시각"이라고 말하는 정부 당국에 너무 큰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태그:#학교폭력, #학교폭력종합대책,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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