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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년을 사용해 온 당의 명칭을 또 바꿨다. 그것도 집권 여당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당명을 바꿨다. 한나라당이 2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기로 확정지었다. 1997년 11월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14년 3개월만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겉으론 당의 쇄신을 강조하지만 핵심의 요지는 바로 '정권 재창출'을 노린 포석으로 해석된다. 다가올 두 대형선거에서 읽힌다. 

그러나 그동안 한나라당을 지지하며 당 소속 정치인들을 선출해준 수많은 지역 주민들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이 15년여의 세월동안 여당과 야당을 반복해 온 당명을 쉽게 갈아치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절박하게 만든 상황은 무엇일까?

당명 변경의 발단은 지난해 4.27 재보궐선거 참패 직후부터로 볼 수 있다. 이어 지난해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연패하면서 당명 변경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결정타는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사건이 가장 컸다.

당 간판 끌어내린 '디도스' 자충수, 악재들 언제 멈추려나?   

자충수에 그만 악재가 잇따른 때문이다. '디도스'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을 더욱 출렁이게 만든 것은 '돈봉투' 사건이다. 곧이어 총선 완패의 위기감이 깊어진 쇄신파 의원들이 당명 변경은 물론 재창당을 통해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통째로 바꾸자고 요구하고 나선 것도 '디도스'가 낳은 충격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여러 정치적 변수들 중 MB 친인척 비리도 한 몫 가세했다. 파생변수들이 겹겹이 악재로 작용하면서 결국 당의 간판을 내리게 된 것이다.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의 깊은 불신과 외면을 한나라당이라는 간판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불가피한 전략적 카드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고 해서 당의 근간이 사라지거나, 급격히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고 쇄신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쭉 이어온 당의 족보나 다름없는 보수․계보정당사에서 의문이 강하게 묻어난다. 

민주공화당(박정희·17년 6개월)
민주정의당(전두환·9년)
민주자유당(노태우·5년)
신한국당(김영삼·2년)
한나라당(이명박·14년)
새누리당(박근혜·?)

새누리당의 전신은 한나라당이지만, 유일하게 집권한 대통령은 정권 말 친인척 비리를 자욱하게 풍기는 'MB의 당'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런 한나라당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겠지만 바로 그 위 전신겪인 당들의 면면을 보면 아뜩해진다.

질곡의 세월 강요했던 보수당 이름 '민주', '자유', '정의'라니...기가 막혀  

한나라당을 민주정의당에서 출발해 민주자유당,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며 이어져온 정당 후신으로 대부분 여기고 있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보수정당 전신은 2년여 동안 간판을 내걸었던 신한국당을 제외하면 30년 이상의 군부독재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후 17년 6개월의 장기독재집권을 한 박정희 정권의 민주공화당, 그 후 다시 쿠데타로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과 피를 담보로 출범한 전두환 군부정권 치하의 민주정의당은 출범과정과 맥락이 흡사하다.

이런 야만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민주자유당의 노태우정권까지 기나긴 30여 년은 우리 정치사와 현대사의 가장 불행한 시기로 기록돼 왔다.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쓰게 한 장본인들과 정당들은 하나 같이 '민주'와 '정의', '자유'란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도 한결같다. 거론하기조차 부끄럽고 참으로 기가 막힌다. 

새누리당은 바로 그런 정당들의 뿌리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친 아버지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독재정권의 권좌를 차지하며 국민과 역사에 질곡의 세월을 강요했던 장본인이다. 야만의 정권에 빼앗긴 재산반환요구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부산일보> 사원들과 기자들의 신문사 사회 환원요구가 고조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한나라당이 앞으로 당명 변경의 효과를 어느 정도 누릴지는 선거에서 잘 나타날 것이다. 간판을 바꿔 단 새누리당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총선과 대선의 두 거대 선거에서 표심이 심판해줄 것이다.

"여론조사결과, '새누리당 마음에 든다', 유권자 5명 중 1명 뿐"

그러나 여론조사기관이나 지역언론들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지 자체 여론조사와 민심파악 결과를 서둘러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의 새 당명인 '새누리당'이 마음에 든다고 답변한 유권자는 5명 중 1명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일찌감치 여론전문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조사결과를 밝혔다.

<리얼미터>가 지난 2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누리당 당명이 마음에 든다'는 의견은 21.2%,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은 38.0%로 부정적 평가가 2배가량 높았다. 그렇다면 새누리당 지지층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여론조사결과 '마음에 든다'는 의견(42.6%)이 절반을 넘지 못했고, 22.1%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전국 19세 이상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서 ±3.6%포인트'라고 밝힌 <리얼미터>의 이번 조사결과의 핵심은 한나라당이 간판을 바꿔 달았다고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 줬다.   

"고마해라 마이묵었당, 꼴보기싫당, 디도스공격당, MB탈당..."

<매일신문>의 새누리당 관련기사.(인터넷신문 캡처)
 <매일신문>의 새누리당 관련기사.(인터넷신문 캡처)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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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나라당을 아낌없이 지지해 온 텃밭지역 민심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영남지역 언론들은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꾼 한나라당에 관한 의제를 연일 내놓고 있지만 썩 밝지 못하다. 우선 한나라당 맹주인 TK지역이 수상하다. 이 지역 보수일간지들조차도 새 보수당 이름에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매일신문>은 4일 두 꼭지 기사에서 새누리당의 출발을 얄미운 시선으로 쏘아 보았다. 먼저 'WSJ "한국 정당, 인기 잃으면 당명 개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신문은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의 정당들은 인기를 잃으면 당명을 바꾼다"며 "외국에 비해 당명 개정이 잦은 한국의 정치 현실을 꼬집었다"는 내용을 부각시켰다.

이어 '집권당 간판 바꾸는데…예비후보가 무슨 죄?'란 기사에선 당명 개정에 더욱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불만에 가득 찬 예비후보들의 반응을 클로즈업했다. 기사는 리드에서 이런 문제와 답을 제시해 시선을 끌었다.

-문 : 다음 제시어가 가리키는 조직을 고르시오.
▷제시어 : 고마해라 마이묵었당, 꼴보기싫당, 두나라당, 디도스공격당, MB탈당
①국회 ②검찰 ③새누리당 ④민주통합당 ⑤재벌
정답은 이달 2일 새롭게 당명을 바꾼 3번 새누리당이다.

"TK예비후보들 당장 현수막, 명함, 어깨띠 등 교체 걱정...불만"

그동안 지지해 온 한나라당이 얼마나 미웠으면 그랬을까? 기사는 "씁쓸하게도 제시어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지난달 말 실시한 새 당명 공모 과정에서 접수된 내용들"이라며 "접수된 전체 공모작 9천여 건 가운데 이처럼 '삐딱한' 내용의 응모작이 5%나 차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진보신당이 실시한 '한나라당 제 이름 찾아주기' 공모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며 "'돈이최고당' '기득권만세당' 'Money Money해도 땅나라당' 등의 까칠한 민심을 담은 당명들이 접수됐다"고 덧붙여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텃밭의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암시해 주었다.

게다가 "총선이 7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꿔달자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해 온 예비후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기사는 "당장 현수막, 명함, 어깨띠 등을 교체해야 하고 예비후보 홍보물에서도 한나라당 간판을 바꿔야 하는 등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망과 조롱이 적나라한 기사에서 민심의 흐름이 읽힌다.

신문은 하루 전인 3일 사설에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걸로 일단락이 된 게 아니다'란 사설에서 새누리당 박 위원장을 겨냥해 쓴 소리를 퍼부었다. 사설은 "박 위원장의 인사 및 당 운영 방식을 두고 폐쇄적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며 "새누리당 당명도 박 위원장의 선택이 좌우했다"고 전례 없이 강한 톤으로 꼬집었다.

"정체성 없다, 개 이름이면 어때서..."

<영남일보>의 한나라당명 개명에 관한 기사.(인터넷신문 캡처)
 <영남일보>의 한나라당명 개명에 관한 기사.(인터넷신문 캡처)
ⓒ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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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도 비슷한 맥락의 의제들이 눈의 띈다. 3일 ''감동 없는' 새누리당 감동인물 찾기'란 제목의 기사는 리드에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숨은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 추진 중인 '감동 인물 찾기 프로젝트'가 4·11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홍보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감동 인물 찾기'의 당초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더니 신문은 4일 새누리당의 명칭에 대한 분란을 더욱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정체성이 없다" vs "개 이름이면 어때서"란 제목의 기사는 새누리당 쇄신파 의원들이 3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 당명과 관련해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의총 소집을 요구하고 나선 점을 부각시켰다.

"쇄신파는 물론 친박계 일부 의원까지 나서 새 당명 선정의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는 기사는 "새 당명은 정체성이 없다. 당명은 선거를 치를 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비대위에서만 의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한 내부 목소리를 지면에 부각시켰다.

더욱 재미있는 대목은 그 다음에 있다. 기사는 "당명 개정을 주도한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새 당명에 대해 '유치원·애완견 이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과 관련, '유치원이면 어떠냐. 유치원생은 국민이 아니냐'며 '국민의 친구가 되고, 국민의 종이 되겠다는 것인데 당명이 애완견 이름이 된다고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했다"고 보도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새누리당, 참 애매~합니다...닮은 명칭 너무 많아"

<국제신문>의 새누리당 관련기사.(인터넷신문 캡처)
 <국제신문>의 새누리당 관련기사.(인터넷신문 캡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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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PK지역의 한 일간지는 유행어를 빌려 "참 애매~합니다"란 제목을 뽑아 시선을 끌었다. <국제신문>은 4일 "새누리당, 참 애매~합니다"란 제목의 1면 기사에서 "한나라당의 새 당명 '새누리당' 때문에 묘한 현상들이 빚어지면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며 "어떤 곳에선 '굴러온 돌' 때문에 당장 '박힌 돌'이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는 또 "부산항만공사(BPA)의 항만 안내선과 목포해양대 실습선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새누리호'다"면서 "'새누리교회'도 전국에 수십 곳이나 된다.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 자리잡은 APEC 누리마루하우스와 '누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정체성까지 '애매'해졌다"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기사는 "항만 안내선 새누리호는 '새누리당' 당명 확정 발표와 함께 논란거리가 되었다"며 "이 때문에 BPA 내부에서도 '항만 안내선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밝혀 이 지역에서도 새누리당과 관련한 갑론을박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짐작을 가능케 한다.

이밖에 ''새누리당'과 새누리교회'와 관련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 등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새누리교회'만 해도 수십 건의 주소가 검색될 정도다. 새누리당이 홈페이지의 새 도메인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한나라당의 인터넷 홈페이지 영문 도메인이 'www.hannara.or.kr'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새누리당 도메인 역시 이와 같은 주소여야 하지만 이미 다른 교회들이 비슷한 주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들 여론은 기대보다는 냉담한 반응이 더 크다. 그 이유는 당의 전신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론이 새누리당을 강조해서 보도하면 할수록 여론은 더욱 악화되는 쪽으로 기우는 양태다. 뉴스 수용자들은 그러면 그럴수록  정치적 판단이나 선택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언론학에선 이를 '점화효과이론(The Theory of Priming Effec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누리당'의 점화효과가 곧 다가올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욱 궁금해진다.


태그:#새누리당,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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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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