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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에 앉아있는데 단골손님인 필리핀 친구가 들어오더니 한숨을 쉰다. 차를 한 잔 내어주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다음 달에 필리핀으로 가려고 하는데 사장이 월급을 안 준단다. 자그마치 6개월 치가 밀렸단다. 한동네이니 그 사장도 내가 잘 아는데 직원들 월급을 밀릴 정도는 아닌데 이상했다. 사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되돌아온 말이 참으로 우습다.

 

"그놈이 불법체류자인데 나도 많이 뒤를 봐줬고 그 뒤를 봐주며 돈도 많이 들어가서 그렇다. 그리고 필리핀 간다면 비행기 값은 준다고 했는데 왜 사진관 가서 떠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이놈 저놈 하는 것도 못마땅해 "이 친구 월급 안 주면 당신 알아서 하라"며 반 협박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만 보니 불법체류를 이용해서 어찌어찌 공짜로 일 좀 부려먹겠다는 심보 같은데 내가 안 이상은 어림없는 일이다.

 

"필리핀 저까짓 놈들이 뭔데 그렇게 감싸고 도냐"

 

예전에 유리회사에서 일을 할 때이다. 내가 그렇게 별난 사람도 아니건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어려워하는지를 모르겠다. 나에게 지시를 받아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상사까지도 내 눈치를 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유리재단 파트의 과장직에 있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힘든 일을 싫어하니 어쩔 수 없이 필리핀 친구들만 20여 명을 데리고 일을 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필리핀 친구들이다. 내가 일을 시켜놓고 나간 뒤에 공장장이나 이사가 일을 시켜도 내가 지시한 일의 방법과 다르다는 이유로 절대로 움직이지를 않았다. 한번은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필리핀 친구들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나머지 친구들은 일손을 놓고 있었다.

 

공장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 친구들이 나를 에워싸더니 몇 명은 눈물을 찍어낸다. 사연인즉 다른 부서의 과장이 일을 시켰는데 내가 지시한 일의 내용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했더니 삽으로 때려서 두 사람이 머리를 다쳤단다. 일 시킨 과장을 불러서 지시한 내역서를 가져오라했다. 내역서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많이 잘못되었다. 내가 지시한 대로 유리를 자르면 로스율이 5%인데 못된 과장이 지시한 대로 하면 18%나 되었다. 일이 바쁘다 보니 원가절감이고 뭐고 편한 대로만 일을 시킨 것이다.

 

일을 시킨 과장을 불러다 놓고 다그쳤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하고 일을 못하겠으니 당신이 사표를 쓰든지 아니면 당신을 경찰서에 폭행으로 고발하겠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같은 과장끼리 왜 그러냐란다. 그리고 필리핀 저까짓 놈들이 뭔데 그렇게 감싸고 도냐고 난리다. 결국은 폭행을 한 과장에게 필리핀 친구들의 치료비부터 일 못한 부분의 일당까지 받아내고 마무리를 했지만 기가 막힐 일이다.

 

"왜 하필 조 과장이 다쳤어".... 외국인 노동자도 소중한 사람인데

 

유리의 특성상 깨지면 유리가 다치든 사람이 다치든 둘 중에 하나는 다치게 되어 있다. 특히 습기가 많은 날은 유리의 표면이 미끄러워 상당히 위험하다. 지금 나의 왼손 팔목은 힘을 못 쓴다. 비 오는 날 유리가 팔목을 내리치며 힘줄 4개를 끊어 놓아서 4시간의 수술 끝에 간신히 이어놓았지만 온전치가 못하다. 비는 내리고 거의 절단되다시피 한 팔목을 끌어안고 진흙탕길을 달려 병원으로 가는데 흙탕길에 차가 빠져 경운기를 불러와 꺼내가며 30분이면 도착할 병원을 두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음성의 병원에서 긴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통증과 마취약에 취해 비몽사몽 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사장님과 이사님 한 분이 새벽 2시에 급하게 내려왔다. 그리고는 위로랍시고 한마디 하는데 그 아픈 와중에도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이고! 하필이면 왜 조 과장이 다쳤냐, 저기 필리핀 놈들도 많은데!"

 

제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도 다친 나를 위로하러 급하게 내려온 것 같지는 않았다. 당장 회사 일에 차질이 생겼으니 그게 다급해서 상황을 알아보러 내려온 것 같았다. 그리고 왜 필리핀 사람이 다치면 괜찮고 내가 다치면 안 되는가? 필리핀 사람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들이 없으면 그 힘든 일할 사람을 당장 구할 수도 없으면서. 한 달 동안 입원치료를 마치고, 결국은 필리핀 친구들의 처우문제로 마찰이 심해 사표를 냈다. 그런데 사표를 낸 지 6개월 만에 회사가 부도가 나고 말았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 회사는 필연적으로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나저나 다음 달 필리핀으로 간다는 필리핀의 내 '여자 친구'의 월급문제로 오후에 사장을 만나기로 했는데 언성 높이는 일 없이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에 월급문제가 원활하게 해결이 안 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맥과 끗발(?)을 활용해서라도 끝까지 받아낼 터이다. 어딜 감히 내 여자 친구의 월급을 떼어먹으려고…


태그:#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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