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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에 의해 만들어진 콰이강 다리.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에 의해 만들어진 콰이강 다리.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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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 된 산길을 오르느라 흙먼지를 뒤집어쓴 자동차를 세차도 못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 목적지는 오래 전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는 '콰이강 다리'다. 베트남에서 가깝게 지내던, 문학을 가르치는 영국 사람이 있었는데 자신이 태국에 가면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콰이강의 다리'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이곳을 목적지로 잡았다. 

다시 한 장짜리 지도에 의지해 길을 떠난다. 콰이강의 다리는 칸차나부리(Kanchanaburi)라 불리는 도시에 있다. 아내가 불러주는 도시 이름을 도로 표지판에서 찾아가며 운전한다. 이곳에는 도시 이름이 부리(buri)로 끝나는 동네가 많다. 페차부리(Phetchaburi)라는 도시를 지나 라차부리(Ratchaburi)를 거쳐 칸차나부리를 찾아 운전한다.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는 예외 없이 과속하고 있다. 나도 다른 차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과속은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칸차나부리 도시 입구에 들어섰다. 도로는 계속 4차선이다. 도시에 들어섰지만,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별안간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우리 오른쪽 차선을 과속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개를 치고 그냥 질주한다(태국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좌측으로 자동차가 달린다, 일본과 같음).

자동차에 치인 개는 내가 달리는 차선으로 튕겨 나와 네 발을 하늘로 뻗은 채 나동그라져 신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죽어가고 있다. 피는 흐르지 않지만, 사후 경직 상태를 보이며 죽어가는 모습이 내 자동차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충격적이다.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차선을 바꾸어 다시 길을 떠난다. 여기까지 오면서 개가 도로에 죽어 있는 것을 보긴 했지만 내 눈 바로 앞에서 사고당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다. 죽음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콰이광의 다리보다 더 찾기 어려운 숙소

숙소를 찾아야 한다. 아내와 나는 '콰이강 다리'라는 도로 표지판을 찾기 시작한다. 콰이강 다리가 있는 곳은 관광지이기에 숙소가 있을 것이다. 도로변에 한국어로 태국 마사지 광고와 숙소 간판이 있다. 길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숙소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있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태국 사람들에게 숙소 간판을 가리키며 물어보아도 손을 가로로 젓는다. 호텔이 없다는 표시일 것이다.

다시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조금 더 올라가니 간절히 찾던 콰이강 다리 이정표가 보인다. 반갑다.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을 해서 조금 내려가니 큰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다. 말로만 듣던 콰이강의 다리이다. 숙소를 찾지 못했지만 일단 차를 주차하고 콰이강 다리를 잠시 구경한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콰이강 다리 앞에는 길거리에 기념품을 파는 아낙네와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자동차를 오른쪽으로 꺾고 첫 번째 나오는 고급 호텔로 들어선다. 강 쪽에 있는 테이블에는 야회복 차림의 손님과 사진을 찍고 있는 신랑 신부가 보인다. 결혼 피로연을 하는 모양이다. 하룻밤 묵는 가격을 알아보니 우리 예산으로 지내기에는 너무 비싼 가격이다. 다행히 리셉션에서 근무하는 아가씨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방이 없다고 한다.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가씨가 그려준 약도를 따라 다른 숙소를 찾아 나선다.

다른 호텔에 도착했다. 강을 낀 넓은 터에 자리 잡은 호텔이다. 이곳에도 방이 없다고 한다. 가격이 좀 비싸도 묵을 생각이었는데 아쉽다. 또 숙소를 찾아 나서는데 호텔이라는 이름은 없지만 숙소 그림이 그려진 대문이 있다. 일단 들어서서 하루 묵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젊은 주인아저씨가 방을 보여주며 이곳은 유스호스텔(Youth Hostel)이라고 한다. 술을 한 잔한 탓으로 술냄새는 많이 났지만, 영어도 잘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주 좋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깔끔한 숙소다. 

콰이강 다리 아래 있는 수상 식당
 콰이강 다리 아래 있는 수상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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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린 길을 나와 식당을 찾아나선다. 콰이강 다리 아래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나선다. 강위에 떠 있는 식당이다. 식당 전체가 조금씩 움직이고 식탁 아래로는 강물이 흐른다. 메뉴를 보며 저녁식사를 주문한다. 생각보다 많이 저렴한 가격이다. 지금 식당이 있는 이곳에도 수많은 폭탄이 떨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삶을 끝냈을 것이다. 

식사를 끝내고 조명에 비친 콰이강의 다리를 걸어 본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강물은 무섭도록 빠르게 흐른다. 관광객도 드문, 기념품을 파는 아낙네도 없는 조금은 쓸쓸한 곳에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콰이강의 다리는, 빠르게 흐르는 강물에도 흔들림 없이, 수많은 젊은이가 죽어간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콰이강 다리를 오가는 기차에 왜 무지개색을 칠했을까

관광객을 태우고 콰이강 다리를 오가는 관광 열차
 관광객을 태우고 콰이강 다리를 오가는 관광 열차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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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다시 콰이강 다리를 찾는다.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물론 한국에서 온 관광객도 눈에 뜨인다. 유치원에 다닐 만한 딸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국인 부부도 보인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자원해서 카메라를 넘겨받아 콰이강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어 준다. 콰이강 다리를 걷는다. 관광객들은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콰이강 다리 위로는 무지개 색깔로 단장한 기차가 다닌다. 웃음소리와 즐거운 대화로 시끄러운 관광객을 태우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다리 위를 오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 냄새가 물씬 나는 콰이강 다리를 오가는 기차에 왜 무지개색을 칠했을까? 일곱 개의 제각기 다른 색이 모여 또다른 아름다운 색을 창조하는 무지개색. 서로의 색(사상)을 죽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안쓰럽다.

 박물관에 전시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타고 다니던 지프
 박물관에 전시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타고 다니던 지프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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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 다리 바로 옆에 자그마한 박물관이 있다. 일본 군인이 쓰던 무기, 외국인 포로들이 강제 노동을 하는 모습을 조각한 전시실, 콰이강에 대한사진과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 관광객이 이곳에 들리면 어떠한 감정을 느낄까?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콰이강 다리에서는 일본 말이 들리지 않는다.

콰이강 다리 옆에 커다란 불상을 짓고 있다.
 콰이강 다리 옆에 커다란 불상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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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빌딩에서 콰이강 다리를 바라본다. 콰이강 다리 바로 옆에 커다란 부처 동상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이다. 절을 짓고 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부처의 자비로운 마음이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기원해본다.


태그:#태국, #콰이강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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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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