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겨울 몇 달 동안 장식장 위에서 장식품으로 있던 황금색 늙은 호박이 아내의 손길로 1차 변신을 했다.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으로 변할 2차 변신이 기대된다.
 겨울 몇 달 동안 장식장 위에서 장식품으로 있던 황금색 늙은 호박이 아내의 손길로 1차 변신을 했다.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으로 변할 2차 변신이 기대된다.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지난 가을 누런 호박 두 덩이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시골에 사는 셋째 처제가 보내온 것이다. 울룩불룩 골이 패였지만 둥그스름하고 묵직한 늙은 호박이었다. 빛깔도 좋고 모양도 탐스러워 거실 장식장 위에 놓아두었다. 아내는 호박을 왜 장식장 위에 진열해 놓느냐고 타박했지만 "당신 닮은 모습이 예쁘지 않느냐?"고 하니 그냥 웃고 말았다.

"웬 호박덩이가 어울리지 않게 장식장을 차지했네."
"아니 저 맛있게 생긴 호박을 왜 그냥 저곳에 모셔놓습니까?"

분가한 후 처음 집에 찾아온 아들과 초겨울에 방문했던 친구가 한 마디씩 던진 말이다. 한마디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몇 개월을 장식장 위에 있던 호박이 어제 갑자기 자리를 떠났다. 아니 변신을 했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호박 두 덩이가 작고 얄팍하게 잘려서 플라스틱 채반 위에 널려 있는 것이 아닌가.

풍성하고 넉넉하던 장식장이 갑자기 썰렁해 보인다. 거실 장식장은 늙은 호박이 놓여 있을 자리가 아닐 것 같았는데 막상 치우고 보니 호박의 빈자리가 너무 허전해 보였다. 노란 호박고지를 정성스럽게 펼쳐놓고 있는 아내에게 "호박죽이나 쑤어먹지 웬 걸 그렇게 곱게 썰어 말리느냐"고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호박죽이다.

"기대해봐요, 이렇게 잘 말려 놓았다가 얼마나 맛있는 요리들이 만들어져 나올지."

맛있는 요리들이라, 호박죽 말고 또 다른 음식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인데. 뭘까? 궁금증이 스멀스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아내는 얇고 예쁘게 썰어 펼쳐 놓은 호박고지 채반을 창문 밖 에어컨 실외기 자리에 내 놓는다.

"봐요, 빛깔 좋지?"

아내는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호박고지를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호박채반이 무슨 예술작품처럼 정말 곱고 예쁘다. 아내는 호박고지를 아주 바짝 말릴 예정이라고 한다. 한겨울 추위에 밤이면 공꽁 얼었다가 낮이면 햇볕에 녹는 것이 반복되면서 당도도 높아지고 빛깔도 황금색이 더욱 짙어질 것이라고 한다.

"설 무렵부터 달콤하고 맛있는 요리들을 선보일테니 기대해도 좋아요."

어떤 요리를 할 거냐고 물으니 몇 가지 귀띔을 해준다. 내가 알고 있는 호박죽을 비롯하여 호박밥, 호박떡, 호박쌀찐방, 호박식혜, 호박전, 호박 콩범벅, 호박 크로켓, 호박 정과. 뜻밖에 늙은 호박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이 많았다. 더구나 사람의 몸에 좋은 영양소도 많다고 한다.

늙은 호박은 간 기능에 좋은 비타민 A와 B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또 임산부의 부기를 완화하는 효능과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식이섬유와 미네랄, 칼륨이 풍부하고 비타민 C도 많이 들어있어 피부의 노화방지와 혈액순환, 이뇨작용, 체내 노폐물 배출에도 좋다. 두뇌건강에도 좋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매우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늙은 호박은 산모의 부기에 효험이 있고 오장육부를 편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늙은 호박은 또 숙취해소에도 좋고, 각종 성인병과 변비, 설사, 기침, 감기, 냉증, 야맹증에도 도움이 된단다. 또 동짓날 호박죽을 먹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중풍예방에도 좋다는 건강식품, 겨울 몇 달 동안 장식장에서 좋은 장식품이 되어주었던 늙은 호박의 예쁜 변신, 다음에는 2차 변신으로 건강에도 좋은 맛있는 음식이 기대된다.


태그:#호박죽, #늙은 호박, #호박식혜, #호박전, #호박고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