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그마한 섬, 푸켓과 육지를 잇는 다리에 세워진 태국 냄새가 풍기는 조형물.
 자그마한 섬, 푸켓과 육지를 잇는 다리에 세워진 태국 냄새가 풍기는 조형물.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행인지 불행인지, 부초 같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랜 베트남 생활을 청산하고 태국 남쪽에 있는 자그마한섬, 우리에게 관광지로 잘 알려진 푸켓에 정착했다. 태국이라는 나라를 자동차로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떠나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짐을 챙긴다. 특별히 여행 계획을 세운 것도 없다. 잘 곳을 정하지도 않는다. 한 장짜리 태국 지도 하나 달랑 들고 집을 나선다, 15일 정도 고생할 각오를 하고…….

푸켓은 섬이지만 육지를 잇는 다리가 있어 섬이라는 생각이들지 않는다. 푸켓 공항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가 보인다. 다리에는 경비가 있지만 검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의 눈을 끄는 조형물로 장식된 푸켓과 육지를 잇는 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태국 여행을 시작한다.

잘 정비된 2차선 도로가 뻗어 있다. 바쁠 것 없는 나는 시속 80-90 킬로미터 정도로 주위 풍경을 즐기며 운전한다. 그러나 뒤를 따라오던 자동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추월하기 시작한다. 짐작하건대 120킬로 이상으로 달리는 것 같다. 오토바이도 다니고 도로변에는 가게도 있는 도로를 거의 모든 자동차가 과속하고 있다. 사실 속도 제한 표시가 없으니 과속인지 아닌지 나는 가늠할 수도 없다. 속도위반을 잡는 경찰이나 단속 카메라도 없다. 특히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짐칸에 사람을 가득 싣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유트(ute, 짐칸이 있는 지프)들이다. 만약 짐칸에 사람을 가득 싣고가는 유트가 사고를 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태국에서 흔히 보이는 유트. 자동차 짐 칸에는 사람을 태우고 다닌다.
 태국에서 흔히 보이는 유트. 자동차 짐 칸에는 사람을 태우고 다닌다.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시내에 들어서면 시내 속도(city limit)를 지키라는 교통 표지판이 보인다. 아마도 시속 50 혹은 60 킬로미터 정도라고 짐작해 본다. 그러나 이러한 도로도 예외 없이 100킬로 이상의 속도로 자동차들은 달린다. 위험하게 계속 추월당하니 기분이 나빠진다. 심지어는 나를 과속으로 추월하는 자동차들이 사고라도 났으면 하는 생각이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나도 저렇게 과속해본 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때, 나에게 추월당한 기사가 지금의 나처럼 생각하였다면 나도 몇 번은 자동차 사고를 당했어야 한다. 내가 용서를 받으려면 나도 남을 용서하여야 하리라. 타향에서의 자동차 사고는 생각하기도 싫다. 조심스럽게 방어 운전을 하자고 다짐한다. 

푸켓을 떠나 북쪽을 향해 계속 운전한다. 푸켓은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푸켓을 지나도 서해안으로는 휴양지가 계속된다. 바다를 보려고 무작정 좌회전을 해 본다. 조그만 항구다. 고깃배가 서너 척 그리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배 한 척이 정박해 있다. 바다도 아주 깨끗하지는 않다. 조금 실망이다.

태국 남부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아 외국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태국 남부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아 외국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북쪽으로 조금 더 가다 다시 서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들어가 본다. 이국 냄새 물씬 풍기는 울창한 야자수가 가로수를 대신해 우리를 맞는다. 해변 입구에는 조그만 리조트가 있다. 작은 파도가 부서지는 모래사장을 맨발로 느껴본다. 끝없는 백사장의 연속이다. 서너 명의 외국인이 바다를 즐기고 있다. 태국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이러한 해변이 한국에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 북적일 것인가?

한 장짜리 태국 지도를 열심히 보던 아내가 조금 더 가면 국립 공원이 있다고 한다. 가지고 온 과일과 빵으로 점심도 때울 겸 들르기로 하고 국립 공원으로 들어선다. 국립 공원 입구에서 입장료를 요구한다. 태국에서 황당한 것은 태국 사람보다 외국인에게는10배 정도 많은 입장료를 받는 것이다. 입장 요금표에는 태국인 20밧(800원 정도), 외국인 200밧(8,000원 정도)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태국 운전면허증을 보여 주면서 20밧만 내겠다고 손짓 발짓으로 우겨보지만, 경비원은 안된다는 손짓과 함께 웃음으로 답한다. 마음씨 좋게 생긴 젊은 경비원은 자기 할 일만 충실하게 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공원을 통과해서 다른 길로 가겠다고 지도를 보여 주며 이야기했더니 가로막고 있던 긴 나무를 올려준다. 공원 안으로 계속 들어간다. 대강 나온 우리가 가지고 온 지도에는 도로를 따라가면 또 다른 도로를 만나게 되어 있는데 공원을 조금 더 들어가니 길이 없다. 영어를 잘 못하는 경비원은 아마도 우리가 되돌아 나오리라 생각하고 문을 열어준 모양이다.

공원에 들어온 김에 자동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본다.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맑은 시냇물에는 꽤 큼직한 고기들이 떼 지어 다닌다. 이곳에도 큰나무에는 한국 굿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색동천이 둘려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개미집에도 천을 둘러싼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모든 것은 경배의 대상인 셈이다. 미신이라고 치부하긴 하지만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서양 사람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동양인의 세계관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본다.   

처음 먹어 본 과일. 새콤한 것이 입맛을 돋운다.
 처음 먹어 본 과일. 새콤한 것이 입맛을 돋운다.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테이블에 앉아 집에서 가지고 온 과일과 빵으로 점심을 때운다.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는 태국 사람 둘이서 점심과 과일을 먹고 있다가 우리에게 과일을 권한다. 처음 보는 빨간 색 과일이다. 어떻게 먹을지 몰라 망설이는 우리에게 잼 같은 것에 찍어먹으며 시범을 보인다. 우리도 과일을 잼에 찍어서 먹어 본다. 달콤하고 짭짤한 잼 때문에 과일 맛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오히려 잼을 찍지 않고 먹으니 새콤한 것이 제법 입맛을 돋운다. 떠나는 우리를 보며 비닐백에 하나 가득 담아 준다. 본의 아니게공짜(?)로 국립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과일까지 얻어 들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정은 듬뿍 통한다.

덧붙이는 글 | 푸켓에서 자동차로 태국을 돌아보았습니다. 5-6회에 걸쳐 연재할 생각입니다.



태그:#태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