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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과 '안락사'에서 판매까지 가르치는 '세상' 과목

우리학교가 달라졌어요 좋은 학교를 향한 1년 6개월의 분투기
우리학교가 달라졌어요좋은 학교를 향한 1년 6개월의 분투기 ⓒ 부키

"뭐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서?"
"이젠 다  싫어...... 나. 죽고 싶어."
"나야."
"오지 마!"
"......"
" 왜 죽으려는 거야?"
"비교당하는 데 지쳤어...... 더 이상은 싫어."
"그런 데 너무 신경 쓰지 마."
"네가 내 기분을 어떻게 알겠니?"
"제발 죽지 마! 나 너무 슬프단 말야."

학교 옥상에 올라가 몸을 반쯤 내밀고 있는 소심한 급우를 한반 아이가 우연히 발견한다.그리고 그 애를 발견한 급우가 나누는 대화로 '자살예방 역할극'이 시작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포켓몬스터 카드로 유명한 미디어 펙토리라는 회사를 만든 리쿠르트 출신 민간인 사업가로 2003년 도쿄 스기나미 구립 와다 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일대 혁명을 일으킨 후지하라 가즈히로가 가르치는 '세상' 과목 수업의 한 장면이다.

얼마 전 한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 문제는 학교에서 그런 상황을  쉬쉬하면서 얼른 덮으려고만 한다는 사실과 그 학생은 누구에게도 괴로움을 털어놓고 의논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부모와 형조차 그 학생의 힘든 상황을 눈치 채지 못했다.

만일 우리도 학부모가 참관할 수 있는 '자살 예방 역할극'을 통해  왕따 문제. 성적비관, 비교를 통해 열패감을 심어주는 것에 지쳐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자살하는 학생들의 심리와 상황을 재현해 보여줌으로 관심과 예방책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부모가 자기 아이의 태도가 이전과 달라진 것을 눈치 채고 무언가 있나보다 의구심을 품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세상' 과목은 배운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접점으로 이어주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과목이다. 각 주제마다 세상에서 각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이들을 초청해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자율적으로 강사와 학생들이 수업을 하며 모든 '세상'의 수업 과정은 학부모와 메스컴에 공개된다.

놀라운 것은 우리는 감히 중학교 교과로 생각해 보지 못했던 성 소수자, 안락사 자살 등 광범위한 사회 현실과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며 자정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지매(집단 따돌림)나 성적 부진, 부모의 꾸지람으로 자살을 하는 학생들이 년간 3만명이나 되는 일본에서 중학교 정규 과목으로 '자살 예방'을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도 이제 학교에서 '롤 플레이(역할극)를 통해서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심정을 느껴보게 한다면 왕따 현상이나 성적부진으로 자살하려는 학생들이나 왕따를 주도하는 학생들의 충동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자살 예방 역할극'에는 가해자가 될 소지가 있는 힘 있는 학생과 부모에게 피해자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대사나 역할을 통해서 상대방인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감, 외로움, 수치심, 열패감을 잠시나마 느껴보면서 자기 행동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학교가 달라졌어요>는 민간인으로 구립 공립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1년 6개월 만에 희망학교 2위며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중학교로 만든 후지하라 가즈히로의 '좋은 학교'를 향한 1년 6개월의 분투기다.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교장실에 교장문고를 두어 교장실을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에게 개방한 것은 물론 학교 수업이나 경영의 일부까지 지역에 모두 개방을 했다. 지역본부를 만들어 재정적 도움과 각 분야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냈다. '교직원'과 '지역본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교장이 바뀌어도  필요한 정책이 후퇴하지 않을 기반을 다져 둔 것이다.

후지하라 가스히로는 "좋은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교사와 지역학부모에게 던지며 그들이 함께 해답을 찾아가도록 한다. 학력을 높이는데 주력한 것이 아니라 동기를 유발시키고 각 개인이 지닌 자질을 살펴 그 자질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학생들과 함께 운동하고 책을 읽고 학예회나 운동회를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학생들을 어른의 시각으로 재단하지 않는다는 것과 개방을 통한 정공법으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았다는 점일 것이다. 앞에서 보여준 '자살 예방 역할극'이나 안락사 문제, 여장 남자를 실제로 불러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 등이 그런 것이다.

아들아이가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결정했을 때 신영복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아들아이가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저는 저주받은 고등학교 세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소개 시간이 끝나고 신영복 선생님은 아들아이를 따로 불러 무언가를 말씀하셨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물어보았더니 아들 아이가 이렇게 답해주었다.

"현아 인생은 길다. 1년 늦어지는 거 아무것도 아니다. 길게 생각해라 알았지."

신영복 선생님이 아들아이에게 해주신 말씀은 상심한 아들아이에게 위로와  격려가 됐을 것이다. 주변에 누군가가 자기를 격려하고 지켜보고 있으며  가족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학교에 모든 문제를 일임하고 다 해결해달라고 하기엔 학교 역할이 너무 벅차다.

이젠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이 우리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바다로 잘 헤엄쳐 나와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어쩌면 문제학생과 문제는 기성세대의 무관심과 물신주의와 학력지향주의라는 지나친 욕심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알을 깨뜨리고 세상으로 날개짓을 해 나오기 위해 애써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 주는 '세상' 이라는 과목이야말로 학교의 필수과목으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학교가 달라졌어요 - '좋은 학교'를 위한 1년 6개월 분투기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전선영 옮김, 부키(2010)


#좋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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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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