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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렙법 입법을 둘러싸고 논란의 파고가 높다. 입법 가능성이 가시화된 지난해 연말부터는 갑자기 사공도 많아졌고 논쟁도 뜨겁다. 지난 8개월여간 고군분투해온 전국언론노조로선 이런 상황이 약간 당혹스럽지만 아무튼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제출된 몇몇 주장들을 보면 본원적인 것과 파생적인 것, 선과 후를 혼동해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현 상황에서는 조중동 종편과 SBS에 대한 특혜를 공인해주는 결과가 되니 총선 이후 의회판도를 바꿔 제대로 된 법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이런 류의 주장들은 얼핏 들으면 매우 선명하고 명쾌해 보인다. 그러나 이미 저간의 논쟁에서 지적됐듯 조중동 신문·방송 결합판매와 MBC 독자영업, SBS 지주회사 직영 등 최악의 무법상태 방치에 따른 미디어생태계 황폐화, 대선일정 등을 감안한 실제 입법가능 시기의 늦음, 향후 입법 시 거대 방송사간 이해조정과 추후 발생할 독자영업 기득이익 처리의 어려움 등 중대한 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막대한 수익 올리려는 거대방송사들의 속셈

 

거기에 더해 필자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왜 미디어렙법을 만들려 하는가, 근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미디어렙법이 입법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편성·제작·보도와 광고영업 분리'에 있다. 그래야만 뉴스와 프로그램들이 주요 광고주인 재벌과 정부부처, 지자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권력비판과 사회적 약자들의 진실 대변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능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저널리스트라면 스스로 나서 자신이 속한 방송사의 광고 직접영업에 반대해야 마땅하다. 해당 방송사의 공적 역할에 기대가 크다면 그 회사가 자사 미디어렙을 갖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작금 우리 언론계와 언론시민운동의 현실은 어떤가? 자기회사 돈벌이가 불리해진다고 취재거부 등 몽니를 부리는 방송사 경영진과 간부들의 행태가 무얼 노리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종편채널 1개사 당 지난 달 광고판매액은 70~90억 원. 그나마도 '개국 축하금'이 포함된 게 그 정도다. 따라서 앞으로 종편 4개사의 일년 광고판매액은 잘해야 3000억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 될 것이다. 

 

한 회사의 광고판매액만으로도 그 2배가 훨씬 넘는 거대 방송사들이 종편의 위협을 과장하여 경영위기 운운하는 속내는, 그것을 빌미로 자신들에게 덧씌워진(?) 공적규제를 벗어던져 막대한 수익을 올리려는데 있음은 삼척동자도 짐작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대다수의 거대방송사 기자와 PD들은 침묵을 지킨다. 아니 암묵적으로 또는 공공연하게 사측의 입장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거기에 동조하기까지 한다. "재원이 안정되어야 공공성을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

 

이들의 태도에서 한국 언론사들의 저널리즘 정신이 완전히 죽었음을,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의식보다는 종업원과 유사한 애사심만이 불타고 있음을 감지한다면, 마인드 자체는 이미 돈을 향해 있으면서 입으로는 조중동 특혜 저지를 내세우는 위선을 본다면 너무 예민한 것일까? 최근 '주류언론의 죽음' 그 근원에 단순히 정치권력의 탄압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이러한 정체성의 전위 내지는 혼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표류' 미디어렙법, 본령 확인해 선후 바로잡자

 

시민운동 내의 소위 추후입법론자들 역시 유사한 오해를 하고 있는 듯하다. 미디어렙법은 조중동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함이 본령이 아니다. 언론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그 당연한 귀결로서 종편들도 그 규제를 받아야하는 것이다.

 

광고 직접영업은 조중동 조폭들의 돈벌이를 쉽게 해주는 '탈법면허'요 SBS 자사렙은 유사 탈법면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편들이 공적규제를 적게 받으면 결과적으로 우리 편(?)이 손해 보게되니 당분간 지역·종교방송, 신문들이 고통을 당하더라도 나중에 만들자는 식의 어설픈 진영론이 정당화될 수는 결코 없다.

 

그런 논리는 위험하고 무책임하며 역작용만 일으킨다. 자칫 '우리 안의 이명박', '우리 안의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고, 논의지형을 정쟁화하며 수구보수진영의 반발을 굳건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빚을 뿐이다.

 

결론삼아 명토박는다. 사회적 공공성은 반 이명박 반 한나라당으로 환원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지역성, 문화다양성, 여론다양성 등의 가치들이 지켜지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과연 어떤 민주주의인가? 그렇게 총선에서 승리한들, 정권교체를 이룬들 얼마나 희망과 개혁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정략과잉과 무책임한 간여, 탐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 미디어렙법 입법이 표류하고 있다. 본령을 재확인하고 뒤집힌 선후를 바로잡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강택 기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태그:#미디어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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