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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학교에 걸려 있는 학과 통폐합 반대 현수막들.
동국대학교에 걸려 있는 학과 통폐합 반대 현수막들. ⓒ 최지용

안녕하세요 총장님. 저는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한길로라고 합니다. 선배님을 학교의 총장님으로 모시게 되어 참으로 영광스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학교발전의 토대가 되는 'RE-START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많은 땀을 흘리는 모습에 늘 든든했습니다.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교육, 경영, 학생복지 등을 총망라하는 제2건학운동에 열성적으로 헌신하고 계시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총장님의 신년사를 접했습니다. 총장님께선, "임진년 새해, 부처님의 크나큰 가피를 입어 우리 모두의 희망을 안고 떠오르는 저 태양처럼, 동국가족 여러분의 마음 속에 건강과 기쁨이 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죠. 하지만 어쩌죠? 총장님의 신년사와는 다르게도 자비가 아닌 가혹한 불인(不仁)을 보았습니다. 희망을 안고 떠오르는 태양이 아닌 저무는 회색 빛 노을을 보고 말았습니다. 기쁨보다는 좌절과 한숨과 함께하였습니다. 왜 제가 이러한 심정을 겪었는지는 이미 짐작하시고 계실 것 같습니다. 후배들 생각 때문입니다.

총장실 점거로 인한 퇴학 처분은 1988년 10월의 '학원자주화투쟁'이 뜨거웠던 시절의 일이 마지막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1년 12월, 학교는 총장실 농성 8일과 입시설명회 방해를 명목으로 3명에게 퇴학, 2명에게 무기정학, 5명에게 유기정학, 19명에게 사회봉사활동 등의 징계를 통보했더군요.

저로서는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겨지네요. 총장님께서는 어떠신지요? 문득 1년 전 중앙대에서 벌어졌던 사태가 절로 떠올려 봅니다. 중앙대에서 동국대로 진화된 이 화염이 쓸고 갈 다음 대학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 역시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저는 후배들의 눈물겨운 호소와 진심 어린 불안을 보았습니다. 혹한의 추위 속에 바람조차 피하기 힘든 천막 속 후배들의 쳐진 어깨를 보았었습니다. 대학 생활의 환희나 보람을 만끽하지 못하고 사막화된 학교를 묵묵히 지키던 후배들을 보았습니다. 미안하고 그저 미안했습니다. 언제까지 미안하고 못난 선배로 남아야 하는지요? 저들은 나의 후배이자 총장님의 후배들입니다. 혹시 총장님에게 후배들이 해교를 위한, 반대만을 위한 선동적 학생으로만 보이시는 건 아니지요?

'구조조정 반대' 학생들이 '해교세력'으로만 보이십니까

미래지향적 구조조정이라는 학교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잿빛 미래만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의를 제기했고, 자신들의 호소가 조금이라도 반영되기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내용의 개편안을 접했고 결국 후배들은 자신들의 빼앗긴 미래를 위해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무엇이 돌아왔을까요? 대학의 상품화를 거부하고 제대로 된 교육 한번 받아보는 것이 꿈이었던 후배들은 무적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학생의 자격마저 박탈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천의 후배 학우들의 마음으로 선출된 대표를 잃게 될 학생들은 이제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는지요? 학생들이 뽑은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없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과연 누구를 통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까? 대화와 소통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번 퇴학 징계는 철회되어야 합니다. 부디 저들의 몸부림을 "비민주적인 해교행위"라고만 규정하지 않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총장님, 아니 선배님! 징계를 철회해주십시오. 날개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후배들입니다. 저 후배들은 대학의 떨어진 가치에 분노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제2, 제3의 총장실 점거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퇴학시키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학생과 학교 전체를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대화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불교정신을 구현하는 건학이념과 부합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징계 철회가 절대 불가하다면 저 역시 학교를 떠날 것입니다. 이는 제가 생각하는 불교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제 신념을 배신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호소드립니다. 징계를 철회해주십시오. 징계를 철회해주세요.

ps. 후배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다시 학교에서 만나자. 꼭 그렇게 되게 해줄게. 조금만 힘내렴.

덧붙이는 글 | 동국대는 2013학년도부터 5개 단과대 11개 학과를 통폐합하는 학문구조 개편안을 추진해 학생들과 마찰을 빚어 왔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됐던 북한학과 폐지는 철회됐지만, 문예창작학과는 국어국문학과와 통폐합됐고, 윤리문화학과는 2013년부터 신입생을 뽑을 수 없게 됐다.



#동국대#김희옥#퇴학#학교구조정#총장실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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