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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바꾼 만남> 표지
<삶을 바꾼 만남> 표지 ⓒ 문학동네

정약용과 정약전. 천주학과 노론에 밀려 유배지로 끌려간 형제다. 동생은 강진으로, 형은 흑산도에 똬리를 튼 게 그것. 동생은 훗날 '자연과학'에 눈을 떠 신앙을 접었고, 형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다. 동생 정약용을 높이 치는 까닭은 그가 남긴 <경세유표> <주역사전> <목민심서> 같은 업적들에 있다.

 

정약용이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제자들을 기른 것은 익히 아는 바다. 물론 처음부터 그 집터를 마련한 건 아니었고 유배 초기에는 동문 밖 샘터 옆에 있는 주막을 서당으로 삼았다. 그곳에서 손병조(孫秉藻), 황상(黃裳), 황경(黃褧), 황지초(黃之楚), 이청, 김재정(金載靖) 등 여섯 제자를 두었다.

 

정민 한양대 교수가 쓴 <삶을 바꾼 만남>은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이 엮은 사제 간의 발자취를 담은 책이다. 이른바 다산이 40세에 강진에 내려간 시점부터 회혼연(回婚宴)을 맞이할 즈음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둘 사이의 교학상장(敎學相長)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학문만 주고받는 사제간이 아니라 참된 정을 나눈 그 흔적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처음 스승 정약용 앞에 섰을 때 제자 황상은 자신의 둔함과 막힘과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그야말로 공부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다는 뜻이다. 그때 스승은 뭔가 민첩하게 외우고, 예리하게 글을 짓고, 깨달음이 빠른 아이들보다 오히려 둔한 황상을 더 눈여겨본다. 그런 제자라야 세상의 흐름에 약삭빠르게 대처하기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꿋꿋한 제 길을 갈 거라 확신했던 이유다.

 

정약용이 '둔한' 제자를 더 사랑했던 까닭

 

보통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천자문>과 <자치통감>을 5년 넘게 꿰차고 외우는 학습관을 가졌다고 한다. 그 이후에 사서삼경과 제자백가를 깨우치게 한다는데, 다산은 일관되지 않는 체계와 단절된 의미를 전달하는 <천자문>보다 자신이 직접 집필한 <유학편(兒學編)> 상하권을 가르쳤는데, 그것은 지금 강진군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가르침은 직접 연표를 만들어서 가르친 <자치통감>과 <통감강목>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현재 내가 집필하고 있는 성경에 관한 책도 그런 흐름일 것이다. 사실 서구신학에 영향받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중구난방 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다. 이른바 공시적인 접근 방법이 그것인데, 그로 인해 괜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이단과 여러 사이비들에게 엉뚱한 해석을 내비치게 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그것을 바로 잡고자 성경을 하나의 줄로 꿰는 통시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약용이 <유학편>을 직접 집필하여 가르쳤다는 건 그래서 내게 의미심장하게 다가 온 바이다.

 

제자들을 위해 그토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던 다산은 되레 성깔을 부리기도 한다. 18살 되던 해에 제자 황상이 장가를 들어 안식구에게 빠져든 채 공부를 하지 않는 그 무렵이다. 그때 다산은 황상에게 짐을 싸서 따로 각방을 쓰도록 호통을 치기도 한다. 이유인 즉 하던 공부를 게을리 하면 아예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황상은 보은산 산방에 올라가 기거하는데, 그곳에서 23살 된 다산의 첫째 아들 학연과 돌림놀이 시 짓기 시합도 벌이고, 또 28살의 천재 스님 혜장과도 2년 동안 어울리게 된다. 그 이듬해에는 둘째 아들 학포까지 초당에 내려와 아버지 밑에서 배움을 얻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57세에 달한 다산은 서울로 돌아가는데, 제자 여럿이서 스승에게 과거급제에 관한 청탁을 넣기도 한다. 물론 황상 만큼은 꿋꿋한 야인(野人)이자 유인(流人)으로 사는 데 족할 뿐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탑고 질박한 정

 

"황상은 겉으로 꾸밀 줄 모르는 질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제자들처럼 스승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고 또 새겨 자신의 삶 속으로 옮겨오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자 그도 읍내를 떠났다. 아전으로 백성의 고혈을 빨며 탐욕스럽게 사는 삶은 견딜 수가 없었다. 백적산 깊은 골짝으로 가족과 함께 들어가 돌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다. 예전 스승에게 삼근계를 받고 그랬던 것처럼 다른 잡생각 없이 오로지 스승이 일깨워 준 유인의 삶을 일구고야 말겠다는 서원만을 되새겼다."(387쪽)

 

그러던 황상은 만 18년 만에 다산을 찾아 서울로 상경한다. 그건 가난한 삶에 해결책을 찾고자 함도 아니요, 청탁을 넣어 과거에 급제코자 함도 아니었다. 병들어 누워 지내는 스승을 참되게 알현코자 함이었고, 그해가 다산이 부인과 혼인한 지 60년 되던 날이라 축하코자 함도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다산을 만나 강진으로 내려오던 며칠 뒤 황상은 스승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책 뒷부분은 황상과 다산의 큰 아들 학연과의 서신왕래를 비롯하여, 황상과 초의선사의 대화, 그리고 황상과 추사 김정희와의 대화도 담겨 있다.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는 황상이 쓴 시는 두보나 한유나 소동파나 육유의 시들에 견줄 만큼 그의 시는 개성 있는 빛깔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한다.

 

사제 간의 의리와 정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스승이 어떤 분이지를 묻는 제자가 없는 시대다. 물질적인 교환 가치처럼, 좋은 대학에 들어간 제자들을 배출하는 선생만 기억케 하는 이 세상과 교육 풍토다. 정민 교수도 그걸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냈으니,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탑고 질박한 정을 맛보길 원한다면 이 책을 들춰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삶을 바꾼 만남> 정민 씀, 문학동네 펴냄, 2011년 12월, 591쪽, 2만3800원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정민 지음, 문학동네(2011)


#정약용#황상#목민심서#한산어보#천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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